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공식 선언하기 6개월 전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혼자서 통곡의 벽(Western Wall) 앞에 섰다. 유대 전통 모자인 키파를 쓰고 통곡의 벽에 오른손을 댄 채 몸을 앞뒤로 살짝 흔들었다. 유대 랍비들이 이곳에서 하는 행동과 비슷했다. 그는 짧은 묵념을 마치고 벽 틈 사이에 쪽지를 밀어 넣었다.
이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6일(현지시간)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인정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미국 행정부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정치, 경제계도 중동과 국제사회가 요동칠 것을 예상했다. 하지만 소용돌이의 중심에 있는 이스라엘 정치계가 오히려 이 혼란을 대환영했다. 트럼프의 독단적인 결정이 아니었던 것이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이제 그(트럼프)의 이름은 이 도시의 영광스러운 역사에 다른 이름들과 함께 자랑스럽게 진열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스라엘과 전 세계에 흩어져 살고 있는 유대인들을 대변한 발언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이스라엘 관계자는 이를 두고 이렇게 설명했다. "완전한 평화를 보장하는 것도 중요하나,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정하는 것이 더 중요했다. 예루살렘은 유대인의 의식에 자리 잡은 핵심 지역이다. 유대인은 (국제적 분쟁으로 인한) 심리적 부담마저 즐기게 될 것이다."
◇예루살렘 수난의 역사, 트럼프 종지부 찍다
예루살렘이 이스라엘의 수도로 인정받은 것은 유대 민족에겐 역사적인 사건이다. 서기 70년 로마 티투스 장군 휘하의 제10군단에 의해 예루살렘이 화염에 휩싸이는 대사건이 있었다. 유대 민족 전체에 정신적 충격을 준 것은 학살과 약탈이 아니었다. 성전의 무너짐이었다. 디아스포라의 서막을 알린 사건이다. 서기 135년 2차 유대 반란으로 유대 민족은 끝내 전 세계에 흩어졌다. 600만 유대인 학살이 자행된 홀로코스트가 끝날 때까지였다.
이스라엘은 1948년 5월14일 독립했다. 이후 1967년 6일 전쟁(3차 중동전쟁)에서 이스라엘은 예루살렘을 탈환하고 자신들의 수도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절반의 성공이었다. 국제사회가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국제사회는 이스라엘의 예루살렘 전체 병합을 인정하지 않았다. 유엔 총회는 이미 1947년 이스라엘이 독립하기 전부터 예루살렘을 국제관리체제에 두는 결의안 181호를 채택했다.
미국도 이스라엘 독립 이후에도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수도로 인정하지 않았다. 이후 유대인의 막후 작업이 진행되면서 미 의회가 미 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이전하도록 하는 예루살렘대사관법을 1995년 제정했다. 하지만 미국은 외교적 마찰과 중동의 혼란을 우려해 결정을 6개월간 보류할 수 있는 유예조항을 둬 대사관 이전을 미뤄왔다.
이스라엘로서는 미국의 이런 조치에 지쳐갔다. 하지만 트럼프가 나타났다. 트럼프는 대선 후보 시절인 지난해 9월25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를 만나 "대통령이 되면 예루살렘을 수도로 인정하고 미국 대사관을 옮기겠다"고 약속했다. 이후 트럼프는 예루살렘 유대 성지인 통곡의 벽을 공식 방문하고 11월 "이스라엘 수도는 예루살렘이다"라는 문서에 서명했다.
◇수천년 갈등의 진원지였던 예루살렘, 기독교-이슬람교 이어 새 주인 유대인 맞아
예루살렘은 2000년 동안 주인이 수차례 바뀌는 역사를 겪었다. 기원전으로 올라가면 이스라엘 민족의 선조 아브라함이 신의 명령에 따라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치려한 장소가 예루살렘이었다. 기원전 1000년엔 다윗왕이 예루살렘을 탈환하고 고대 이스라엘 왕국 수도로 삼았다. 이때부터 예루살렘은 정치, 경제, 종교의 수도이가 된다. 그 아들 솔로몬왕은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려 했던 장소에 성전을 세웠다. 예루살렘이 유대 민족 전체의 정신적 중심지가 되는 순간이었다.
바벨론제국 침략으로 이 성전은 무너진다. 이후 이스라엘 스룹바벨 총독 지도로 제2성전이 지어졌다. 서기 60년 헤롯왕이 성전을 재건했다. 이 성전이 로마에 의해 파괴된 것이다. 지금 남아있는 통곡의 벽은 로마 제국이 남긴 폐허의 흔적이다.
1967년 6일 전쟁에서 이스라엘이 극적인 승리를 하면서 예루살렘은 완전히 유대인에 점령된다. 강력한 민족주의에 의해 유대인은 유엔의 결정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다윗왕과 솔로몬왕의 영광을 실현했다는 상징성이 더 컸다. 국제사회는 물론 인정하지 않았다.
그런 예루살렘을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국제사회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유대인이 주인이라고 공식 선언했다. 서기 70년 유대인의 흩어짐 이후 정확히 1933년 만이다. 팔레스타인과의 평화가 깨지더라도 유대인은 예루살렘의 새로운 주인으로서 권리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게 국제 시각이다. '평화의 도시'라는 뜻을 가진 예루살렘은 역사적으로 그랬듯 주인이 바뀔 때마다 정치적, 종교적 갈등의 진원지가 됐다. 이번에도 같은 운명에 처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