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폰 게이트’ 국내 첫 집단소송, 정준호 변호사 “승소에 의문 없어”…형사소송도 이어질 듯

11일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소비자주권시민회의 정준호 변호사(가운데) 등 관계자들이 애플 아이폰 고의 성능 조작 관련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애플이 ‘구형 아이폰 성능을 의도적으로 저하시켰다’는 의혹에 대해 시인하자 파장이 법정으로 번지고 있다. 국내서도 첫 손해배상청구소송이 제기됐다. 원고 측은 애플이 국내서 민법과 소비자기본법을 위반했다고 꼬집었다. 애플이 성명을 통해 관련 의혹을 이미 인정한 터라 승소 가능성이 높다는 게 원고 측 전망이다. 공방은 형사소송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11일 소비자주권시민회의(이하 소비자주권)가 미국 애플 본사와 애플코리아를 상대로 서울중앙지법에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손해배상 청구액은 기기 평균 가격과 위자료를 합쳐 1인당 220만원 수준으로 산정됐다. 소비자주권 측은 이날 오전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고계현 소비자주권 사무총장은 “애플은 관련 의혹을 시인하면서도 물질적, 정신적 구제조치를 취하기보다는 배터리조차 돈 받고 교체해주는 기만행위를 하고 있다”면서 “주말을 거치며 250여명이 참여의사를 밝혀왔고, (그중) 실무적 위임을 받은 122명을 원고로 소송을 진행하게 됐다”고 밝혔다.

정준호 변호사(소비자법률센터 소장)는 “애플이 인정한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는 배터리 노후화 시 스마트폰 두뇌에 해당하는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성능을 저하시켰다. AP는 통신속도, 명령부터 반응까지 소요되는 시간 등 스마트폰 전반을 관여한다”면서 “애플의 소비자 기만, 은폐행위는 법적 책임을 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애플이 시인한 의혹은 이른바 ‘아이폰 겨울 꺼짐’ 현상이다. 아이폰4s와 아이폰5, 아이폰6를 연달아 사용하고 있는 최모씨(남‧28세)는 앞서 기자에게 “사용 중인 아이폰6이 1GB 상당 업데이트 설치파일을 제멋대로 받더라. 아이폰은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할수록 기종 속도가 매우 느려진다. 겨울에는 배터리 잔량이 20~30% 남았는데도 꺼진 적이 있다”고 말했다.

이런 의혹에 관해 애플은 지난달 20일(현지시간) “아이폰 리튬이온 배터리는 잔량이 적거나 기온이 낮은 곳에 있을 때 전력공급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 이는 아이폰이 예기치 못하게 꺼지는 현상을 초래한다”며 “이를 막기 위해 자체적으로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실시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 업데이트는 성능(속도) 저하를 뜻한다. 이를 통해 전력 소모량을 줄여 리튬이온 배터리가 초래할 부작용을 막았다는 게 애플이 제시한 논리다. IT업계 안팎에서는 애플이 교체 수요를 자극하기 위해 관련 사실을 수년간 비밀에 부쳤다고 의심하고 있다.

 

국내 소송의 핵심 축은 민법 제390조와 제750조다. 윤철민 변호사(소비자법률센터 실행위원)는 “애플과 아이폰 구매자 사이 계약관계는 구매행위 이후의 제품관리의무를 포함하고 있다”면서 “애플이 아이폰 판매 이후 업데이트를 시행한 과정에서 자신들의 이행을 다 하지 않아 채무불이행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1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소비자주권시민회의 사무실에서 애플 아이폰 1차 집단 손해배상 소송제기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 사진=고재석 기자

윤 변호사는 “애플은 관련 문제점을 제품 포장지에 표시하거나 판매하면서 구매자들에게 고지해야 한다. 혹은 (문제가 된) 소프트웨어 업그레이드 직전에라도 고지‧설명해야 하지만 애플은 이런 조치를 전혀 취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IT(정보기술) 기기 성능을 구별짓는 요소와 관련한 업데이트 사실을 미리 고지하지 않은 점은 소비자기본법 위반에도 해당한다는 게 윤 변호사 설명이다. 애플은 “아이폰6, 아이폰6s 및 아이폰SE와 iOS 11.2가 적용된 아이폰7에 소프트웨어 업데이트가 실시됐다”고 밝혔었다. 

 

원고 측은 소송에 강한 자신감을 나타냈다. 애플이 이미 성명을 통해 의혹을 시인했다는 게 핵심근거다.

정 변호사는 “애플 성명만으로도 승소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배터리 구입비 일부를 지원한다는 입장문을 발표하면서 피고들의 과실을 인정하기도 했다”면서 “짧게는 6개월 정도 소송기간을 고려하고 있는데, 감정절차가 길어지면 해를 넘길 수도 있다. (그럼에도) 승소 가능성에 큰 의문을 갖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고 사무총장도 “과거 삼성전자 갤럭시노트7 발화사태와 달리 이 사건은 애플이 사전에 알고도 소비자들을 사기‧기망한 행위가 전제다. 애플도 성명을 통해 시인했기 때문에 피해가 양산된 점을 입증하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공방은 형사소송까지 이어질 가능성도 크다. 정 변호사는 “애플이 업데이트를 통해 기기 성능을 배터리 잔량에 따라 최대 30%까지 제한했다. 이는 재물 등의 이용가치나 효용을 해하는 행위로 아이폰을 손괴한 것”이라면서 “‘재물손괴죄’에 해당하는 범법행위”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성능 저하된 휴대폰으로 업무상 피해를 입었다면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죄도 가능하다. 기망하고 제품을 제공한 거라면 사기죄도 검토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민사 소송도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박순장 소비자주권 소비자감시팀장은 “2차 소송에 참여하겠다고 밝힌 인원이 1차보다 더 많다. 1차 소송제기가 끝나자마자 2차를 준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소비자주권회의와는 별도로 법무법인 한누리에서 모은 집단소송 참여 희망자는 35만명을 넘어섰다. 법무법인 휘명도 애플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준비 중이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