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들 비난 쇄도, 진정서까지 접수…檢 “형량조정 협의 탓 발생한 일, 서면구형은 자주 있다”

서울 송파구 서울동부지방검찰청. 사진=뉴스1

 

검사가 재판 마무리 절차인 결심 공판에서 구형을 준비하지 않은 일이 발생했다. 검사 직무를 유기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19일 시사저널e 취재결과 서울동부지검 소속 이세진 검사(사법연수원 31기)는 전날 서울동부지법에서 진행된 유모씨의 특정경제범죄법상 사기 등 혐의 결심 공판에서 구형하지 않았다.

유씨는 1조원대 금융 피라미드 사기 범죄로 대법원에서 징역 15년 형이 확정된 김성훈 IDS홀딩스 대표의 공범으로, IDS홀딩스의 산하 조직인 도무스그룹의 그룹장이다.

재판을 방청한 피해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재판부는 이날 중요 증인에 대한 신문 이후 결심까지 진행하겠다고 사전예고 했다. 하지만 이 검사는 최후 논고와 구형 의견을 밝혀달라는 재판부의 요구에 “잊었다”라는 황당한 답변을 내놓은 것으로 전해졌다.

한 피해자는 “이 검사가 당황한 듯 웃으며 ‘판사님 오늘 결심인 줄 몰랐는데요. 준비를 안 해왔는데요’라고 말했다”면서 “‘잊었다’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을 보고 황당했다”고 전했다.

재판부는 이 검사의 요청을 받아들여 약 15분간 휴정했으나, 이 검사는 이후 “서면으로 제출하겠다”면서 결국 의견을 내지 않았다.

공판 검사의 불성실한 태도에 방청 중이던 피해자 100여명은 고성까지 질렀고 한동안 소동이 벌어졌다는 후문이다. 일부 피해자는 이 검사를 향해 “법복을 입은 게 부끄럽지도 않으냐”며 모욕적인 발언까지 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판을 지켜본 또 다른 피해자는 “이 검사는 재판과정에서 하품하는 등 불성실한 태도를 보였다”면서 “재판이 끝나자 피해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다리를 꼬고 피고인의 변호사와 사담을 나누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특히 “IDS홀딩스 사건은 1만2000여명의 피해자가 발생하고 37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지병이 악화돼 숨진 엄중한 사건”이라면서 “이 검사는 피해자들을 무시하고 기만했다”라고 꼬집었다.

재판 이후 피해자들은 이 검사를 처벌해 달라며 그가 소속된 서울동부지검에 진정서까지 접수했다. 이 검사의 사례는 공판검사가 소송 활동을 게을리했다는 점에서 비난 가능성이 크다는 게 법조계 안팎의 분석이다.

대검찰청 홈페이지에 명시된 ‘검사의 역할’에 따르면 검사는 형사 법정에서 피고인의 범죄를 입증하고 법관에게 죄에 상응하는 형을 구형하는 등 피고인의 죄에 합당한 형이 선고되도록 소송 활동을 수행해야 한다.

또 형사소송법 제302조(증거조사 후의 검사의 의견진술)는 ‘피고인 신문과 증거조사가 종료한 때에는 검사는 사실과 법률적용에 관하여 의견을 진술하여야 한다’고 규정한다.

구형은 법원 판단에 구속력이 없지만, 검사의 최종 의견을 밝힌다는 점에서 이번 행위가 사실상 검사의 권한을 포기했다는 비판까지 제기된다.

대한법학교수회 백원기 회장(국립인천대 교수)은 이번 사건에 대해 피해자 뿐 아니라 모든 국민들의 공분을 일으킬 수 있는 사건이라고 혹평했다.
 

백 회장은 “재판부가 앞선 기일에 결심을 예고했다면, 검사는 사건을 종합 검토하고 당연히 구형했어야 한다”면서 “형법상 직무유기, 검찰징계법상 징계사유에 해당될 여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백 회장은 나아가 “검사의 구형이 없었다면 재판 절차가 마무리됐다고 볼 수 없고 재판부는 한 기일을 더 준비해 결심 공판을 진행했어야 한다”면서 “서면으로 구형하겠다는 검사의 의견을 받아준 재판부도 비판에 직면할 여지가 상당하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서울동부지검 관계자는 서면구형이 자주 있는 일이고, 사전에 준비한 구형보다 무거운 형량을 요구하려다가 발생한 일이라고 해명했다.

이 관계자는 “통상적으로 수사검사와 공판검사가 분리돼 있고 공판과정에서 사정 변경이 발생해 죄질이 무겁다고 판단되면 구형량을 다시 협의하는 과정이 있을 수 있다”면서 “이 검사가 휴정을 신청한 이유는 이미 선고된 공범들의 판결과 관련해 수사검사, 공판부장검사와 조정이 필요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이어 “(이 검사의 연락을 받은) 공판부장검사가 (구형량과 관련해) 조정의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해서 서면제출을 지시했고, 이 검사가 지시대로 대응한 것”이라며 “좀 더 중한 구형량을 조정하기 위해서 추가적인 서류 심사가 필요했다”고 부연했다.

그는 “지점장급 공범들이 1심에서 무죄판결을 선고 받고, 공범들보다 혐의가 중하다고 판단되는 유씨에게 검사가 속 시원하게 구형하지 않으니 오해를 빚을 수는 있다”면서도 “(서면 구형은) 자주 있는 일이다”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공범들의 판결이 한 달 또는 일주일 전에 선고됐다는 점에서 검찰의 해명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지적을 피하기 힘들다. 사건의 정범인 김성훈 대표의 상고심 판결은 지난 13일에, 지점장 15명에 대한 1심 판결은 지난달 20일에 있었다. 이 검사가 사전에 공판 부장검사, 수사검사와 협의할 시간이 충분했다.

이에 대해 동부지검 관계자는 거듭 “무거운 형이 선고되도록 공판검사 역할을 하려고 한 것”이라면서 명확한 답변을 주지 않았다.

한편 유씨는 2011년 11월부터 지난해 8월까지 김성훈 대표를 도와 총 8841회에 걸쳐 피해자들에게 합계 2162억여원을 가로챈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은 취재가 시작된 이후 유씨에게 서면으로 징역 20년을 구형했다. 유씨의 1심 선고일은 내년 1월 19일로 예정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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