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지 절식(節食)인 팥죽을 편의점에서

일년 중 밤이 가장 길다는 동지(冬至)에 먹는 절식인 동지 팥죽. 동짓날 팥을 삶아 거른 팥물에 쌀을 넣고 쑨 죽이다. 새알심이라고 알려진 찹쌀 경단과 함께 끓여지기도 한다. 소금만 넣어서 고소하게 먹거나, 설탕을 넣어서 달게 먹기도 한다. 동짓날 팥죽을 먹는 유래가 중국이라는 설(說)이 있으나, 역시나 ‘설’인 관계로 진위 여부나 전래 시기 등은 확실치 않다. 역귀가 싫어하는 붉은 팥으로 죽을 쑤어 그것을 쫓았다는 것만이 사실로서 가장 유력할 뿐이다.

2017년 동지는 지난 22일이었다. 편의점에서 간단히 살 수 있는 단팥죽을 샀다. 무려 밤단팥죽이다. 나이 지긋한 편의점 점원은 “오늘이 동지라서 팥죽이 팔리긴 팔린다”며 “아침에도 대여섯개 나갔다”고 말했다. 곧 이어 “난 단 음식을 못 먹어서 단팥을 좋아하진 않지만 젊은 사람이라 단팥죽이 낫죠?”라며 웃었다. ‘양반 밤단팥죽’은 뚜껑을 열고 알루미늄 덮개를 제거한 후 전자레인지에 1분 30초를 돌리면 먹을 수 있다.
 

양반 밤단팥죽./사진=김률희 영상기자

전자레인지 문을 열자마자 단팥 냄새가 솔솔 난다. 평소 단팥 앙꼬가 들어간 모든 음식(단팥빵, 붕어빵, 호빵, 호빵, 호빵…)을 좋아하는지라 시식 전 퍼지는 따뜻한 냄새에서부터 이미 원기가 쨍해진다. 함께 제공되는 숟가락으로 밤단팥죽을 한 술 떠본다. 쌀을 넣고 쑨 죽이라 그런지, 쌀알이 가득하다. 아주 빻지 않아 팥알도 살아있다. 고운 팥앙금이 13.7%, 팥이 6.0% 들어있다. ​아래까지 휘저으니 아기 콧망울만한 알밤 두 알이 나온다.

일반적으로 알루미늄 캔에 담긴 모든 음식에 대한 기대치는 낮다. 그래봤자 캔에 담긴 캔음식이라는 이유에서다. 이번 밤단팥죽은 어떨까. 스캔을 끝냈으니 맛을 본다. 기대치가 낮은 덕일까. ‘생각보다’ 단팥죽이다. 사실 겉모양만 단팥죽을 모사한 ‘유사 단팥죽’일 줄 알았는데, 맛도, 향도, 식감도 단팥죽이 맞다. 지나치게 달아 유치할 줄 알았지만 감미(甘味)도 적당하다. 너무 달다며 찌푸려지지도 않고, 단팥 맞아?수준으로 맹하지도 않은 맛이다. 단팥죽 한 스푼에 쌀알 이만큼, 팥알 이만큼이다. 쫄깃쫄깃 새알이 없는 건 어쩔 수 없는 아쉬움으로 남는다.

또 팥이 있다. 영화 <앙: 단팥인생 이야기>에는 일본 단팥빵인 도리야키에 들어가는 앙(あん)​, 즉 앙꼬를 만드는 만드는 도리에(키키 키린 분) 할머니가 나온다. 그녀는 작은 부엌에서 끓는 붉은 팥을 향해 “힘내라”며 격려의 주문을 건다. 온 정성으로 달여 낸 팥앙꼬가 든 도리야키는 곧 동네의 자랑이자 명물이 된다. 영화 속 단팥은 단순히 돈을 주고 얻을 수 있는 재화를 넘어, 이웃과 이웃을 잇는 동시에 나와 나를 잇는 매개가 된다. ​​​

먹어보겠냐며 단팥죽을 권하자 회사 동료는 “점심 먹고 후식까지 먹었으면서 이제 죽까지 먹느냐”며 핀잔을 준다. 그러면서 한 입 두 입 떠먹더니 “생각보다 괜찮다”며 머쓱해한다. 단팥죽에 대고 커다란 카메라로 낑낑대고 있으니 오늘이 동지였냐며 물어오는 사람도 있다보니 업무 시간에 어설프게나마 웃을 수 있었다. 단팥죽이고 도리야키고, 단팥은 사람과 사람을 잇는 그 무언가가 맞나보다. ​1회 제공량은 285g(295kcal), 3200원이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