조직 내 인사 등 불이익 더 있을지 지켜봐야

“사실 시간이 오래 지났지만, 여전히 떠올리기는 굉장히 힘든 기억이다. 옆자리에 앉아서 허리를 감싸 안고 엉덩이를 쓰다듬는 행위를 상당 시간 동안 했다.”

지난 29일 서지현 창원지검 통영지청 검사가 검찰 내 성범죄 피해 사실을 폭로해 파장이 일고 있다. 서 검사는 이날 JTBC와의 인터뷰를 통해 지난 2010년 안태근 전 검사에게 강제 추행을 당한 사실을 검찰 내부통신망 이프로스에 올렸다가 되레 인사 불이익을 당했다고 밝혔다. 

 

또 서 검사는 성추행 사실을 덮은 인물이 최교일 당시 법무부 검찰국장이라고 주장했다. 방송 이후 사건 당사자로 지목된 안태근 전 국장은 “오래 전 일이고 문상 전에 술을 마셔 기억이 없지만 보도를 통해 당시 상황을 접했고, 그런 일이 있었다면 진심으로 사과 드린다”고 해명했다.

서 검사의 폭로는 여러 면에서 의미를 갖는다. 해당 사건 연루 의혹이 있는 인물들이 잘 알려진 이들이라는 점도 있지만, 특히 상명하복을 강조하는 검찰이라는 조직 일원으로서 자신의 피해 사실을 공개적으로 이야기했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다.

그런데 사실 더 중요한 건 지금부터다. 서 검사가 촉발시킨 이 사안을 법무부와 검찰이 어떤 식으로 처리할 지 지켜봐야 한다. 나아가 우리 사회가 이번 사태를 어떻게 바라볼 지 여부도 중요하다. 좀 과장해서 말하면 이번 사태가 어떤 결론에 도달하느냐가 직장내 성범죄에 대한 우리 사회 시스템의 수준을 보여주는 바로미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우선 서 검사가 조직 내에서 인사상 불이익을 받을지 여부를 주목해야 한다. 이미 서 검사는 성추행 피해사실을 내부에 알렸다가 한 차례 인사 불이익을 받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번에 방송에 해당 사실을 폭로한 후 검찰이 또 한번 인사상 불이익을 의심할 만한 조치를 한다면 소 잃고 외양간을 더 부수는 격이다. 그렇다고 서 검사를 특별대우 할 필요도 없다. 그저 정상적인 조직생활을 할 수 있도록 순리대로 처리하면 된다. 

 

특히 세간의 관심이 뜸해졌을 때 검찰이 이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 지를 봐야한다. 카메라가 집중될 때엔 모든 조직이 대책을 세운다고 말한다. 30일 문무일 검찰총장은 “피해 여성 검사가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직장 내에서 평안하게 근무하는 환경을 조성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다음은 우리 사회가 어떤 잣대로 이 문제를 다룰 지에 대해 지켜봐야 한다. 사실 이게 더 중요하다. 언제부터 인가 우리 한국 사회는 성범죄 피해사실을 알리는 여성에 대해 습관적으로 ‘꽃뱀이냐 아니냐’ 프레임을 씌우기 시작했다. 꽃뱀 프레임은 가해자들이 선호하는 기법이라고 한다. 한국사회는 성추문 논란이 커질수록 피해여성이 유독 부끄러워하고 심적 부담을 크게 느끼기 때문이다.

 

물론 ‘꽃뱀’으로 불리는 여성에게 피해를 보는 사례도 분명 있다. 그건 법적으로 가리면 그만이다. 다만 근거없이 꽃뱀 논란을 키우거나 인신공격을 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이런 문제에 정 의혹을 제기하고 싶으면 자신의 말에 책임을 지겠다는 각오로 해야 한다.

유독 지난해에 한샘 여직원 성추행 논란을 비롯, 김준기 DB그룹(옛 동부그룹) 회장 및 최호식 전 호식이두마리치킨 회장 성추문 등 불미스런 일들이 많았다. 지금껏 성추문 사건들을 쭉 살펴보면 대부분 오히려 피해 여성이 조직을 떠나거나 숨어 다녀야 하는 비정상적인 결론이 나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이번 서지현 검사의 폭로사건이 어떤 식으로 결론이 날지 모르지만 이 같은 해괴한 한국식 성추문 문제 해결방식에 변화를 줄 시금석이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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