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전만화책 좀 봤다 하는 크리에이터 10人이 꼽은, 내 인생의 만화.

 

사진=그라치아 이용인

‘천사가 아니야’ 야자와 아이 作

순정 만화를 좋아한다. 서른둘이 된 지금도 여전하다. 아마 앞으로도 영원히 그럴 것 같다. 다들 순정 만화를 러브 스토리만 존재하는 연애물로 생각하는데, 절대 그렇지 않다. 『천사가 아니야』는 바로 그런 면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순정 만화로 꼽을 수 있다. 만화 속 미도리와 아키라, 유코와 슈이치 그리고 시노의 관계는 매우 유기적이고 입체적으로 그려진다. 때문에 격한 공감을 불러일으킬 뿐 아니라, 만화라는 허구 세상에 대한 향수마저 일으킨다. “너 같은 친구는 이제 못 만날지도 몰라.” 켄의 콘서트장에서 미도리에게 유코가 속마음을 털어놓는 이 장면 덕분에, 나에겐 단순한 연애물 그 이상의 의미를 갖게 됐다. 그 이유가 궁금하다면, 어서 만화책을 펼쳐보시길. _정인주(프리랜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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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키라’ 오토모 가쓰히로 作

 

만화를 좋아하던 한 소년을 ‘만화광’으로 완전히 변신시킨, 기폭제가 된 작품이다. 광기와 폭력, 부조리가 가득 찬 디스토피아 네오도쿄. 만화책을 펼치는 매 순간마다 불량하지만 세상의 부조리에 반항하는 테츠오와 카네다의 동료가 되어 그 거리를 질주한다. 젊음을 두려워하는 기성세대에게 궁극의 분노를 표출하는 테츠오와 카네다에게서 영원히 변하지 않는 반항과 저항 정신을 배우고 있다. 나 역시 나이가 들어도 부조리에 적응하지 않기를. 그야말로 SF 사이버펑크 만화의 최고봉! 아끼는 만화책 중 하나다. _김형규(치과 의사, 방송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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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자 부띠끄에 어서 오세요’ 한송이 作

‘가끔 버틸 만하다고 생각했던 삶이 힘들어질 때, 너무나 빛바래 아무런 의미가 없을 거 같을 때, 언제든 입을 수 있는 옷이 한 벌 있다. 입고만 있어도 스스로 예쁜 색으로 보이는 그런 옷, 당신의 삶에도 그런 작지만 위로받을 수 있는 색이 물들 수 있기를.’ 『김영자 부띠끄에 어서 오세요』에서 가장 좋아하는 대사다. 김영자 부띠끄에 오는 손님들은 하나같이 마음 한구석에 상처를 입었다. 그리고 그들을 위해 주인공 유선은 세상에 단 하나뿐인 옷을 만든다. 이들이 옷을 매개로 함께 성장해 나가고 서로를 치유하는 이야기가 묵직한 위로를 전한다. 게다가 만화 속 의상들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_권벼리(서울문화사 콘텐츠 기획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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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미 코리건’ 크리스 웨어 作, ‘GARDEN’ 요코야마 유이치 作

 

한 권만 꼽아달라고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만화계의 혁명이라 할 수 있는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아이’라는 부제가 붙은 크리스 웨어의 『지미 코리건』과 만화와 예술의 경계에 있는 요코야마 유이치의 『Garden』은 만화광인 내가 가장 아끼는 작품들이다. 『지미 코리건』은 그래픽 노블 라인을 대표하는 미국 만화책으로, 어릴 적 부모의 이혼으로 몰랐던 아버지의 삶에 대해 알아가는 독신 남성 지미 코리건의 자전적 스토리를 담았다. 치밀하면서 복잡한 여정을 그래픽으로 표현한 독특한 작품이다. 한편 요코야마 유이치의 작품 『Garden』은 만화가이면서도 현대 미술가인 작가의 이력답게 특이한 색채를 지녔다. 기이한 정원을 지나는 여정을 그린 추상 만화로 내레이션 없이 진행되는 전개와 독특한 캐릭터들의 등장이 내겐 센세이션 그 자체였다. _김지현(젠틀몬스터 프로젝트 매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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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츠바랑’ 아즈마 키요히코 作

학창 시절 만화책을 읽을 때마다 “무슨 만화책이냐”라며 옆구리를 쿡쿡 찌르는 아빠에게 엄마는 “만화책도 책이고, 만화 영화도 영화”라고 일축했다. 그 덕에 나는 중간고사 기간에도 눈치 보지 않고 만화책을 보며 자랐다.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다섯 살 ‘요츠바’와 주변인의 이야기를 담은 아즈마 키요히코의 『요츠바랑』. 주인공 요츠바는 종횡무진 말썽을 일삼는 사고뭉치다. 그런 요츠바의 행동이 밉지 않은 건 순전히 다섯 살 아이의 순수함 때문이다. 요츠바는 순진함 하나로 무모하게 용감하고 대책 없이 즐겁다.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우연히 만난 할아버지에게 “천국은 어떤 곳이에요?”라고 묻는 부분. 할아버지는 “맛있는 음식들이 아주 많고 꽃이 굉장히 많이 피어 있는 곳”이라 대답하는데, 집에 돌아간 요츠바는 요리를 하는 아빠 옆에서 말한다. “천국이다!” 나는 대책 없는 용기가 필요할 때 이 만화책을 펴든다. 나에게도 말간 마음이 먼지 한 톨만큼이라도 생겼으면 좋겠다 싶어서. _김소희(<코스모폴리탄> 피처 에디터)​

사진=그라치아 이용인

 

‘꼴’ 허영만 作

 

에디터라는 직업 특성상 매달 새로운 사람을 만나 평균 1시간 정도의 대화를 나눈다. 이야기하는 시간만큼은 상대의 얼굴에 집중하게 되는데, 나도 모르게 관상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어느 날 중고 서점에서 허영만의 『꼴』을 전권 구입했고, 가끔 잔상이 남는 인터뷰이가 있을 때마다 그 만화책을 꺼내 읽는다. 간혹 안 좋은 인상을 남기는 인터뷰이가 있어 기분이 찝찝할 때면 유독 더 손이 간다. 그리고 잔상으로 남은 얼굴이 만화 속 그림과 꼭 들어맞을 때면 낄낄 물개 박수를 치며 공감한다. 덕분에 안 좋았던 인상은 책을 보며 그러려니 하는 마음으로 넘어가는 것이 나만의 스트레스 해소 방법이 되었다. 관상을 만화책으로 독학하고 있지만 나름 60% 정도는 맞는다. 그래서 이 만화책을 놓지 못하겠다. _김경민(프리랜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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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곁에서’ ‘내가 정말 원하는 건 뭐지?’ ‘치에코 씨의 소소한 행복’ 마스다 미리 作

 

여행을 가게 되면 늘 책을 챙겨가곤 하는데, 너무 심도 깊은 책보다는 띄엄띄엄 읽어도 여행에 방해가 되지 않을 정도의 심플한 책 위주로 고른다. 마스다 미리의 작품도 그렇게 알게 된 만화책이다. 솔직히 만화책을 즐겨 읽지도, 구입해 본 적도 없는 내게 마스다 미리의 만화는 만화의 맛을 알게 해준 작품이다. 앉은 자리에서 후루룩 끝까지 단숨에 보고 생각날 때마다 꺼내 읽는데, 신기하게도 보고 또 봐도 질리지 않는다. 잔잔한 힐링을 주는 만화랄까. 훌쩍 여행을 떠나고 싶어질 때, 마스다 미리의 작품으로 대신하는 경우도 있다. _김참새(일러스트레이터)​

 

‘슬램덩크’ 이노우에 다케히코 作

사진=그라치아 이용인

드래곤볼과 마이클 조던, 그리고 『슬램덩크』가 공존했던 1990년대에 유년기를 보낸 나는 정말 행운아다. 특히나 『슬램덩크』가 내 인생에 끼친 영향은 어른이 된 지금까지도 너무나 강렬하다. 여전히 빨간색만 보면 강백호와 북산이 연상되는 건 기본이고, 등장인물의 등번호·키·몸무게까지 달달 외워 친구들을 보며 ‘쟤는 송태섭, 얘는 채치수랑 같네’ 하며 숫자를 매칭할 정도다. 때문에 『슬램덩크』에 관한 모든 굿즈와 서적을 모으지 않으면 직성이 풀리지 않는다. 심지어 가장 좋아하는 명대사로 노래(악당 출현)도 만들었다. 『슬램덩크』에 대해서라면 원고지 100매도 쓸 수 있는데, 이만 줄이겠다. 분량이 적어 내 마음이 다 표현 안 되는 거 같아 왠지 화가 난다. 『슬램덩크』보다 날 뜨겁게 하는 건 이 세상에 Nas밖에 없다. _딥플로우(뮤지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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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CK’ 해럴드 사쿠이시 作

어려서부터 유독 음악 만화를 좋아했다. 『나나』, 『디트로이트 메탈 시티』, 『피아노의 숲』 등등. 그중에서 인생 만화라면 역시나 『BECK』이다. 이 만화책은 언제 봐도 재미있으면서 늘 새로운 영감과 자극을 준다. 처음 이 만화를 만난 건 군대를 막 제대했던 24세의 어느 겨울. 홍대 북새통문고에서 추천을 받아 읽게 됐는데, 끊지 않고 단숨에 전권을 독파했다. 밴드 멤버들이 우여곡절을 겪으며 성공으로 가는 스토리가 현실적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어느덧 30대가 된 지금, 해묵은 만화책을 오랜만에 들췄다. 패션 비즈니스와 뮤직 비즈니스를 오가며 일하는 내게 도움이 되는 주옥같은 장면이 많았다. “결국 좋은 음악은 다수의 사람을 설득할 수 있다”라는 대사는 본질적인 가치를 깨닫게 해준 명장면이다. _이승준(크래프트앤준 비주얼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H2’ 아다치 미츠루 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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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그림체에 반해 보기 시작했다. 마음에 안 드는 그림의 만화책은 누가 아무리 재밌다고 해도 보지 않는 성격이다. 그런 의미에서 『H2』는 생각 없이 읽기 시작한 책이었다. 처음에는 스포츠인 줄만 알고 시작한 이 만화책은 주인공들의 고교시절 이야기와 청춘에 대한 이미지가 가득한 작품이었다. 작품의 초반에 주인공 히로가 야구부가 없던 고등학교에 진학해서 야구 서클을 지나 야구부를 만들고 전국 대회까지 출전하는 스토리는 큰 울림을 남겼고 결국 전편을 완독하게 만들었다 세월이 지나 하얗던 종이가 노래지고, 많이 낡았지만 아직도 소중히 보관하고 있는 애장 만화다. 가끔 낭만과 청춘의 풋풋함이 그리울 때면 만화책을 집어 든다. _김희수(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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