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세계를 만드는 자, 어슐러 르 귄
  • 하은정 글 박사(북 칼럼니스트) 우먼센스 기자(brandcontents@sisajournal-e.com)
  • 승인 2017.12.08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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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메일 아이디는 ‘catwing’이다. 어슐러 르 귄의 동화 에서 가져온 단어다.
사진=우먼센스 하지영

세계를 만드는 사람이 있고 세계를 향유하는 사람이 있으며, 세계를 재현하려는 사람이 있다. 나는 향유하는 사람이다. 그들이 만든 세계를 떠돌고, 그들이 낸 길을 걷고, 그들이 펼쳐놓은 바다를 바라본다. 그 속에서 사람들의 대화를 곱씹고 현실에 반쯤 걸쳐놓은 발가락을 꼼지락대며 망망대해를 항해하는 배를 좇는다. 그리고 내가 떠돌고 향유한 세계 중 가장 멋진 곳은 단연코 ‘어스시(Earthsea)’다.

 

작가 어슐러 르 귄을 꽤 오래전부터 좋아해왔다. 이국적인 이름을 혀를 굴려 발음할 때의 느낌이 좋아서만은 아니다. 내가 그의 작품 중 가장 먼저 보았던 작품은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이었는데, 그때 받았던 충격은 대단했다. 몇 번이고 읽고, 몇 번이고 같은 곳에서 목이 메었고, 몇 번이고 충격을 삼키며 책장을 덮었다. 어슐러 르 귄이 이 소설을 쓴 해는 1973년이었고 이듬해 휴고상 단편 부문을 수상했다.

 

SF와 판타지, 동화 등 어슐러 르 귄이 쓴 책은 압도적으로 많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전 쓰는 법을 익히자마자 글을 썼어요. 아무래도 글 쓰는 것이 천성이지 싶군요. 처음에는 시를 썼고, 열 살쯤부터는 이야기도 쓰기 시작했어요. 그 후로 쭉 시와 이야기를 써왔지요. 그러니까 70년을 쓴 셈인가요?”라고 말했다. UC버클리의 문화인류학자인 아버지와 작가인 어머니 ​사이에서 나고 자라며 글 쓰는 일을 삶처럼 자연스럽게 받아들였고, 양친은 그의 글 전체에 막강한 영향을 미쳤다. 그 자신이 문학 석사 학위를 받으며 공부해온 것과, 역사학자인 남편 찰스 르 귄을 만나서 받은 영향 또한 그의 글 전반에 두텁게 펼쳐져 있다.

 

그가 만들어낸 세계 중 하나인 ‘어스시’는 마법이 통하는 곳이다. 어슐러 르 귄은 5권의 장편소설과 1권의 단편소설집, 총 6권의 전집으로 그곳의 풍경을 그려냈다. 넓은 대양에 흩어진 수많은 섬 사이를 오가며, 사람들은 세계의 균형에 대하여 묵상한다. 태초에 창조주 ‘세고이’가 세상 만물의 진정한 이름을 불러 만들었다는 곳. 그곳의 중심은 해브너에 있고, 로크섬에서는 마법사들이 마법을 전수하며 세상의 균형을 굽어보고 있다. 어슐러 르 귄은 매번 다르게 펼쳐지는 모험을 통해 거듭, 거듭 말한다. 세상의 진정한 이름과 우리가 지켜야 할 것에 대하여.

 

보통 세계 3대 판타지로 C. S. 루이스의 <나니아 연대기>, J. R. R. 톨킨의 <반지의 제왕>, 어슐러 르 귄의 <어스시 연대기>를 꼽는다. 세 작품 중에 아무래도 <어스시 연대기>는 인지도가 떨어진다. 그것은 앞의 두 작품이 활발하게 영화화된 것에 비해, 다른 매체의 작품으로 만들어진 적이 거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어스시 연대기>는 상당히 문학적이고 심오한 메시지를 담고​ 있기 때문에 영화화하기 어렵다. 많은 이들이 탐냈다고 전해지나 성공한 사람은 많지 않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아들 미야자키 고로가 연출한 애니메이션 <게드전기 : 어스시의 전설>(이하 <게드전기>)은 그 흔치 않은 시도 중 하나다. 그리고 보란 듯이 실패했다. 어슐러 르 귄은 “등장인물의 행동이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삶과 죽음, 세계의 균형 등 원작의 메시지가 느껴지지 않는다”라고 혹평했다.

 

<게드전기>는 후미하루 나무딸기상 최악의 영화 작품상 1위, 뱀딸기 최악의 영화 작품상 1위, 영화예술협회 2006년 최악의 영화 10중 1위에 선정되는 등 작품성 자체로도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지만, 원작의 성과를 이어받는 데도 실패한 것이다. 사람들은 <어스시 연대기> 시리즈는 영상으로 옮기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것 아닐까 의심한다. 그러나 그러면 어떠랴. 소설을 읽는 것만으로도 이토록 깊은 울림을 주는데.

 

칼 융의 철학, 환경주의, 페미니즘에 도교 사상까지 인류가 더듬어온 지적인 흐름들이 판타지 소설 안에서 훌륭하게 살아나는 어슐러 르 귄의 소설을 읽는 것은 내 몸 전체를 지적 유산 속에 깊이 담그는 흔치 않은 경험이다. 돌아볼 때마다 새롭게 발견하는 그의 책을 읽는 것은 세계를 향유하는 우리의 기쁨이다. 언젠가 그에게 길고 긴 편지를 보낼 날이 있을까? 그날을 상상한 것은 아니지만 내 메일 아이디는 ‘catwing’이다. 어슐러 르 귄의 동화 <날고양이들(catwings)>에서 가져온 단어다.​

하은정 글 박사(북 칼럼니스트) 우먼센스 기자
하은정 글 박사(북 칼럼니스트) 우먼센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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