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판기에서 뽑아 먹던 추억의 ‘자판기우유’ 맛 그대로 재현

전철역 구내에 있는 자판기에서 젊은 엄마가 커피를 뽑고 있었다. 엄마 치마꼬리엔 두 돌이나 지났음직한 아이가 매달려 칭얼대고 있었다. 아이가 달라는 시늉을 하니까 엄마는 잠시 곤란한 표정을 지어보이더니 율무차를 한 잔 더 뽑았다. 곧 전동차가 들어와서 엄마는 아이를 앞세우고 양손에 종이컵을 들고 어렵게 올라탔다. 한산한 낮 시간이어서 엄마와 아이는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엄마가 아이에게 율무차를 주고 자기는 커피를 마시려는데 아이는 도리질을 하면서 엄마 것을 달라고 떼를 썼다. 단순히 어른이 가진 게 더 좋아보여서 달라는 게 아니었다. 아이는 분명한 의사표시를 했다. “꼬오피, 꼬오피”라고 그 소리가 어찌나 영악하고 높은지 사람들이 다 웃고 엄마도 따라 웃으면서 종이컵을 바꾸었다.

<경향신문> 1993년 11월 30일자에 실린 고(故) 박완서 작가의 칼럼 ‘쓰고도 슬픈 커피 맛’의 첫 문단이다. 칼럼은 율무차로 시작해 커피로 마무리 되지만, 내게는 처음부터 끝까지 자판기 율무차만 내내 맴돌았다. 어디 엄마 치마꼬리에 달라붙어 자판기 율무차나 우유, 코코아 한 번 졸라대지 않은 아이가 있을까. 부모는 “자판기는 무슨 자판기”냐며 아이의 긴긴 요청을 손쉽게 끊어내지만, 그럼에도 무전(無錢)의 아이들은 특유의 애교와 끈기로 자판기 종이컵을 손에 쥐고야 만다. 한 때 어렸던 우리에게 자판기 음료는 음료이며, 소망이며, 소망의 거부이며, 칭얼댐이며, 추억이며 기타 등등의 무엇이다.
 

사진=김률희 영상기자
특히 자판기 우유는 게 중 남달랐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팩에 담긴 그 우유 맛을 보란듯이 걷어차는 자판기 우유는 우유라기엔 ‘덜 담백하고 더 달았’다. 우유의 성질에 스펙트럼이 있다면 자판기 우유는 나쁘다에 가까울 것 같은 느낌. 하지만 나빠서 좋다고, 자판기에서 뽑은 특유의 (건강에) 나쁜 우유 맛을 다 커버린 어른이 되어서도 기꺼이 추억한다. 다시. 어른이 되어서도 자판기우유는 여전히 먹고 싶은 길티 플레져다. 느끼하고 달고 금방 질리는데도, 분명 맛있었다. 


커피 자판기보다 카페가 더 흔해진 요즘, 아마 150원쯤 하던 그 자판기우유를 1000원으로 편의점에서 만날 수 있게 됐다. ‘매일우유컵’이 우리의 추억을 소환해 줄 그 것. 출시된 지 얼마 되지 않아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서는 아직 드물게 게시되고 있지만, 실물 한 번 뵙기가 어렵다. 세븐일레븐에서만 파는 탓에 서울 잠원동 일대의 세븐일레븐을 정확히 일곱 곳 뒤진 끝에 단 하나 남은 그를 구할 수 있었다. 먹기도 전에 닥친 감동이었다.

딸랑 컵 하나인 매일우유컵 속에는 스틱과 분말이 들어있다. 분말은 혼합분유 13%, 탈지분유 13%, 합성향료(밀크향) 1%로 이뤄져있다. 컵에 분말을 넣고 물 붓는 선에 맞춰 뜨거운 물을 부어주면, 자판기가 내려주던 그 달달한 유유가 완성된다.

한 입 먹었는데 반이 줄었다. 분유와 우유 사이 어딘가에 매일우유컵이 있다. 느끼하고, 달고, 한 입만 더 먹으면 정말 질릴 것 같은데도 역시나 맛있다. 세련되게 기획한 자판기우유다. 패키지의 선택도 절묘하다. 자판기에서 쑥 뽑혀나오는 종이컵의 그 사각사각한 질감을 그대로 재현했다. 한 컵 들고 마시다 보면, 특유의 애교와 끈기로 과거 고사리 손에 쥐었던 그 자판기우유를 다시 쥐고 있는 기분이 든다. 기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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