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 ‘불도저’와 ‘열정노동’이 쌓아올린 드라마 왕국
  • 고재석 기자(jayko@sisajournal-e.com)
  • 승인 2017.12.28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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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화유기’ 사태, 무리한 촬영일정에 스태프 낙상사고까지…“고질병 해결해야” 지적 잇달아
15일 오전 서울 강남구 논현동 임피리얼 팰리스 호텔에서 열린 tvN 토일드라마 '화유기' 제작발표회 모습. / 사진=연합뉴스

tvN 드라마 ‘화유기’는 지난 상반기부터 방송가 최대관심작 중 하나로 꼽혔다. ‘홍자매’란 별칭으로 유명한 홍정은·홍미란 작가의 복귀작이라는 게 이런 분위기를 부채질했다. 최근 국내시장서 각광받는 ‘로맨틱 판타지’ 설정이라는 점도 현장 관계자들의 이목을 끌었다. ‘도깨비’ 성공신화를 재현할 거라는 다소 섣부른 전망도 있었을 정도다. 

드라마는 방송산업의 캐시카우(cash cow)다. 국내 한 방송사에서 수출업무를 담당하는 관계자는 “예능은 포맷을 팔아 수익을 거두는 게 더 빠르다”라면서 “드라마야말로 지속가능하게 해외시장에서 돈을 벌 수 있는 유일한 콘텐츠”라고 설명했다. 덕분에 국내 드라마의 질도 날이 갈수록 진화하고 있다. 이 한복판에 있는 회사가 tvN과 OCN을 갖춘 CJ E&M이다.

한국 드라마산업의 민낯을 그대로 노출하는 회사도 CJ E&M이다. 사상 초유 방송사고로 입길에 오르더니 촬영 현장 스태프가 불의의 사고로 중상을 당했다. 문화산업계서는 ‘불도저’와 ‘열정노동’이라는 문제의식으로 이 사태를 바라보고 있다.

◇ 사상초유 방송사고에 ‘불도저식 촬영’ 지적 잇달아…“광고성수기 무시 못했을 것” 해석도

‘화유기’는 2회인 24일 방영분에서 컴퓨터그래픽(CG) 처리가 되지 않은 장면이 그대로 방송돼 논란을 일으켰다. 요괴 역할로 분한 연기자들이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와이어가 노출됐다. 직후 중간광고가 10분 이상 이어지다 급기야 방송이 종료됐다. 당초 방송일이 아니던 이튿날에서야 편집이 완료된 ‘본방송’이 다시 브라운관에 걸렸다. 제작사 JS픽쳐스는 CJ E&M이 드라마 경쟁력 강화를 명분으로 2013년에 인수한 업체다.

이후 ‘한국일보’ 보도로 촬영 현장서 조명(샹들리에) 설치를 하던 스태프가 사고로 하반신 마비 증상이 왔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전국언론노동조합은 27일 성명서를 내고 “샹들리에 설치는 (피해자가 속한) MBC아트와의 용역 계약에 포함되지도 않은 일이었다. 게다가 당사자가 야간작업으로 피로가 누적되어 있어 다음날 설치하겠다고 부탁했음에도 설치를 강요했다는 증언까지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피해자의 친형도 28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이번 드라마 할 때는 쫓겨서 너무 바쁘고 힘들고 방송 나갈 시간도 다가오고 뭐 이랬다”고 말했다.


업계서는 무리한 촬영이 사태의 근본원인이라는 데 시각을 같이 하고 있다. 화유기는 12월 23일 첫 방송됐다. 주연배우 이승기는 10월 31일에 군에서 전역했다. 상당수 촬영이 방송을 코앞에 둔 11월에 급히 진행됐을 수밖에 없다. 특성상 CG도 많은 터라 후반작업도 급박하게 이뤄졌을 공산이 크다. 왜 굳이 12월 방영을 고집했을까?

방송업계 한 관계자는 “tvN에서 미리 정해진 드라마 스케쥴도 있었겠지만 4분기가 광고성수기라는 점도 무시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전했다. 올해 tvN 최대화제작 ‘도깨비’ 역시 지난해 12월 2일에 1회가 방영됐다. 방송사에 광고는 곧 실적이다. 김회재 대신증권 연구원은 “4분기에는 새로운 드라마와 상승 중인 광고단가가 더해져 CJ E&M 방송부문 영업이익은 최대 규모를 달성할 것”이라고 전망했었다.
 

방송, 영상콘텐츠 유통행사인 '국제방송영상견본시(BCWW)' 모습. / 사진=뉴스1

증권가에서는 올해 CJ E&M 방송부문 영업이익이 800억원을 넘으리라 보고 있다. 지난해와 비교해 75% 이상 폭증한 수치다. 이는 CJ E&M 전체 영업이익 중 90% 비중에 달한다. 이중 4분기 영업이익 예상치만 300억원에 육박한다. 이미 캐스팅 단계부터 화제가 된 드라마를 4분기에 출격시키는 게 여러모로 유리한 환경인 셈이다.

◇ 사전제작이 대안? 상황 단순치 않아…사태 키우는 제작비 절감 관행도 문제

일각의 주장대로 ‘사전제작’이 대안일까? 현재 방송업계가 처한 상황서 이는 그리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국내업계가 사전제작을 택한 이유는 수출 때문이었다. 중국 국가신문출판광전총국(國家新聞出版光電總局)에서 사전심의에 전체 촬영분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능동적 선택이라기보다는 수동적 대응이었다는 뜻이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국면으로 한한령(限韓令,한류 금지령)이 본격화한 이후 사전제작을 할 유인책은 사라질 수밖에 없다. 사전제작 드라마 흥행 확률이 그리 높지 않다는 그간의 경험도 이런 분위기를 키우는 배경이다. 공급자 입장에서는 ‘사전’이건 ‘사후’건 시청률이 중요하다.

중국시장이 열려있으면 선택지는 넓어진다. 국내 시청률이 낮아도 중국서 일정한 흥행만 거두면 손익분기점(BEP)을 넘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선택지가 없는 상황서 수익원은 결국 광고다. 광고단가를 높이려면 가장 비싼 시기에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는 게 답이다. ‘불도저’식 촬영과 방영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제작비 절감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것도 이런 상황과 무관치 않다. 언론노조에 따르면 CJ E&M은 제작사 JS픽쳐스에 ‘화유기’ 외주를 맡겼고, 다시 JS픽쳐스는 자사 미술팀을 업무 지시자로 삼아 복수 업체에 세트 및 미술 작업을 ‘쪼개기’로 할당했다. 이를 두고서는 ‘비용절감이 목적’이라는 게 방송가의 중론이다.

과거에는 중국서 흥행할 만한 작품이라면 현지 투자를 받을 수 있었다. 중국 동영상 사이트 ‘아이치이(愛奇藝)’는 ‘태양의 후예’를 회당 25만달러에 구매했었다. 총 16부작이니 50억원 가까이 제작비를 투자받은 셈이다. 이는 태양의후예 총 제작비의 3분의 1 규모다. 이 드라마 회당 제작비는 당시 국내업계 관행의 두 배가 넘는 8억원이었다.

하지만 중국발(發) 투자가 반드시 제작현장 개선으로 이어질 거라 말하기는 어렵다. 중국 측에서는 투자 시 특정 작가와 특정 배우 섭외를 조건으로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자연스레 이들의 몸값이 올라가고 이는 고스란히 제작비 상승으로 이어진다. 한 문화산업계 관계자는 “중국서 투자금이 들어와도 이는 결국 스타작가, 스타PD, 한류스타를 총동원하는 실탄으로 쓰일 가능성이 높다”면서 “현장처우 개선은 다른 각도에서 해결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 고질병 열정노동…“문화산업계야말로 낙수효과가 없는 곳”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올해 방송산업 매출액은 17조8000억원에 달한다. 이 최전선에 선 CJ E&M은 영업이익 1000억원 시대를 코앞에 앞두고 있다. 물적분할시킨 드라마 제작자회사 ‘스튜디오 드래곤’은 코스닥 상장 첫날 시가총액 2조원을 넘겼다. 어느 각도로 보나 화려한 성적표다. 정작 근간을 이루는 현장 제작진은 여전히 ‘열정노동’에 얽매여있다.

‘열정노동’은 화려한 산업의 장막 뒤에 쌓인 격무와 야근, 박봉을 정당화하는 키워드가 됐다. 4월에는 tvN 드라마 ‘혼술남녀’ 조연출이던 故이한빛(28) CJ E&M PD가 드라마 제작의 열악한 환경, 회사의 과도한 업무부여를 문제 삼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관련기사: “문화 만든다면서 목숨 위협해서야...”) 이후 CJ E&M은 “관행적인 제작시스템을 선진화하겠다”면서 “내부 노력에만 머물지 않고 외부 제작 스태프의 적절한 근로시간 확립 및 보상에 대한 포괄적인 원칙을 수립하겠다”고 발표했었다.

문화현장 개혁운동에 참여해온 한 인사는 “열악한 노동환경을 개선할 생각은 없이 ‘네가 좋아하는 일이니 견디라’로 포장해온 건 과거부터 아주 오래된 문화산업계 고질병”이라면서 “이 업계야말로 낙수효과가 없는 곳”이라고 비판했다. 전국언론노조도 “아무리 좋은 드라마라도 시청률과 매출액, 그리고 한류로 포장될 수 없다. 인권과 노동에 대한 존중이 없는 제작 현장은 어떤 성과로도 면죄부를 받을 수 없을 것이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고재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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