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부 “헌법과 법률 어긴 위헌·위법·부당한 행위” 지적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왼쪽)과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지난해 12월 19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혐의 항소심 결심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 사진=뉴스1

법원이 박근혜 전 대통령을 문화예술계 지원배제 명단 ‘블랙리스트’의 공모공동정범으로 인정했다.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대부분 혐의가 유죄로 인정돼 2심에서 징역 4년과 징역 2년을 각각 선고받았다.

서울고법 형사3부(재판장 조영철 부장판사)는 23일 김 전 실장과 조 전 장관의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이 블랙리스트를 포괄적으로 승인했다고 인정했다.

재판부는 “박근혜의 인식과 발언 등에 따라 청와대 내에서 문화예술계 등에 좌파를 배제해야 한다는 국정기조가 형성됐다”면서 “그에 따라 김기춘은 지원배제를 위한 계획과 실행방안을 마련했고, 박근혜는 김기춘의 보고를 받고 승인했다”고 판단했다.

이어 “박근혜의 행위는 단순히 ‘좌파에 대한 지원 축소 및 우파에 대한 지원확대’가 바람직한 정책임을 선언한 것에 그치는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면서 “국정 최고책임자인 대통령 자신의 직권을 남용한 행위”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박근혜는) 김기춘·조윤선의 직권남용 행위에 공모·가공한 것이므로 그에 관한 공모공동정범으로서의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김 전 실장이 문체부 공무원들에게 사직서 제출을 요구한 혐의와 관련해서도 박 전 대통령의 공모를 인정했다.

이날 재판부는 김 전 실장과 조 전 장관에게 각각 징역 4년과 2년을 선고했다. 구속기소 됐으나 1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난 조 전 장관은 이 판결로 법정구속 됐다.

재판부는 “우리 헌법은 문화국가의 원리를 선언함과 동시에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표현의 자유, 예술의 자유 등 각종 정신적 자유권을 보장하고 있다”면서 “이러한 헌법적 요청은 국가가 적극적으로 학문과 예술을 지원·육성하면서도 관용과 중립성을 유지해야 할 의무를 부과하는 것이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 사건에서 피고인들은 문화예술계의 특정 개인이나 단체가 정부에 반대하거나 비판적인 입장을 표명했다는 이유 등으로 그들에 대한 명단을 문체부, 예술위, 영진위, 출판진흥원에 하달해 정부 지원을 배제하도록 지시했다”면서 “피고인들의 행위는 헌법과 관련 법률의 규정등에 비춰 볼 때 위헌·위법·부당한 행위에 해당한다”고 꼬집었다.

김 전 실장은 ▲1급 공무원사직관련 직권남용 및 강요 혐의(1심 무죄, 2심 직권남용 유죄·강요 무죄) ▲예술위 책임심의위원 선정 관련 직권남용 및 강요 혐의(1·2심 직권남용 유죄, 강요 무죄) ▲문예기금 등 지원배제 관련 직권남용 및 강요 혐의(1·2심 직권남용 일부 유죄, 강요 무죄) ▲영화 관련 지원배제 관련 직권남용 및 강요 혐의(1·2심 직권남용 일부 유죄, 강요 무죄) ▲도서 관련 지원배제 관련 직권남용 및 강요 혐의(1심 직권남용 유죄·강요 무죄, 2심 직권남용 유죄·강요 무죄) ▲국회에서의증언·감정등에관한법률위반 혐의(1·2심 유죄)를 받았다.

조 전 장관은 ▲문예기금 등 지원배제 관련 직권남용 및 강요 혐의(1심 무죄, 2심 직권남용 유죄·강요 무죄) ▲영화 관련 지원배제 관련 직권남용 및 강요 혐의(1심 무죄, 2심 직권남용 유죄·강요 무죄) ▲도서 관련 지원배제 관련 직권남용 및 강요 혐의(1심 무죄, 2심 직권남용 유죄·강요 무죄) ▲국회에서의증언·감정등에관한법률위반 혐의(1·2심 유죄)를 받았다.

한편 이들과 함께 기소된 김종덕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1심과 같이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김상률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과 신동철 전 청와대 정무비서관, 정관주 전 문체부 1차관도 1심처럼 각각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김소영 전 청와대 문화체육비서관은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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