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통한 초연결사회…덕질은 세계를 보는 눈을 바꾸고, 심지어 변화시킨다

4차산업혁명의 기술 중에서도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사람과 사람을 즉시, 혹은 동시적으로 이어주는 초연결적인 디지털 환경이다. 이제 모바일은 보편적인 기기가 됐다. 사람들은 이동 중일 때나 머무르고 있을 때나 모바일에 접속해 사람들과 커뮤니케이션을 이어간다. 커뮤니케이션의 감각이 변화한 것이다.

이 감각들은 기존에 우리가 생각하고 있던 경계들을 끊임없이 허문다. 모바일을 통한 연결은 이전까지 홀로 고립되어있거나 교류가 없었던 문화를 서로 융합시킨다. 때로 이 과정에서 충돌과 잡음도 발생하는데, 그 크기는 가치판단이 힘들 정도로 광대하다. 이 때문에 종종 우리의 예상을 빗나가기 마련이다.

스프레더블 미디어(Spreadable Media)는 이러한 초연결 사회를 설명하고자 하는 용어 중 하나다. 국내에는 <팬, 블로거, 게이머> 저자로 잘 알려진 헨리 젠킨스가 공동집필한 책의 제목이기도 하다. 스프레더블 미디어는 ‘어떻게 콘텐츠가 확산되는가’라는 질문에 산업적, 문화적인 논리를 결합해 응답한다. 끊임없이 연결되는 사람과 사람 그리고 그 가운데 지속적으로 일어나는 충돌과 잡음은 현재 미디어 환경에 대한 보다 깊은 분석을 요구한다. 기술이 문화를 바꾸는 식에 그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스프레더블 미디어를 이해하는 방식은 어쩌면 생각보다 쉬울 수도 있다. 이미 우리는 스프레더블 미디어 환경에서 일상적으로 콘텐츠를 확산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 아침, 제일 먼저 우리는 인스타그램을 통해 다른 사람의 일상을 엿보거나 정보를 얻었을지도 모른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출근길이나 날씨를 해쉬태그를 통해 공유하고, 우리를 알지 못하는 또 다른 사람들이 갖고 있는 관심사에 접근했을 수도 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우리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수많은 팔로워를 가진 일반인 셀러브리티가 되어있을 수도 있다.

이 현상은 아주 드문 케이스가 아니다. 이미 우리 주변 많은 사람들이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다양한 관심사를 공유하고, 끊임없이 확산시키고 있다. 예전에는 이런 확산이 위에서 아래로 향했다. 지금은 아니다. 자본의 힘만을 따르지도 않는다.

다른 문화권(방탄소년단들의 미국 팬들이 한국어로 응원하는 모습을 보라) 사이 혹은 문화권 내부의 콘텐츠 공유는 한 방향으로 흐르는 힘의 원리를 따르지 않게 됐다. 위에서 아래로, 아래에서 위로 심지어 가로지르는 힘의 상호작용에 의해 결정되는 미디어 환경에 우리는 놓여있다. 결국 스프레더블 미디어가 함축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것은 다음과 같다. 보다 참여적이고 보다 복잡한 혼합 미디어 환경 모델이 우리 앞에 직면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주체들이 있다. 미디어 환경을 자유자재로 다루면서 이러한 환경에 전략적으로 대응하는 집단들 말이다. 헨리 젠킨스는 여타의 수용자들과는 구분되는 팬 커뮤니티의 문화적 생산과 사회적 상호작용을 묘사하기 위해 ‘참여 문화(Participatory Culture)’라는 용어를 제안한 바 있다. 

 

이 개념은 팬 문화를 미디어를 통한 참여라는 보다 확장된 범주에서 논의할 수 있게 해줬다. 이제 이 용어는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 미디어에서 무언가를 수행하는 일련의 집단을 지칭하는 용어로 자리 잡았다.

본 칼럼은 이러한 팬 커뮤니티와 참여문화에 대한 이야기다. 혹은 여러분들의 이야기다. 이제까지 존재감이 드러나지 못했던 팬들의 다양한 행위들과 전략에 대한 사적인 이야기이자, 결코 가볍지 않은 사회문화적 현상에 관한 논의기도 하다. 역동적으로 변해가는 디지털 미디어 환경에 끊임없이 적응하며 존재감을 키워가고 있는 팬들은 이제 콘텐츠 생산자다. 동시에 ‘덕질’의 대상조차 변화시키는 폭풍의 눈이다.

디지털 미디어 환경은 사회적 관계를 새롭게 구성한다. 여기에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경제적 이윤의 논리도 틈입한다. 따라서 이런 복잡미묘한 상황을 배제하고 ‘스프레더블 미디어’에 대한 논의를 풀어나가기는 어렵다. 팬 문화 역시 마찬가지다. 앞으로 이 칼럼은 우리네 일상에 깊숙이 침투한 팬 문화를 ‘중요한 현상’으로 상정해 살펴볼 계획이다.

우리는 ‘남친짤’이 카톡 프로필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아이돌의 성장캐’가 주는 의미가 무엇인지, 내가 응원하는 가수의 문자투표 독려가 어떠한 방식으로 이루어지는지, 스밍은 무엇인지, 어떻게 중국이나 태국의 웹 드라마에 등장한 배우들이 한국에서 팬미팅을 갖게 되었는지, 아이돌 굿즈는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는지, 심지어 막이 내려버린 영화를 어떻게 배우들까지 초청해 대관상영하게 되었는지, 충무로의 인쇄업자들이 어떻게 대기업화 되어가고 있는지 등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여기에는 장르적 제한도 나이의 제한도 없다. 콘텐츠들이 왜, 그리고 어떻게 확산되는지에 대한 미묘한 해석들이 바로, 지금, 현재에도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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