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은 사과도 진정성 의심…대한민국 온정주의가 부른 참사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의 3남 동선씨가 ‘로펌 폭행’으로 입방아에 오르내리자 사과했다. 고개를 숙이는 것을 넘어 납작 엎드리겠다고 했다. 김 회장도 “아버지로서 책임을 통감한다”며 사과문을 냈다. 폭행 기사가 보도된 지 반나절 만에 나온 두 개의 사과문이니, 한화그룹 입장에서는 발 빠른 대응을 한 것으로 보인다.

피해자들은 경찰에서 “동선씨의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의사를 밝혔다. 이로써 동선씨는 폭행죄 등으로 형사처벌 받을 가능성이 매우 낮아졌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건이 여론만 떠들썩했던 ‘해프닝’으로 종결될 것으로 전망한다.

그런데 동선씨의 사과가 자신의 과오를 한 번에 상쇄할 만큼 진실성이 있다고 볼 수 있을까?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상황에서 나온 사과의 말은 얼마나 가벼운가.

동선씨의 사과문은 변명으로 시작된다. 그는 “취기가 심해 당시 그곳에서 있었던 불미스러운 일을 거의 기억하기 어려웠다”면서 “다음날 동석했던 지인에게 ‘결례되는 일이 좀 있었다’고 (들었다)”고 밝혔다. 이어 “까마득히 모르고 지냈다. (보도를 통해) 저도 깜짝 놀랄 만큼 도가 지나친 언행이 있었음을 알게 됐다”고 털어놨다.

폭행 사건이 지난 9월에 발생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동선씨는 2개월 가까이 자신의 범죄 행위를 인지하지 못했다는 것을 자백한 셈이다.

동선씨는 또 “그 분들에게 우선 죄송하다는 사과의 문자를 보냈다”고 해명했다. 동선씨의 주장대로라면 그의 말 앞에는 ‘도가 지나친 언행을 했는지 몰랐지만’이라는 전제가 붙는다. 그는 무엇에 대해 사과했는지, 왜 사과를 해야 했는지도 알지 못했던 것이다.

동선씨의 진정성을 의심할 만한 대목은 또 있다. 그는 “제가 왜 주체하지도 못할 정도로 술을 마시는지 또 그렇게 취해서 왜 남에게 상처를 주는 행동을 하는지에 대해서 깊이 반성하겠다”면서 정신과 ‘상담’과 ‘치료’를 언급한다.

하지만 상담과 치료는 이미 두 달이 늦었다. ‘잘못이 알려졌으니 고치겠다’는 말은 ‘잘못이 알려지지 않았다면 고치지 않았을 것’이라는 의미와 맞닿아 있다. 그는 지난 1월 술집 여종업원 등을 폭행해 논란이 됐을 때에도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반성하겠다”고 다짐했다. 이제 와서 정신과 치료를 받겠다는 말을 누가 믿어 줄 수 있을까?

동선씨의 사과문은 법리적으로 철저하게 검토된 글이라는 의심도 든다. ‘술에 취해 기억이 나지 않는다’ ‘정신과 치료 등을 받겠다’는 주장은 법정에서 양형 참작 사유로써 자신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잇따른 동선씨의 범죄 행위는 재벌에 대한 지나친 온정주의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의 시선도 있다.

검찰은 지난 3월 동선씨의 ‘주점 폭행’ 사건에서 징역 1년의 실형을 구형했지만 법원은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 사회봉사 80시간이라는 상대적으로 가벼운 판결을 선고했다.

당시 재판부는 “술에 취한 상태에서 저지른 우발적인 범행이고, 음주운전에 따른 벌금형 외에 별다른 전과가 없다. 합의가 이뤄져 피해자들이 처벌을 원치 않고 있는 점을 참작했다”며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승마선수이기도 한 동선씨는 이 폭력 범죄를 저지르고도 가벼운 징계를 받는 데 그쳤다. 그는 ‘주점 폭행’으로 유죄판단을 받은 뒤 한 달 만에 승마대회에 출전했다. 규정상 폭력행위를 한 선수는 최소 1년 이상 출전정지 징계를 받게 돼 있는데도 말이다.

 

당시 승마협회와 대한체육회 측은 동선씨가 당시 국가대표 신분이 아니었다는 점, 폭행 사건이 다른 선수나 대회 운영 등과는 관련이 없었다는 점을 들어 ‘폭력’ 규정을 적용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동선씨는 또 2010년 10월 한 호텔주점에서 만취 상태로 종업원과 몸싸움을 하고 집기를 부순 혐의로 불구속 입건됐지만 “피해자들과 합의했다”는 이유로 기소유예 처분을 받기도 했다.

동선씨가 수차례 불이익을 피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이 사회의 ‘갑’으로 자리 잡은 재벌이라는 배경이 작용했을 것이라는 국민적 의심이 있다. 변호사 업계에서는 “한화그룹 회장 아들이 아니라, 28살 일반 성인 남성이었다면 결과는 달랐을 것”이라는 자조 섞인 목소리까지 나온다.

동선씨는 지난 3월 집행유예 판결을 내려준 재판부의 말을 다시 한 번 곱씹어 보길 바란다.

우리 사회는 기득권층에게 더 엄격한 사회적 책무와 무거운 형사책임을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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