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저작권 보호제도 부재…건전한 창작환경 위한 저작권 개념 합의·AI와 예술가 협업 필요

AI가 자율학습을 통해 문학, 회화 창작 등 예술 분야에도 발을 넓혀 가는 가운데 작곡 AI가 주목받고 있다. 업계에선 표절을 피해 새로운 곡을 작곡하는 인공지능 연구가 한창이지만 인공지능의 창작물에 대한 저작권 귀속 문제에 대한 법적 논의는 아직 미흡한 실정이다. / 사진=조현경 디자이너
#작곡가 A씨는 바닷가를 거닐다가 작곡 영감이 떠올랐다. 그가 인공지능(AI) 애플리케이션을 켜고 “바다에 어울리는 음악을 만들어 줘”라고 명령하자, AI는 바로 반주를 시작하고 A씨는 곡을 다듬어 음원을 완성시켰다. 1분도 걸리지 않아 인간과 AI의 협업으로 예술 작품이 탄생했다.

AI가 자율학습을 통해 문학, 회화 창작 등 예술 분야에도 발을 넓혀 가는 가운데 작곡 AI가 주목받고 있다. 업계에선 표절을 피해 새로운 곡을 작곡하는 AI 연구가 한창이지만, AI의 창작물에 대한 저작권 귀속 문제에 대한 법적 논의는 아직 미흡한 실정이다.

AI의 작곡 기능은 이미 상용화에 가까운 수준에 도달했다. 2016년 구글의 ‘마젠타,’ 소니의 ‘플로우머신즈’ 등 인공지능은 음원 빅데이터를 분석, 학습해 스스로 사용자가 원하는 곡을 작곡했다.

국내 스타트업들도 작곡 AI 개발에 뛰어들었다. AI 작곡 앱 ‘험온’은 사람의 허밍에 인공지능이 반주를 입혀 새로운 곡을 만들어 낸다. 지난 11월 한국콘텐츠진흥원은 ‘음악, 인공지능을 켜다’ 시연회에서 SM엔터테인먼트와 협업해 AI가 작곡한 곡을 선보인 바 있다.

작곡 AI가 발달함에 따라 업계에선 표절을 피하는 작곡 AI 연구에 열을 올리고 있다. 안창욱 GIST 전기전자컴퓨터공학부 교수는 기존 딥러닝 인공지능에 진화 연산을 도입해 표절을 피하는 작곡 AI ‘보이드’를 개발했다. 무작위로 배열된 음표 속에서 인공지능이 학습을 통해 더 나은 곡을 선별해 완성도를 높이는 것이 보이드의 핵심기술이다.

안 교수는 “보이드는 기존 창작물에 대한 표절의 가능성이 거의 없다. 새로운 창작물이 생산되는 격”이라고 전했다.

다만 이처럼 표절 위험성이 없는 AI 작곡도 한계점이 있다. AI가 스스로 완전히 새로운 작품을 창작할 경우 저작권 귀속 문제가 발생한다. AI가 사람과의 협업할 경우 저작권은 사람에게 귀속되나, AI가 스스로 창작하는 콘텐츠의 경우엔 저작물 개념의 새로운 정의가 필요하다. 현행 저작권법은 저작권을 ‘인간의 사상 또는 감정을 표현한 창작물’이라고 규정한다. 사실상 AI의 저작권을 보호하지 못하는 셈이다.

업계에선 아직 AI를 하나의 주체로 인정하기 보다는 사용자가 작곡에 활용할 수 있는 도구로 보는 의견이 우세하다. AI에게 저작권이라는 인간적 권리를 부여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입장이다. 안 교수는 “인공지능 순수 창작물이라고 해도 창작을 지시한 주체는 인간이다. 저작권은 창작 명령을 내린 인간에게 있다”고 말했다.

다만 앞으로 AI가 스스로 작곡한 창작물과 인간이 창작한 콘텐츠 간 저작권 충돌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지게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 AI의 저작권 귀속주체, 보호 기간 등 문제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지난해 손승우 단국대학교 법학과 교수는 ‘인터넷 법제동향’의 기고문에서 “AI 기술 발전으로 음악과 미술, 소프트웨어 등 여러 분야에서 AI 창작물이 대거 출현할 것”이라며 “AI 창작물에 배타적 독점권 부여로 인한 부작용을 피해야 한다. 동시에 AI 투자를 유도하려면 AI 창작물도 저작권으로 보호해야 한다”고 전했다. 산업 간 조화를 고려한 새로운 법적 체계가 필요한 이유다.

일부 전문가들은 창작 시장 생태계를 고려한다면 AI의 저작권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AI는 기술과 빅데이터만 충분히 갖춰지면 빠른 속도로 단기간에 대량의 콘텐츠를 생산해낼 수 있다. 좋아하는 음악 장르만 입력하면 누구나 손쉽게 음악을 만들어낼 수 있는 창작 환경은 역으로 기존 예술가의 창작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다.

창작 시장 상생을 위해 AI의 오픈소스화에 대한 아이디어도 나온다. 기존 예술가들과 함께 협업하는 구조를 만들자는 것이다.

손 교수는 “인간이 AI의 저작권을 침해해도 처벌 대신 보상금을 내도록 해 실질적으로 AI 기능을 활용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라며 “대가만 지불하면 누구나 AI 창작물을 활용하도록 장려하는 것이 건전한 창작환경을 만들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한국콘텐츠진흥원과 같은 콘텐츠 양성 기관에선 인공지능과 예술가들의 융복합 콘텐츠를 대안으로 내놨다.

한국콘텐츠진흥원 관계자는 “과거엔 ‘인공지능이 사람만큼 발전했다’가 화두였다면 이젠 ‘인공지능과 사람이 상생해서 살아가는 방법’이 중요해진 시기”라며 “아티스트와 창작 인공지능이 상생하는 창작 환경이 조성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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