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 김중근은 건축을 넘어 그래픽 작업을 겸하는 건축가이자 공간 그래픽 전문가. 몸에 익은 공간감을 바탕으로 그래픽 요소를 더하는 재능 부자 김중근을 건축가 양진석이 만났다.

촬영협조 앤드건축사사무소(www.aandd.co.kr) 

 

사진=리빙센스 백경호(프리랜서)

건축가는 공간만 디자인할까? 건축가는 생각보다 다재다능한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다. 대부분의 재능은 인문·예술 분야. 하나의 맥락으로 연결되지만, 그 관심과 취향이 남다른 건축 관념을 만들며 자신의 시그니처 디자인, 건축물로 완성된다. 현대 건축의 거장 르 코르뷔지에는 가구 디자이너이자 화가였고, 필력을 지닌 논객이며 사상가였다.

 

건축가로서 가진 기술과 재능은 다른 분야에서는 물론 더 확장된 시각을 갖는 무기가 된다. 건축가 김중근은 여느 건축가들과 달리 공간에 그래픽을 넣는 디자이너로서의 역할을 겸한다. 그가 대표로 있는 앤드건축사사무소 또한 건축설계팀과 공간 그래픽팀으로 구성돼 공간의 완성도에 그래픽적인 밀도를 높이려는 열의를 분명하게 드러낸다. 자신의 건축 관념을 시각적으로 커뮤니케이션하는데 익숙한 그가 작업에서 갖는 이점은 무엇일까? 건축가 양진석과 함께 이야기를 나눴다.

 

소장님은 우리나라에서 건축과 공간 그래픽을 동시에 하는 유일한 건축가로 알려져 있어요. 건축 설계와 공간 그래픽을 함께 작업하는 경우는 많지 않아요. 특히 공간에 들어가는 사인 그래픽은 눈에 띄는 작업이 아니다 보니 건축의 극히 작은 일부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공간에 들어가는 시각물은 생각보다 더 건축적인 이해도가 필요한 디자인 작업이죠. 같은 맥락으로 연결을 해야 사용자에게 유용한 시각물이 되거든요.

 

1,2 판교 엘하우스는 물리적 공간에 건축주의 심리가 시각적으로 확산되는 방식을 보여주는 김중근 소장의 주택 프로젝트. 11개의 레벨로 구획된 평면으로 설계했는데, 가족 구성원 각자가 다른 삶의 방식을 가졌기에 이를 각자 7개의 레이어로 분할하고 하나의 집으로 연결시켰다. 3 남산 아래 경사진 비탈면을 활용해 제안한 이태원 주택./ 사진=리빙센스 백경호(프리랜서)

건축과 공간 그래픽은 영역을 나누어 생각하는 일이 흔했는데, 대한극장이 이를 동시에 진행하게 된 첫 프로젝트였죠? 이 두 분야가 서로 다르지 않다는 인식을 사람들에게 심어주기도 했고요. 네, 맞아요. 건축가들은 보통 공간 설계와 시공 및 감리를 맡고 디자인 파트나 사인은 전문 제작 업체에서 따로 작업하는 것이 보통이죠. 하지만 건물이 완공된 이후에 공간에 들어가는 그래픽을 기획할 경우, 기획 의도와 다르게 의미가 왜곡되거나 불필요한 디자인이 되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분리해서 작업을 하다 보니 건축가들과 그래픽 디자이너가 각자의 영역이 갖고 있는 입장의 차이 때문에 사이가 틀어지는 경우도 더러 있고요. 대한극장을 설계하면서 이 모든 것을 총체적으로 진행하는 것이 맞다고 판단했어요. 사인 그래픽이라는 것도 만만치 않은 작업이었는데, 시각 정보와 색채, 소재에 대한 연구가 공간과 맞물려 함께 가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죠.

 

4 웬만한 도서관을 방불케 하는 책들이 켜켜이 자리한 책장들은 자료실도 되고 파티션 역할도 한다. 건축가 김중근은 해외에 나갈 때마다 서적을 구매하는 습관이 생겼다고. 5 근생 건물 아티즌(ARTIZEN). 13년 전 김중근 소장이 설계한 아티즌 4층과 복층에 앤드건축사사무소가 자리한다./ 사진=리빙센스 백경호(프리랜서)

건축과 그래픽 디자인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는 거죠? 요즘은 건축과 인테리어도 분리해 판단하는 게 당연시되고 있는데…. 역시 쉽지 않은 작업일 것 같아요. 건축이 골격을 만든다고 하면 인테리어는 스타일이 중심이 되지요. 공간 안 사인 그래픽(Sign graphic)은, 언어에 비유하면 말투 같은 것이라 생각해요. 말투가 어색하면 설명에 집중이 안 되는 것처럼 존재 자체가 일종의 가이드라인 역할도 하고요. 외국에서는 사인 그래픽을 웨이파인딩(Wayfinding, 목적지를 쉽게 찾도록 유도하는 시스템) 영역에 두는데 요. 가이드를 할 때 너무 앞서 나가 구구절절 설명하는 것도 불필요하고, 너무 축약해서 해야 할 말을 안 하는 것도 침묵과 같으니 필요한 곳, 적재적소에 공간과 같은 목소리를 내야 하는 거죠.​

 

건축가로서 그래픽 작업을 겸하고 계신데 어떤가요? 좋은 건축가의 역할에 대해 항상 고민하고 있어요. 건축이 하나의 브랜드가 되기도 하는 시대니까요. 그래픽 작업을 겸하는 입장에서는, 외부적으로 건물의 사인 그래픽을 미미한 분야로 생각하는 경향이 아직도 많아서 힘들기는 해요.

 

초기에는 주로 건축가들이 의뢰를 많이 했죠? 자신의 건물을 시각 언어로 설명할 수 있는 작업을 해주었으면 좋겠다는 요청을 많이 받았어요. 공간에 대한 이해에서 출발하는 작업이다 보니 저에게 이야기하고 맡기는 게 아무래도 자연스러웠던 것 같아요. 건축과 공간 그래픽 디자인, 실내 디자인, 조명 등 분야별로 디테일한 부분이 많아 협의하는 과정이 만만치 않죠.

 

주택 설계도 많이 하고 있죠? 총 10채 정도 지었어요. 최근 2년 사이 4채를 지었고 1채는 시공 중이고요. 건축가에게도 주택은 굉장히 다사다난한 프로젝트예요. 제가 공간에 그래픽 작업을 하게 된 계기는 개인적으로 순수하게 그래픽 작업을 좋아해서예요. 대학 시절에는 학교에서 로고 디자인, 설계 사무소 시절에는 보고서 디자인 등 시각 작업들에 재미를 느껴왔던 것이 계기가 됐어요. 집도 마찬가지예요. 집이란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을 담아놓는 보물상자 같은 곳인데요. 어찌 보면 당연한 얘기겠지만, 건축가로서 집을 짓는 이유는 알면 알수록 굉장히 매력적인 대상이기 때문이죠. 건축주라면 숨겨둔 것을 보여주고 싶기도 하니 드러내려고도 하면서 한편으론 나만 보고 싶기도 한 공간이잖아요. 이러한 심리를 공간에 구현해내는 작업이라 여전히 흥미롭지요.

 

1 전시장에서 구매한 포스터로 만든 아트 패널은 전시와 책을 생활 가까이에 두는 건축가의 일상을 보여준다./ 사진=리빙센스 백경호(프리랜서)

 

소장님의 집에 대한 생각이 궁금한데요. 디테일한 부분을 연결할 때는 일반 건축가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작업하실 것 같아요. 사람들과 함께하는 공간, 반면 나만의 내밀한 공간이 어우러진 건축이 집이죠. 특정 회사의 사옥이나 브랜드와 관련된 일을 많이 진행하곤 했는데, 집이 아닌 건축은 건축주와 사용자가 다른 경우가 많아요. 사용자는 주로 고객이에요. 따라서 설계를 할 때 반드시 해야 하는 과정 중 하나는 건물을 사용할 사용자를 대신해 건축주를 설득하는 일이에요. 집은 그렇지 않죠. 건축주가 곧 사용자니까요. 건축주가 좋아하고 하고 싶은 이야기, 그 사람의 이야기를 내가 하는 공간 언어로 번역해서 말을 건네는 게 집을 설계하는 일이죠.

 

 

건축주의 이야기를 공간 언어로 풀어내려면 세밀한 부분까지 신경 써야 할 것 같은데, 이를 놓치게 되면 번역이 잘못돼 오해가 생길 수도 있잖아요. 건축주들 대부분이 원하는 집에 대해 말해보라고 하면, 종종 자신이 즐기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도 꼭 필요한 것처럼 이야기하곤 해요. 무슨 이야기냐면,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을 설명하기보단 남들 눈에 좋아 보이는 것들을 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거죠. 이야기를 쭉 듣다 보면, ‘또 다른 아파트와 다를 바 없는 도면을 이야기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왜 이걸 좋아한다고 했을까?’, 미로에서 길을 찾듯 반문하다 보면, 단독주택에서 살아본 경험이 없는 분은 당연히 아파트의 환경에 익숙해져 있기에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파악하기가 어려워요. 그러한 생각들은 어쩌면 당연하기 때문에, 이를 반대로 생각해보고 제가 건축주가 되어 생각해보기도해요. 그 삶을 대변해내는 방식이 집을 짓는 데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판교 엘하우스(L-HOUSE)가 세간에 좋은 평가를 받았어요. 많은 블로거들 이 이 집에 대해 재미있다는 반응을 보였어요. ‘L-HOUSE’라는 이름에는​ ‘11 Levels - 7 Layers - 4 Lives - Lee’s House’라는 기획 의도를 담았죠. 11개의 레벨로 설계하고 가족 구성원의 삶의 레이어를 담아낸 집이에요. 사람들의 삶이나 생각이 곧 레이어가 된다고 생각하고 설계했어요. 그 레이어는 어떨 땐 세대차이가 되기도 하고, 서로 다른 취향이 되기도 하죠. 하지만 위에서 보면 투명하게 하나의 공간에 모여 있어요. 굉장히 다양한 공간이기 때문에 4명이 살고 있고, 모두 이씨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건축물의 이름 하나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지요.

 

2 신사동 아티즌(ARTIZEN) 내 오피스 4층에서 건축가 양진석과 김중근 소장이 만났다. 3 페터 춤토르(Peter Zumthor)와 소우 후지모토(Sou Fujimoto)는 지금도 김중근 소장에게 영향을 주는 건축가이자 디자이너들이다./ 사진=리빙센스 백경호(프리랜서)

 

가족의 삶이 곧 이야기이자 삶을 담는 건축으로 설계하신 거네요. 엘하우스가 우리네 일상과 다를 바 없는 클래식한 단독주택이라면, 제가 지은 집중에 파주 주택은 새로운 과제가 하나 추가되어 있어요. 집과 일에 대한 균형을 맞추려고 하는 건축주의 니즈가 있었거든요. 재택근무를 하는 건축주를 위해 주택이자 작업공간을 동시에 구현해야 했어요. 지금도 그렇지만 미래에는 더욱 업무 환경이 고정되지 않고 움직이는 오피스로 확장될 거란 생각을 해요. 업무 환경을 집과 연결하는 과정이 설계에 포함됐는데, 다양한 삶을 담아내는 것이 집이라면 다양한 삶을 구성하는 방향을 제시하는 것도 집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좋은 집을 지으려면 어떤 생각으로 자신이 원하는 바를 정립해야 할까요?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솔직 담백하게,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많이 필요할 것 같아요. 우리는 아직도 자신이 좋아하는 것보다 남들도 좋아할 것들에 대한 관심이 더 많아요. 자신이 삶과 진짜 원하는 방향에 대해 깊은 고민이 필요하죠. 건축주가 좋아하는 것에 대한 스케일을 넓게 그린다면, 더 깊이 있는 시각이 생길 듯합니다. 바라보는 시각이 확장될수록 더 좋은 집이 탄생하니까요.​

 

SPECIALIST OF THIS MONTH

건축가 김중근

건축가 김중근

연세대학교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정림건축에서 실무를 익혔다. 현재 앤드건축사사무소 대표이자 연세대학교 실내 건축학과 외래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충무로 대한극장과 판교 엘하우스(L-HOUSE)를 설계하고 원주 뮤지엄 산의 종이 전시실 인테리어, 삼성 갤럭시 팝업 스튜디오 인테리어와 매뉴얼 등을 디자인했다. 건축 설계뿐 아니라 N서울타워, CJ인재원, NC Soft 판교사옥의 시각 디자인을 담당했다.​

 

 

건축가 양진석

INTERVIEWER

 

건축가 양진석

 

교토대학 건축대학원을 졸업하고 현재 서울시 건축위원회 심의위원, 와이네트워크와 와이그룹 대표를 맡고 있다. 건축 설계와 디자인 작업 외에 강연과 방송을 통해 대중에게 건축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러브하우스 플랫폼 앱을 개발해 새로운 건축 서비스를 선보인 데 이어, 최근에는 양양에서 설해원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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