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만능주의에 경종 울린 글로벌 금융위기…금융시스템 안정·소비자보호는 당국의 책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컬럼비아 대학의 조셉 스티글리츠 교수는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시장에서 ‘보이지 않는 손’이 보이지 않는 것은 그런 손이 없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아담 스미스 이후 경제주체들이 이기적 목적의 이윤이나 효용의 극대화를 자유롭게 추구하도록 놔두면 모든 것이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에 의해 조정되어 사회 전체의 효율을 최대화할 것이라는 시장만능주의자들의 주장에 정면으로 반기를 든 것이다.

2008년의 금융위기는 ‘신자유주의’(neo-liberalism)로 불리는 시장만능주의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냈다. 특히 금융시장에서 맹목적 자유방임이 불러온 파탄은 상상 외로 컸다. 기업의 흥망성쇠는 그 기업의 책임이라며 금융에 있어서도 정부의 간섭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이론가들은 거대 기업이나 금융회사가 파산했을 때 그 여파가 한 국가를 넘어 글로벌 금융시스템에까지 엄청난 위기로 몰고 간 현실에 당혹했다.

우리도 한동안 시장만능주의에 대한 맹목적 신봉이 있었다. 금융회사와 소비자 간에는 엄연한 불균형이 존재함에도 금리, 수수료 등 가격에 대한 당국의 간섭을 금기로 여겼고 소수의 금융회사가 독과점 이윤을 챙겨도 ‘시장자율’이란 미명 하에 당국은 간섭을 꺼렸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금융시장에 위기상황이 발생해도 관치금융에 대한 반감 때문에 당국은 늘 법적근거를 따져서 대처해야 했다. 그러지 않고서는 결과에 대한 책임 논란에서 벗어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금융에서의 시장만능주의는 많은 부작용을 낳았다. 규제완화라는 명분하에 당국의 간섭이 줄어든 사이 금융회사들은 키코(KIKO)와 같이 훗날 부작용을 일으킬 금융상품을 공격적으로 팔았고, 정확한 검증도 없이 무분별하게 고위험 파생상품에 투자하여 거액을 날리기도 했다. 한때 바이코리아 열풍까지 불며 증시가 달아오를 때 주식에 문외한 국민들도 너도나도 집팔고 소팔아 주식에 손댔다가 깡통을 차기도 했고, 어느 재벌 증권사는 계열사가 부도위기에 몰린 정보를 감추고 그 회사의 유가증권을 팔아 많은 투자자들에게 손실을 입혔다.

우리는 그동안 현실세계에서 존재할 수 없는 가설을 마치 현실인양 믿었다. 금리, 수수료 등 가격에 대해서는 당국의 개입을 배제하고 시장자율에 맡겨야 한다는 주장은 ‘가격기구’(price mechanism)가 제대로 작동하고 모든 경제주체가 합리적으로 똑똑하게 행동하는 ‘완전경쟁시장’에서만 타당하다. ‘완전경쟁’은 수요자와 공급자가 아주 많아 누구도 가격에 영향을 줄 수 없고 수요자와 공급자가 모두 정보를 완벽히 이해한 상태에서 합리적으로 행동한다는 가정 하에서만 존재한다. 그런 시장이 현실 세계에서 존재할까.

현실의 금융시장에서는 수요자(소비자)는 다수이나 공급자(금융회사)는 소수다. 그러기에 완전경쟁은 없고 불완전경쟁만 있을 뿐이다. 불완전경쟁 하에서 공급자는 독과점 이윤을 얻게 되어 자원배분이 왜곡되고 부(富)의 양극화가 심화된다. 약자인 소비자는 강자인 금융회사가 정한 거래조건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고, 아무리 현명한 사람이라도 바쁜 일상에서 깨알 같은 약관을 다 읽고 거래하기란 쉽지 않다. 그럼에도 시장만능주의자들은 이처럼 ‘비현실적인 시장’의 자율기능을 신봉하며 당국의 간섭을 곱지 않게 보았고 소비자들의 피해에 눈을 감았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관치금융’은 공정경쟁의 여건이 조성되어 시장에 맡겨도 될 일을 당국이 구태여 간섭하여 부작용을 유발할 때 쓰는 말이다. 그러나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에서는 시장자율에 맡기는 것이 결코 공정하다고 할 수 없다. 운동장이 기울어져 있음에도 당국이 간섭을 꺼린다면 오히려 책무를 저버리는 일이 될 것이다. 당국은 금융회사가 부당한 폭리를 취하고 있다면 금리나 수수료를 적절히 낮추도록 유도할 수 있어야 하고 금융회사에게만 유리하게 짜여진 거래조건은 약관심사 등을 통해 형평에 맞게 조정해 줄 수 있어야 한다.

혹자는 정부지분 없는 금융회사를 순수민간회사라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순수민간회사가 금융업을 영위하는데 왜 정부의 허가가 필요할까. 금융회사는 불특정 다수인으로부터 돈을 모아 영업을 하는 특수한 기업이다. 은행의 경우 주주의 자본금이 전체 자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극히 일부분이다. 대부분은 불특정 다수로부터 모은 예금으로 조성된다. 이런 돈은 고객들이 당국의 관리감독을 믿고 맡긴 돈이다. 그러기에 당국은 고객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금융업을 영위하고자 하는 기업에게 사전에 허가를 받도록 하고 사후에 엄정한 감독을 한다.

일반기업은 망하건 흥하건 모두 자기책임이지만 금융회사는 망하면 정부를 믿고 돈을 맡긴 수많은 고객들의 손실로 귀착한다. 심할 경우 전체 금융시스템의 안정까지 위협한다. 그러기에 정부는 국민의 혈세인 공적자금을 투입해서라도 금융시스템을 보호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금융시장의 안전성과 신뢰성을 지켜주고 소비자를 보호할 책임이 있는 당국의 간섭을 무조건 관치금융으로 몰아세워선 안된다. 관치금융의 의미에 대한 올바른 인식의 정립이 필요하다.

문재인 정부는 과거 KIKO 사태와 같이 금융소비자들이 피해를 입는 것을 막기 위해 금융소비자 보호를 강화하겠다고 공약했다. 금융소비자가 철저히 보호를 받고 모두가 신뢰하는 거래가 이루어지며 금융회사들이 정도(正道)경영을 통해 체질을 강화하면서 경쟁력을 키워갈 때 우리 금융산업도 견실하게 성장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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