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남을 찬찬히 들여다보고 죽음을 똑바로 쳐다보면 그 사이에서 삶이 얼마나 생생해지는지. 일본 작가 사노 요코는, 역시나 통쾌하고 시크하게 삶을 말한다.

사진=우먼센스 하지영

사노 요코가 함부로, 그러나 눈부시게 쏟아내는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둥글게 뜬 눈이 달린 머리와 힘차게 탕탕 내리치는 꼬리에 대해 생각했다. 뺄 것도 더할 것도 없는 한 마리 싱싱한 생선 같은 삶을 낄낄거리다 울며 온통 귀가 되어 듣는다. 머리는 명징해지고 삶은 단순해진다. 사노 요코(1938년 6월 28일~2010년 11월 5일)가 우리에게 처음 들려준 이야기는 죽음에 관한 것이었다.

 

<100만 번 산 고양이>의 얼룩고양이는 백만 번이나 살았지만, 결국 두 번 다시 되살아나지 않았다. 우리는 사랑하는 하얀 고양이의 주검을 끌어안고 통곡하는 얼룩고양이와 함께 울었지만 죽음으로써 결국 삶이 완성된다는 것을 알았다. 그가 이후에 낸 책의 제목이 <죽을 의욕 가득>(원제 <죽는 게 뭐라고>)인 것은 의미심장하다. 잘 죽는 것은 잘 산다는 것과 다른 의미가 아님을 작가는 이미 1977년에 그림으로 그려 보여주었던 것이다.

 

그는 태어난다는 것에 대해서도 통찰을 보여준다. <태어난 아이>는 태어나고 싶지 않아 태어나지 않은 아이가 주인공이다. 그 아이는 태어나지 않았으니, 모든 게 상관이 없다. 아프지도 않고 가렵지도 않고 무섭지도 않고 간지럽지도 않다. 태어나야 그 모든 것은 비로소 ‘상관 있어’진다. 삶은 나와 상관 있는 것들과의 이야기이다. 태어난다는 것은, 그때 비로소 시작되는 삶의 모든 행복과 고통은 그 ‘상관’ 때문임을 그는 알고 있다. 그가 알고 있는 것을 이제는 우리도 안다.

 

그는 그 모든 것을 어떻게 알게 됐을까? 차가운 아버지와 이기적인 어머니 사이에서 자라나며 알게 됐을까? 중국 베이징에서 7남매 중 한 명으로 태어난 그는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와의 불화를 견뎌야 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병으로 일찍 죽은 오빠이다. ‘누군가 죽어야 했다면 그건 네 오빠가 아닌 너여야 했다’라는 무언의 증오를 어린 나이에도 느꼈다. 하지만 그는 강했다. 파리를 잘 잡았고, 건강한 굵은 똥을 누었으며, 미래에 대해 어떤 꿈도 가지지 않았다.

 

그는 2004년 유방암에 걸려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안 뒤 담배를 피우고 외제차를 사는가 하면 왕성하게 에세이집도 펴냈다. 그의 강함은 “지금 생각하면, 나는 똥과 된장이 뒤섞인 인생을 살아온 것 같다”라는 자각에서 나오는 것 아닐까? 된장이기를 염원하지도, 똥을 배척하지도 않고 통째로 끌어안는 삶. 그는 <문제가 있습니다>라는 에세이집에서 책의 필요성에 대한 세간의 믿음을 정면으로 비웃는다. 야한 이야기를 찾아 고전을 뒤지고, 허세를 부리기 위해 책을 읽다가 책에 완전히 빠져버린 중학교 시절을 고백한다.

 

책을 멀리하라고 충고하며 “활자 안의 청춘이 아닌 살아 있는 청춘을 즐겼어야 했다”라고 후회한다. 책을 읽어도 똑똑해지지 않는다며 책에 몰두하느라 이에 녹색 곰팡이가 슬었다던 말년의 마오쩌둥을 흉본다. 평생을 어마어마하게 읽어댄 독서가였던 그는 자신의 독서 경험을 한 줄로 요약한다. “책을 읽으면 모르는 것이 더 많아진다. 사람들은 거의 아무것도 모른 채 죽어간다.” 빨리빨리 하라고 재촉하는 친구에게 “친구야, 빨리빨리 일하면 나는 부자가 돼. 죽을 때 돈이 남아 있으면 어떡해? 아깝잖아”라고 대답하는 자세는 인상적이다. 끝까지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불타듯 살아낸 그는 “필사적으로 살아냈다. 두 번 다시 이렇게는 할 수 없으리라 생각되는 일도 이를 악물고 해냈다”라고 자부한다.

 

그의 인생 내내 고통이었던 어머니는 말년에 치매에 걸렸다고 한다. 그제야 착하고 순해진 어머니에게 말을 건다. “아, 피곤하다. 엄마도 피곤하지? 나도 지쳤어. 같이 천국에 갈까? 대체 천국은 어디 있을까?” 그러자 어머니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그래? 의외로 근처에 있는 모양이야.” 죽음 이후에도 말할 입이 있다면, 그는 우리에게 태어남과 죽음에 이어 죽음 너머의 세계, 의외로 근처에 있는 그 세계에 대해서도 그 특유의 솔직한 입담으로 말해주겠지. 그랬다면 좋겠지만 그러지 않아 다행이다. 그는 이미 충분히, 아주 충분히 살았으니까.​

 

글쓴이 박사

문화 칼럼니스트. 현재 SBS 라디오 <책하고 놀자>, 경북교통방송의 <스튜디오1035>에서 책을 소개하는 중이며, 매달 북 낭독회 ‘책 듣는 밤’을 진행하고 있다. 저서로는 <도시수집가> <나에게 여행을> <여행자의 로망 백서> <나의 빈칸 책> 등이 있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