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영화계]① 더 복잡 미묘해진 ‘흥행의 경제학’
  • 고재석 기자(jayko@sisajournal-e.com)
  • 승인 2017.12.29 12:1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흥행조건 다 갖춘 ‘군함도’, 여론 악화에 추락…호재 모인 ‘택시운전사’, 예상 밖 ‘너의 이름은’도 눈길
영화 '군함도'가 100만 관객을 돌파한 지난 7월 27일 서울 여의도 CGV에 군함도 광고가 걸려 있다. / 사진=뉴스1

영화 흥행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당초 예측이 맞아떨어질 확률이 절반 이하이기 때문이다. 역설적이게도 이 덕분에 예측에 대한 부담감이 상대적으로 덜하다. 틀리면 ‘역시 영화판은 전망이 불가능해’라면서 스스로를 위안하면 될 일이다. 시사회를 통해 스코어를 가늠해볼 수 있다는 생각도 더는 유효하지 않다.

정유년 영화계서는 이 양상이 더 복잡하고 미묘해졌다. 복수의 영화산업계 관계자들이 공석에서건 사석에서건 가장 많이 언급한 사례는 ‘군함도’의 드라마틱한 추락이다. 사실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일이다. 군함도는 막대한 제작규모와 초호화 캐스팅, 스타감독, 성수기 개봉, 대형배급사, 개봉 전 기대감 등 흥행조건을 모두 갖춘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영화계 안팎의 말을 종합하면 군함도의 순제작비는 220억~270억원 안팎이다. 배우 황정민, 소지섭, 송중기, 이정현 등 초호화 캐스팅으로도 화제였다. 1000만 영화 ‘베테랑’의 류승완 감독 신작이기도 했다. 한해 최대 성수기인 7월 말에 개봉했다. 투자배급사는 CJ엔터테인먼트였다. 제작 단계부터 식민지 역사를 다룬 시놉시스로 화제를 모았다. 개봉 직후 여야를 막론해 정치권 인사들이 잇달아 공개관람하기도 했다.

첫날 스코어는 97만명으로 역대 1위였다. 1000만 관객을 동원한 부산행(87만명)도 뛰어넘은 수치다. 개봉 첫날 전국적으로 2027개 스크린을 확보해 1만 174회의 상영 기회를 얻은 덕분이다. 정작 최종스코어는 659만명에 그쳤다. CJ엔터테인먼트 투자비율이 30% 안팎이라고 가정하면 배급수익을 합해 650~660만명이 손익분기점(BEP)이었다. 

이 드라마틱한 추락을 두고는 업계 안팎의 견해가 차고 넘친다. 그중에서도 ‘여론 악화’의 직격탄을 맞았다는 분석으로 다수의 의견이 쏠린다. 때 아닌 역사왜곡 논란으로 홍역을 앓았고 스크린 독과점 이슈에까지 휘말렸기 때문이다. 이러다보니 영화에 대한 부정적 바이럴(Viral)이 확산됐다.

지난 6일 열린 CJ CGV 주최로 열린 ‘2017 영화시장 결산 및 2018년 트렌드 전망’에서 이승원 CJ CGV 리서치센터장은 “지인의 평가, 영화커뮤니티 평가, 전문가 평점, 인터넷포털 평점 등에 관객들이 신뢰를 보내고 있다. 이 때문에 평점관리가 영화 배급사 입장에서는 굉장히 큰 일 중 하나가 됐다”고 밝히기도 했다. 때마침 기대작 ‘택시운전사’가 개봉한 점도 영향을 미쳤다. 관객들에게 대안이 있었다는 뜻이다.

‘택시운전사’는 최근 2년간의 개봉작 중 가장 많은 관객을 동원한 영화다. 최종관객은 1218만명에 달해 역대 박스오피스 9위에 올랐다. 택시운전사 제작비는 150억원 안팎이다. 투자비율을 35%로 가정하면 투자배급을 맡은 쇼박스는 이 영화로만 110억원 이상의 돈을 벌어들였을 것으로 보인다. 쇼박스는 되레 새 대통령 공개관람으로 긍정적 여론을 얻기도 했다.
 

올해 박스오피스 1위는 1200만 관객 이상을 모은 택시운전사가 차지했다. 20일 서울 용산구의 한 영화관에서 관객들이 택시운전사 포스터 앞으로 지나가고 있다. / 사진=뉴스1

이를 두고 당시 한 영화업계 관계자는 기자에게 “택시운전사에 대한 기대치가 올 초부터 상당했고 지지율 높은 문재인 대통령의 영화관람도 효과를 미쳤다”라면서 “군함도의 경우 미디어 등을 통해 뜨거운 논란이 계속 이어지면서 관람의지를 약화시켰다고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흥행조건을 갖췄지만 쓴맛을 본 작품 중 하나는 ‘강철비’다. 이 영화는 평단과 관객층 사이에서 공히 호평을 얻었다. 강철비의 투자배급사는 국내 4강 중 하나인 NEW다. ‘변호인’으로 유명한 양우석 감독의 신작이기도 하다. 여름 성수기만큼은 아니지만 크리스마스 연휴가 낀 시즌에 개봉했다. 정우성과 곽도원이 나서 배우 라인업에도 무게감이 있다. 정작 ‘강철비’는 손익분기점(BEP)에 아슬아슬하게 도달하거나 살짝 못 미칠 공산이 크다. 3분기에만 10억원 가까이 영업손실을 낸 NEW로서도 아쉽게 됐다.

가장 큰 원인은 ‘기회의 급감’이다. 14일 개봉 후 꾸준히 ‘5000~6000회’를 유지한 ‘강철비’의 ‘상영횟수’는 20일에 3643회로 급감하더니 현재는 1500회까지 주저앉았다. 20일에 ‘신과함께’가 개봉했기 때문이다. 흥행조건을 모두 갖춘 대작이 더 큰 대작에 자리를 내줘 힘이 빠져버린 셈이다.

흥행의 경제학이 더 복잡하고 미묘해졌다는 건 ‘의외의 성공작’들 때문이기도 하다. 일본 영화인 신카오 마코토 감독이 연출한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은 정초 극장가를 휩쓸며 367만 관객을 동원했다. 그간 애니메이션 역대 흥행 1위 작품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하울의 움직이는 성’(301만, 2014년 개봉)이었다.

성수기 텐트폴(각 배급사별 주력작) 중 가장 약세로 평가받던 ‘청년경찰’의 흥행도 눈길을 끈 사건이다. 청년경찰은 손익분기점으로 알려진 200만명을 3배 가까이 웃도는 565만 관객을 모았다. 덕분에 그간 체면을 구겨온 롯데엔터테인먼트도 완연한 반등세를 나타냈다. 롯데엔터테인먼트는 최근 ‘신과함께’가 600만 관객을 넘기면서 오랜만에 함박웃음 짓는 연말을 맞이하게 됐다.

다큐멘터리 ‘노무현입니다’가 185만 관객을 불러모은 점도 ‘역대급’ 사건이다. 이 영화는 노무현 경선후보가 2002년 새천년민주당 국민경선에서 대선후보로 결정되는 과정을 그린다. 공동배급을 CJ그룹 계열 CGV아트하우스가 맡았다는 점도 눈길을 끌었다.

고재석 기자
고재석 기자
jayko@sisajournal-e.com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