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권리·표현의 자유·명예훼손 충돌…방통위 개선안 준비 중

사진=네이버 게시물 중단 요청 화면 캡처.

네이버 검색 포털이나 다음 검색 포털에 배우 박시후씨의 성폭행 관련 블로그 글이 무더기로 삭제되거나 임시조치됐다. 따라서 해당 콘텐츠 내용 대다수는 현재 노출이 되지 않고 있는 상태다.

18일 현재 각 포털에서 ‘박시후 성폭행’을 키워드로 검색하면 관련 블로그 게시물의 제목은 검색되나 제목을 클릭하면 ‘잘못된 주소이거나 비공개 또는 삭제된 글입니다’, ‘서비스 이용에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임시조치된 글입니다’, ‘해당 글은 권리침해신고 접수에 의해 임시조치된 글입니다’ 등 메시지만 뜬다.

앞서 지난 10일 박시후 대리인은 명예훼손을 이유로 포털사 측에 블로그의 성폭행 관련 게시글에 대해 삭제 요청을 했다. 이에 따라 포털사들은 해당 콘텐츠를 삭제하거나 임시조치에 들어갔다.

박시후 성폭행에 대한 글을 작성한 블로그 이용자들은 무더기 임시조치에 불편함을 드러내고 있다. 한 블로그 이용자는 “블로거들은 불이익을 당할 까 두려워 이의신청을 하지 않아 대부분 글이 삭제되고 만다”며 “박시후씨 대리인이 기자가 쓴 블로그 글에는 삭제요청을 하지 않고 블로거의 글만 요청한 것 같다. 언론은 무서워하지만 블로거는 무시하는 처사”라고 주장했다.

이 이용자는 또 “또 다른 블로거가 배우 송중기씨에 대한 글을 작성하면서 ‘요즘 박시후 성폭행 사건으로 충격을 많이 받은 팬들이 많죠. 그래서 송중기씨 더욱 인기가 치솟는 게 아닌가 싶어요’라고 썼는데 박씨를 언급한 내용이 한 문장에 불과했지만 역시 임시조치 됐다”며 “잘못된 정보의 확산을 막아 약자를 보호하려는 제도를 정치인, 대기업, 연예인, 종교단체 등이 악용하고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인터넷 게시물에 대한 사생활 침해나 명예훼손 등 권리가 침해된 경우 침해를 받은 자는 포털 등에 침해 사실을 소명해서 삭제나 반박내용 게재를 요청할 수 있다. 하지만 포털사가 권리 침해 여부를 판단하기 어렵거나 이해당사자 간 다툼이 예상되는 경우 해당 정보에 대한 접근을 임시적으로 차단하는 ‘임시조치’를 할 수 있다. 임시조치의 시간은 30일 이내다.

게시중단 조치가 부당하다고 판단되거나 게시물을 다시 복수하길 원할 경우 이의신청·재게시 요청을 할 수 있다. 이의신청을 하지 않을 경우 게시물은 30일 이후에 자동 삭제된다.

네이버 블로그 운영원칙을 보면 ‘자신의 권리를 침해하는 게시물 혹은 침해 주장 게시물이 있는 경우 게시중단요청서비스를 통해 그 게시물을 임시로 게시 중단해줄 것을 네이버에 요청하실 수 있습니다’라고 명시돼 있다.

네이버 측은 게시물의 임시 게시중단 조치는 관련 법령을 준수하기 위한 조치로 해당 정보의 삭제 등을 요청받으면 지체 없이 삭제·임시조치 등의 조치를 취하고 조치결과를 요청자 및 게시글 작성자에게 알리게 돼 있다고 설명했다. 네이버는 자사의 임의적인 판단에 의해 취하는 조치가 아니라, 관련 법령에 의거해 진행하는 조치임을 양해해 달라는 입장이다.

네이버 관계자는 “누군가에게는 알권리 침해겠지만 누군가에게는 계속 멍에를 지게 하는 문제”라며 “첨예한 가치 판단의 문제이기 때문에 쉽지 않은 문제”라고 말했다. 임시조치에 대해서는 “법에 따라 삭제 요청이 오면 따를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라고 답했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신용현 국민의당 의원은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 최근 5년간 인터넷 포털사이트가 시행한 임시조치 건수는 200만 건이 넘었다”며 “2012년 23만 여건에서 2015년 48만 여건으로 2배 이상 증가했다”고 밝혔다. 이 자료에 따르면 국내 1위 포털사이트인 네이버의 경우 5년 간 160만 건 이상의 임시조치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고, 이는 전체 임시조치 건수의 약 78%를 차지했다.

신용현 의원은 “임시조치는 권리침해에 대한 구제수단으로 이용되기도 하지만 그 근거나 사유가 권리침해와 관계없이 이뤄지는 경우도 있어 정보게재자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며 “매해 수만 건의 이의신청이 발생하고 있는데 임시조치의 미비점들을 바로잡아 표현의 자유와 개인의 권리가 양립할 수 있도록 정책을 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2014년 9월에도 박시후씨 측은 성폭행 글과 관련해 게시중단을 요청한 바 있다. 박시후씨 성폭행 사건 결과에 대해 포스팅한 한 블로그 이용자는 “유명 탤런트 본인이 직접 초상권 침해로 게시중단을 요청했지만 동의하지 못하겠다”며 “사진을 상업적 용도로 사용한 적이 없고 공익적 목적으로 사실을 알리기 위해 작성한 글”이라고 해명했다. 임시조치 이후 이 글의 이의신청이 받아들여져 원래 글이 다시 정상적으로 복구됐다.

서울시 중구 신당동에 거주하는 A씨(여·26)는 “박시후씨와 관련해서는 성추문 사건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며 “한창 드라마에서 좋은 활약을 보여주고 있더라도 연관검색어나 블로그에서 관련 내용을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은 좀 의아하다”고 말했다.

블로그 글 임시조치는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앞서 2016년 촛불집회가 한창일 당시 김영식 천호식품 회장이 촛불집회를 비난한 사건과 관련해 한 블로그 이용자가 비판 글을 작성했다가 역시 삭제요청을 당했다. 이 이용자는 네이버 측에 이의신청을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해당 글은 삭제됐다.

이렇듯 임시조치에 관한 부작용이 늘어가자 방송통신위원회는 임시조치 제도를 완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임시조치 제도 개선은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100대 국정과제 중 4번째 과제이기도 하다. 방통위와 유승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12월 22일 한국방송회관에서 '인터넷 표현의 자유 증진을 위한 임시조치 제도 개선 토론회'를 공동으로 개최하기도 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임시조치 등에 대한 필요적 감면, 권리주장자 범위 제한, 온라인 명예훼손 분쟁조정제도 강화, 임시조치 기간 단축 등의 대안이 나왔다.

 

방통위 관계자는 “임시조치 관련 이슈가 많기 때문에 계속 개선안을 연구하고 있다”며 “임시조치와 관련해서 정보통신방법 개정까지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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