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명빈 교수 “모든 콘텐츠 꼬리표 달아 추적‧관리해야”…“표현 자유와 충돌” 신중론도

 

 

강원도청은 지난해 1월 4일부터 도청 홈페이지 게시판에 게시자가 소멸 시효를 정하는 '디지털 에이징 시스템(DAS)'을 적용하고 있다. / 사진=강원도청 홈페이지 캡처

#A씨(여‧23)는 남자친구와 2년간 교제 후 헤어졌다. 하지만 헤어진 뒤 남자친구는 교제 시 A씨와 찍어뒀던 포르노와 사진을 인터넷에 유포했다. A씨는 구글, 특정 음란 사이트, 웹하드 등에서 자신의 영상을 발견하고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받았다. A씨는 영상과 사진을 모두 지우는 것은 포기한 채 되도록 많은 사람들이 보지 못하도록 삭제하고 지속적으로 관리해 줄 업체를 찾는 중이다. 

 

“망각 없이 행복은 있을 수 없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평론가이자 소설가인 앙드레 모루아는 인간에게 기억을 차츰 잊는 망각이 있기 때문에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고 이렇게 표현했다. 하지만 디지털시대가 도래한 이후 망각이 사라졌다. 각종 뉴스와 개인사, 사진, 영상 등은 영원히 데이터로 인터넷상을 떠돌아다니고 있다.

 

게다가 최근 몰래카메라나 웹캠, 사물인터넷 등을 통한 개인정보나 사생활, 음란 사진 유출이 더 빈번해지고 있다. 인터넷 특성상 퍼나르기와 공유가 쉽고 저장이 용이해 고통받는 이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이들은 자신이 게재한 게시물, 타인이 무단으로 올린 게시물, 연관 검색어 등에서 ‘잊힐 권리’를 주장하고 있다.

 

잊힐 권리는 사이버 공간에서 사용자가 통제권을 갖고 자신이 원하지 않는 정보나 게시물을 지울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2009년 빅토어 마이어 쇤베르거가 저서 ‘잊혀질 권리’에서 처음 주장한 개념이다. 그는 새로 생성되는 모든 정보들에 정보 만료일을 부여해 정보가 일정한 기간만 유통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현행 법안에서 잊힐 권리는 부재한다. 위법한 콘텐츠에 대해서만 삭제, 임시조치 등을 취할 수 있을 뿐 사용자의 요구에 따라 함부로 삭제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설령 위법한 콘텐츠라고 하더라도 모든 콘텐츠를 뿌리 뽑기란 쉽지 않다. 유포된 전체 경로를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누군가 개인적인 공간에 저장해 버린다면 언제든지 다시 유포될 가능성이 크다.

 

이에 대해 잊힐 권리 관련 원천특허를 보유한 송명빈 성균관대 신문방송학 겸임교수는 “요새 복수를 빌미로 리벤지포르노 같은 것들이 성행하는데 대법원에서 불법 판결이 나더라도 지울 방법이 없다. 꼬리표를 달고 다니지 않기 때문”이라며 “앞으로 모든 콘텐츠에 꼬리표를 달아서 추적‧관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송 교수는 이어 “이런 것들을 시행하기 위해서는 검색 포털사들의 적극적인 협조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검색 포털사들은 모든 정보를 데이터화해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콘텐츠를 삭제하는 것에 대해서는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잊힐 권리를 주장하는 쪽에서는 인간의 존엄, 행복추구권, 개인정보 자기결정권, 명예에 관한 권리를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반대 진영에서는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 보도의 자유, 알권리, 기억될 권리, 기업경영의 자유를 근거로 내세우고 있다.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 교수는 “잊힐 권리에 대해서는 신중해야 한다”며 “개인의 권리를 중요시 여기는 이들이 자기정보통제권을 주장하지만, 개인이 모든 것을 지워버리면 공유된 경험이 없어지는 것일 수도 있다. 콘텐츠에 타인과 연결된 지점이 있다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편,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는 ‘제3회 잊힐 권리 토론회​가 진행됐다. 이번에는 잊힐 권리의 법제화와 전국 확산을 주제로 행사가 진행됐다. 앞서 2015년 열린 1회 행사에서는 잊힐 권리의 개념과 나아갈 방향이, 지난해 2회 토론에서는 잊힐 권리 기술적 확산 방향과 입법 논의 공감대 형성에 대한 논의가 이어졌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잊힐 권리 실현을 위해서 법제도를 손질하고 디지털 소비자 주권 강화 센터를 조성하자는 의견이 나왔다. 특히 한국의 특성상 인터넷이 매우 발달돼 정보가 범람하면서 이런 문제들이 더 크기 때문에, 조기에 법제화해 잊힐 권리에 관한 세계 표준을 주도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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