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로 부족해 ‘아저씨’가 넘쳐나는 세상, 영화 의 유쾌한 전복이 그립다.

사진=영화 사랑할 때 버려야 할 아까운 것들 align=

최근 사망한 프랑스 국민 가수 조니 할리데이는 다섯 번 결혼하고 네 번 이혼한 스캔들 메이커로도 유명했다. 마지막 아내 래티시아를 만났을 때 그의 나이는 56세, 래티시아는 21세였다. 래티시아는 친구의 딸이었다. 위대한 아티스트의 사망을 추모하며 나의 ‘중년 남자 사람 친구’는 말했다.

 

“나는 조니 할리데이를 정말 좋아해. 하지만 만약 내 친구가 내 딸과 결혼한다면 그놈을 죽여버릴 거야.” 나는 그에게 웬만하면 셀러브리티 친구는 만들지 말라고 조언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아저씨’와 어린 여자의 연애는 흔하다. 최근엔 이병헌과 김태리, 이선균과 아이유 등 십수 년 차이 나는 남녀 배우가 연달아 커플로 캐스팅되면서 논란이 일었다. 숫제 <롤리타>나 <레옹> <은교>처럼 미성년자와 중·장년, 혹은 노년 남성의 아슬아슬한 관계를 그린 영화도 많다. 반면 나이 든 여성과 연하남 커플은 흔치 않다. 고생 끝에 이혼한 여자가 잘생기고 돈 많고 헌신적인 연하남을 만나 개차반 전남편을 배 아프게 한다는 내용은 한국 드라마의 단골 설정지만 그들의 나이 차는 최근 논란이 된 남녀 커플에 비하면 또래라 봐도 무방할 정도다. 우리에겐 <사랑할 때 버려야 할 아까운 것들> 같은 작품이 더 필요하다. 

 

낸시 마이어스 감독의 2004년 작 <사랑할 때 버려야 할 아까운 것들>은 남녀의 나이 차에 관한 유쾌하고 전복적인 농담이다. 유명 작곡가 ‘에리카(다이안 키튼 분)’는 딸 ‘마린(아만다 피트 분)’이 아버지뻘 남자친구 ‘해리(잭 니콜슨 분)’를 별장에 데려오자 황당해한다.

사진=영화 사랑할 때 버려야 할 아까운 것들 align=

 

해리는 40년 동안 소위 ‘영계’들만 만났다는 부유한 난봉꾼이다. 급기야 마린과 섹스를 하려던 중 해리의 늙은 심장이 발작을 일으키고, 에리카가 그를 응급실에 데려간다. 그곳에서 에리카는 젊은 미남 의사 ‘줄리안(키아누 리브스 분)’을 만난다. 에리카의 팬이라는 그는 20년 나이 차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으로 데이트 신청을 한다.

 

경사도 이런 경사가 없건만 에리카는 이 상황이 안 믿기고, 해리는 에리카가 애인의 엄마라는 것도 잊고 묘한 질투심에 휩싸인다. 그 후 영화는 연륜이 엇비슷한 에리카와 해리가 얽히고설킨다는 다소 맥 빠지는 전개로 이어진다. 하지만 여성 팬들을 흥분시킨 것은 에리카와 줄리안 커플이었다. 미완의 판타지에 대한 아쉬움은 다이안 키튼과 키아누 리브스의 못 미더운 현실 열애설로까지 이어졌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연하남을 만나는 여자들이래야 대개는 얼굴에 주름도 별로 없고, 55 사이즈 옷을 모델처럼 소화하며, 한창 일할 나이의 매력적인 30~40대 여자들이다. 예컨대 <사랑은 언제나 진행중>(2010)이라는 영화에서 뉴욕의 잘나가는 커리어 우먼 ‘샌디(캐서린 제타 존스 분)’는 명문대 출신 ‘애덤(저스틴 바사 분)’과 사랑에 빠지는데, 나이 차 때문에 불안에 휩싸이고 주춤거린다. 두 배우의 실제 나이 차는 열아홉이다. 성별이 바뀌었다면 얘깃거리조차 안 됐을 거다. 게다가 당시 캐서린 제타 존스는 41세로, 비키니를 입고 패션지 표지에 나온대도 전혀 무리가 없는 외모였다. 그런데도 단지 남자보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죄인처럼 구는데, 만약 얼굴에 주름이 가득하고 호르몬 부족으로 뱃살까지 늘어졌다면? 영화의 장르는 로맨틱 코미디에서 심각한 드라마나 범죄물로 바뀌었을 것이다.

 

낸시 마이어스 감독이 <사랑할 때 버려야 할 아까운 것들>에서 환자복 틈새로 축 늘어진 잭 니콜슨의 엉덩이를 보여준 것은 이런 현실을 풍자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여자는 서른만 넘어도 퇴물 취급하고 조카뻘 연하남만 만나도 가십거리로 씹어대면서 영감님들이 ‘영계’ 찾는 건 본능이라 그러지? 여기, 그 남자들의 실체를 봐라!’ 명불허전, 대배우 잭 니콜슨은 그 흐물흐물한 엉덩이로 대사 한마디 없이 감독의 이런 주장을 완벽하게 전달한다.

 

‘우리에게도 영계를 허하라’는 말은 아니다. 아니, 전적으로 아니라고 할 순 없지만 아무튼 그게 핵심이 아니다. 연애 시장에서 남녀의 활동 연한이 현저히 다른 현실, 그것을 반영함으로써 공고히 하는 콘텐츠들이 아쉽다는 거다. 멋지게 나이 든 여자들이 입맛대로 상대를 골라 연애하는 모습을 더 자주 보고 싶다. 다이안 키튼이 잭 니콜슨보다 안 섹시한가? 만약 그렇게 생각한다면 잭 니콜슨의 엉덩이를 한번 보고 오시라.​

 

글쓴이 이숙명

칼럼니스트. 영화 잡지 <프리미어>, 여성지 <엘르> <싱글즈>에서 기자로 일했다. 펴낸 책으로 <패션으로 영화읽기> <혼자서 완전하게> <어쨌거나 뉴욕>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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