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의 바다’ 만드는 팬 콘텐츠…초연결 사회서 팬은 더 이상 객체가 아니다

몇 달 전 JTBC ‘팬텀싱어’를 애청하던 어머니(60대)가 카카오톡으로 짧은 동영상을 끊임없이 보내시기 시작했다. 응원하시던 싱어(singer) 포레스텔라 공연 영상을 말이다. 그러다 결승전 날이 다가왔다. 가족 단체 카톡방은 문자투표 장려 메시지로 가득했다. ‘한 사람당 한 표’. 포레스텔라가 우승하면 저녁을 쏘시겠다는 이야기와 함께. 

필자 또한 포레스텔라에 푹 빠진 시기였다. 소셜 미디어를 통해 문자투표 장려 홍보 동영상을 제작한 직후기도 했다. 이것이 영업(팬이 아닌 사람들을 팬으로 만들기 위한 기존 팬들의 다양한 활동)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덕심은 세대 간 문화 향유 방식을 변화시킨다. 실로 놀라울 정도다.

콘텐츠가 확산되는 과정은 눈으로 확인하기 힘들 정도로 순간적이며 비정형적이다. <리틀 브라더>의 저자이자 저널리스트인 코리 닥터로우는 이미 10년 전 이를 예견했나 보다. 그는 2008년 기고에서 민들레가 해마다 2000개 이상의 씨앗을 만들어 바람에 날려 보내는 것을 콘텐츠 확산에 비교했다. 하나의 콘텐츠가 복제돼 소셜 미디어를 통해 확산되는 과정이 민들레가 자신의 개체 복제를 위해 씨앗을 바람에 날려 보내는 상황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1분짜리(인스타그램의 동영상은 1분으로 제한되어있다) 동영상이 업로드 되면, 순간적으로 수 천 번의 ‘조회수’와 ‘좋아요’가 빗발친다. 더 많이 노출될수록 콘텐츠는 빠르고 저렴하게 확산된다. 덕분에 수십 만 명이 볼 정도의 홍보효과를 누릴 수 있다. 물론 콘텐츠가 이용자들에게 공유와 향유의 가치가 있을 때만 가능한 일이다. 이런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아는 무리 중 하나가 팬덤이다. 팬들이 만들어내는 팬 콘텐츠의 범주는 무궁무진하다.

그간 기존 콘텐츠를 재가공한 콘텐츠는 ‘2차 콘텐츠’로 불려왔다. 하지만 팬들이 원본을 재가공하거나 이를 활용해 새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범주가 넓어지면서 팬 콘텐츠라는 낱말이 점점 더 많이 쓰이고 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수만 건 넘는 팬 콘텐츠가 만들어지고 있을 것이다. 그 콘텐츠로 인해 팬들이 응원하는 싱어, 아티스트, 배우 등이 다수의 입에 오르내리고 자연스레 미디어 홍보효과를 누릴 수 있다. 그간 수용자로만 불렸던 팬 커뮤니티는 이제 다양한 정체성을 지닌 ‘생산 주체’로 떠올랐다.

주체가 된 팬들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방송 장르가 ‘오디션 프로그램’이다. 팬들은 자신이 응원하는 연습생이나 싱어들을 홍보하기 위해 미디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없으면 내가 만든다’가 그들의 모토다. 방송 콘텐츠를 재활용해 만드는 경우도 많지만 팬들이 직접 촬영하거나 제작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팬들은 자신이 적극 지지하는 아이돌, 연습생, 싱어들을 노출시키기 위해 그들을 직접 카메라에 담는다. 사진을 찍고 동영상을 촬영하고, 끊임없이 확산될 매력을 지닌 콘텐츠를 제작하는 식이다.

한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제작됐던 팬 홍보물, 팬 콘텐츠의 종류는 수십 가지가 넘는다. 팬들은 스스로 크라우드 펀딩을 활용해 슬로건이나 지하철, 버스, 옥외광고를 제작해 홍보한다. 이러한 팬들의 전략은 이 콘텐츠에 공감하거나 친밀감을 느낄 가능성이 높은 잠재적 팬덤을 포섭하고, 이를 더욱 확대시키는 원동력이 된다. 초연결 사회에서 팬들은 스스로를 더 이상 단순한 수용자로 위치시키지 않게 되었다. 그들은 콘텐츠 생산자이자 행위자이며 심지어 자신이 적극 지지하는 대상을 주체적으로 이끌어갈 수 있는 기획자이기도 하다.

그들이 만드는 팬 콘텐츠는 대중화의 잠재력을 지닌 혁신적 콘텐츠다. 현재 기획사들이 판매하는 굿즈(Goods)의 다수가 팬 콘텐츠로부터 비롯된 것들이다. 팬들은 누구보다 빠르고 적확하게 상황을 파악하고 다양한 잡음들을 끌어안으며 자신이 지지하는 대상을 홍보한다. 우리는 이제 수백, 아니 수만 명의 팬들이 만들어내고 확산시키는 콘텐츠의 바다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들에게 주목해야할 이유, 너무 당연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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