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과 사회통념 간극 인정하고 심각성 깨달아야

그동안 법조계에 대한 비판 목소리는 좀처럼 법원 담벼락을 넘어가지 못했다. 대부분의 비판은 검찰의 정치수사 논란 등에 집중됐고, 언론조차 사법부 결정에 대해 해석을 달고 왈가왈부하는 것은 일종의 금기처럼 여겨져 왔다. 사실 이것이 정상적인 사회고 이치상 맞다. 사법부 결정을 따르지 않는 사회에서 대체 무엇에 순응할 수 있을까.

그런데 최근 법조계와 관련한 쓴소리는 사법부에 집중되고 있다. 대중들은 두 번 연속이나 우병우 전 민정수석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됐던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또 MB정권 수사와 관련한 핵심인물 김관진 전 국방부장관이 구속됐다가 풀려나 수사 동력이 힘을 잃은 것에 분노했다. 일각에선 ‘사법 적폐’라는 말까지 만들어냈다.

이제 대중들은 사법부의 결정을 법리적 결정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모습이다. 이런 상태에선 어떤 결정이 나오든 당사자나 대중들은 악평을 내놓고 승복하지 않을 것이다. 구속시키면 구속되는 쪽에서, 풀어주면 이를 정서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쪽에서 담당 판사를 욕할 것이다. 이것은 사법이 아니라 정치에 가깝다. 이번엔 우병우 전 수석이 구속을 풀어 달라고 구속적부심을 냈는데 법원이 기각했다. 이를 두고 또 어떤 해석이 나올지 모르겠다.

기본적으로 사법부 결정을 존중하는 사회가 돼야 한다. 설령 판결이 열 번이면 열 번 모두 한 쪽으로 쏠리는 것처럼 나오는 한이 있더라도 받아들이는 것이 성숙한 사회다. 고의적으로 대중 눈치를 보며 50 대 50을 맞추는 판결보다 차라리 법리에 따라 소신 있게 내린 판결이 낫다. 

이처럼 사법부 결정을 존중해야 한다는 생각엔 변함이 없지만 이 이야기는 하고 싶다. 지금 이같은 상황에 대해 사법부도 심각성을 인지하고 고민을 좀 해봤으면 한다. 왼쪽이냐 오른쪽이냐, 진보냐 보수냐 하는 해묵은 고민이 아니라 왜 이렇게 국민적 신뢰가 떨어졌는지, 어떻게 회복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다. 2016년 형사정책연구원이 실시한 형사 사법기관 조사에서 법원에 대한 신뢰도는 24.2%였다. 그동안 사법부가 얼마나 국민들에게 신뢰를 잃었는지 알 만한 대목이다.

꼭 정치 관련 사건만이 논란이 되는 것은 아니다. 지난달 대법원은 자신보다 27살 어린 여중생에게 ‘연예인을 시켜주겠다’고 접근해 성폭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파기환송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연예기획사 대표 조아무개씨에 대해 무죄를 확정했다. 피해자가 조씨 강요 와 두려움 때문에 허위 감정표현이 담긴 서신을 보냈다고 진술했지만 대법원은 ‘사랑하는 사이’였다는 조씨 말을 더 신뢰했다.

화장실에서 8살 여아의 목을 조르고 성폭행해 상해를 입힌 조두순은 원래 무기징역을 받았었으나 법원이 ‘술을 마셔 심신미약이었다’는 점을 고려해 12년으로 감형해줬다. 술을 마신 것은 감형사유가 되지만 그렇다고 판사가 꼭 감형을 해줘야 하는 것은 아니다. 강력범죄자 변호를 맡게 되면 음주나 정신이상을 주장할꺼리를 찾는다는 것은 법조계에선 상식과 가까운 일이다. 법원이 술을 마셨는데 그것을 감형사유로 안 받아들인 사례는 반대 경우보다 극히 적다고 한다.

판결이 대중 정서에 따라 널뛰는 것은 문제다. 그런데 판결들이 우리 사회 통념과 반하는 방향으로 수렴되는 경향이 있다면 그것도 문제다. 판결이 억지로 대중을 따라가면 안되겠지만 왜 자꾸 대중과 다른 결과물이 나오는지에 대해 근본적으로 고민은 좀 했으면 한다. 

 

판사를 지냈던 한 법조인이 이런 푸념을 했다. “법은 결국 ‘우리 사회가 생각하는 가장 옳은 가치가 이거다’라고 축약해 놓은 것인데 법적 결정과 사회의 통념 간극이 계속 벌어지고 있다면 그건 뭔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것 아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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