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글로벌' 앞세우는 은행들…고객신뢰라는 최고의 가치 잊지 말아야

올해 국내 은행 CEO들의 신년사를 보면 공통 단어가 나온다. 디지털과 글로벌이다. 은행마다 올해 디지털 기술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영업 확장, 이를 바탕으로 한 적극적인 글로벌 진출에 경영 목표를 두겠다는 각오다. 고객 중심의 경영 목표는 공통적으로 신년사 마지막 부분에 담겨 있었다. 뒷전이라는 말이다.  

 

고객 중심의 경영 지표가 기본 중의 기본으로 너무 당연한 개념인 때문일 수도 있다. 굳이 설명할 필요 있느냐는 변명도 예상된다. 하지만 기본을 소홀히 할 경우 생기는 은행의 리스크는 막대하다. 고객 중심 경영을 소홀하게 생각하는 은행은 언제든 불완전판매 논란에 쉽게 휨쓸렸다. 그 결과 피해자는 늘 존재했다. 은행이 경영의 중심에 고객을 두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실적만을 직원들에게 요구했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다. 

 

은행마다 디지털금융 확대와 글로벌 진출 강화를 외치는 것은 당연하다. 정부의 대출 규제로 올해 은행 영업환경은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 4차 산업혁명이 금융권에 빠르게 나타나면서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다. 케이뱅크와 카카오뱅크 등 인터넷전문은행이 지난해 출범하면서 디지털 금융은 가속화됐고 은행의 위기감은 더 커졌다. 

 

이런 와중에도 은행이 가장 먼저 떠올려야 할 대명사는 고객 중심 경영이어야 한다. 차별적인 금융 서비스를 선보인다고 고객이 찾아오지 않는다. 불완전판매, 사기 금융 온상지로 소문이 나면 있던 고객마저도 떠나기 마련이다. 은행의 한 준법감시부 팀장은 "60년 동안 쌓은 명성이 60초 만에 무너질 수 있는 것이 금융의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고객 가치 중심의 경영이 비용이 아닌 투자라는 인식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고객 중심 경영은 은행만의 몫이 아닐 것이다. 금융당국도 마찬가지로 은행의 정책, 감독 방향을 이에 맞춰야 한다. 한 시중은행 임원 관계자는 "고객들 사이에 여전히 금융감독당국이 고객 입장이 아니라는 인식이 강하다"며 "감독당국이 일단 사건 사고 접수 후 고객보다 은행 편을 드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고객 입장에선 분명 억울하다고 느낄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감독기관이 오히려 고객 중심의 경영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금융권의 지적이다. 

 

고객 중심의 은행을 만들기 위해선 전제 조건이 있다. 직원 중심의 은행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수직적이고 강압적인 조직 문화는 실적 강화에서 비롯됐다. 이에 직원들이 영업점에서 무리한 상품 판매와 정보 비대칭성을 이용한 불완전판매를 시도하게 된다. 업무 만족도 하락과 실적 압박에 따른 직원들의 업무 환경이 나빠지면 그 피해는 고객에게 돌아간다. 지금의 은행들은 과도한 실적 경쟁에 직원들이 기회가 되면 떠나는 조직이 되고 있지 않나 되돌아봐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 

 

금융이 필요로 하는 건 고객의 신뢰다. 변화의 요구도 이를 바탕에 둬야 한다. 고객은 당연히 오는 손님이 아니다. 디지털화에 익숙한 고객일수록 은행의 인지도와 건전성, 더 나아가 그 조직의 문화까지 엿볼 수 있다. 고객 중심 경영은 은행의 비용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투자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