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 롱패딩 추가 판매 현장에서 만난 사람들…1번 구매자는 전날 저녁 7시부터 줄 서

22일 오전 서울 롯데백화점 잠실점에서 세칭 ‘평창 롱패딩’ 구매 대기번호 1번과 2번을 받아든 이선우(우)와 오진아(좌)씨. 두 사람은 모자 지간이다. /사진=박견혜 기자

“(경기도) 일산 산다. 어제 저녁 7시부터 기다렸다. 늦게 오면 못 살 것 같아서 일찍 왔다. 다른 사람들도 거의 동시에 왔다. 처음에는 물건 사러 왔는데, 평창 올림픽 자체를 기념할 수 있어서 좋은 것 같다.” (이선우·32세·대기번호 1번)

대기번호 2번은 1번 이 씨의 어머니였다. 평창 롱패딩을 사기 위해 모자가 함께 온 것이다. “나는 이걸 꼭 사고 싶었다. 아들이 SNS를 통해서 알려줬다. 박스 깔고 앉아서 기다렸다. 잠을 자진 않았다. (패딩을) 살 수 있어서 매우 기쁘다.” (오진아·​67세·​​대기번호 2번)

 

막 차 타면 가능하고, 첫 차 타면 실패한다. 22일 치러진 평창 롱패딩 구입 공식이었다. 


오전 6시. 이날 롯데백화점 잠실점 애비뉴엘에서 단 1000명에게 허락된 ‘평창 롱패딩’ 선착순 접수가 마감된 시각이다. 사전 공지 된 판매 시작 시간이 오전 10시30분인 걸 감안해 “오전 7시에 가면 적어도 막차로 구매 대열에 낄 수 있지 않을까”했던 생각은 기자의 오판이었다. 

오전 7시. 백화점에 막 도착한 구매 희망자들은 “(구매 대기자) 1000분이 모두 다 찼다. 기다리셔도 구매가 불가능하다. 돌아가시라”는 롯데백화점 직원들의 말에도 발걸음을 돌리지 못하고 분통을 터뜨렸다. 

 

강서구에서 왔다는 한 여성(42)은 “오전 6시에 왔는데 코앞에서 1000명이 다 찼다고 하니 아쉬워서 돌아가지 못 하겠다”면서 “(재고) 수량이 남더라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팔지 않겠다고 하니 헛걸음했다는 생각에 화가 난다”고 말했다.

 

22일 오전 서울 롯데백화점 잠실점에서 평창 롱패딩을 사러 온 고객들이 대기하는 모습. /사진=박견혜 기자
이미 ‘구매 안정권’에 포함된 대기 그룹은 돗자리, 담요는 기본이고 캠핑용품 에어베드(airbed)까지 동원한 모습이었다. 밤샘을 단단히 준비한 것이다. 깨어있는 사람은 간신히 눈을 뜨고 있었다. 다만 뜬 눈이 아닌 억지로 벌려놓은 눈 같았다. 잠 든 사람은 곧 깰 듯한 잠을 자고 있었다. 담요로 전신을 칭칭 감고 쇼핑몰 바닥에 누워 휴대폰을 하는 사람도 다수였다. 

 

새벽 2시 도봉구에서 왔다는 김유경(24)씨는 “아침에 오려고 했다가 인스타그램에 전날 밤 11시부터 실황이 뜨는 걸 보고 급하게 새벽에 출발했다”면서 “오면서도 1000번 안에 못 들까봐 조마조마했다. 원하는 색상과 사이즈가 내 차례까지 남아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구매 기회가 주어졌다는 게 기쁘다”고 말했다.

실제로 100번대 언저리에 들어가려면 22일로 넘어가는 자정 전에 도착해야 했다. 대기번호 89번을 받은 한 남성(25)은 “새벽 4시쯤에 오려고 했는데 전날 저녁 7시부터 사람이 기다리고 있다는 얘기가 있어 저녁 9시에 급하게 왔다”고 말했다. 89번을 쥔 그의 손은 꿰맨 듯 닫혀있었다.
 

평창 롱패딩 선착순이 종료됨을 알리는 푯말. /사진=박견혜 기자

실제 ‘평창 롱패딩 구입안내’에는 “일부 컬러 및 사이즈는 재고가 준비되지 않을 수 있으며, 순차적 진행으로 조기품절 될 수 있습니다”는 내용이 담겼다. 1000번이 ‘블랙 S(스몰)’를 원한다고 블랙 S를 살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색상 별, 사이즈 별 수량이 한정된 탓에 뒷 번호로 갈수록 원하는 제품을 사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오전 8시가 되자 아예 ‘선착순 조기 마감 공지’가 붙었다. 백날 줄 서도 어차피 살 수 없다는 비정한 안내다. 뒤늦게 도착한 사람들이 조기 마감 딱지 주위로 몰려들었다. 현장을 관리하는 백화점 직원에게 항의하는 무리도 있었다.

오전 9시. 선착순 1번부터 차례로 번호표 배부가 시작됐다. 5열 종대로 길게 선 250여명이 우선 배부 대상자였다. 첫 번째 그룹을 대상으로 롱패딩 판매가 시작된 시간은 오전 10시30분이었다. 5명 혹은 10명씩 끊어져 판매 장소인 평창 올림픽 팝업 스토어에 입장했다. 한 무리가 패딩을 시착하고 결제하면, 그 다음 대기 무리가 입장해 패딩을 시착하는 방식으로 구매가 진행됐다.

당당히 첫 번째로 매장에 입장한 ‘1번’ 이선우씨는 원하는 색상의 사이즈를 무난히 살 수 있었다. 판매장 퇴로는 패딩으로 부푼 쇼핑백을 꼭 쥔 구매자들과 이를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는 행인, 취재진이 앞뒤좌우 없이 뒤엉켰다. 장장 12시간만에 평창 롱패딩을 안아든 구매자들은 취재진의 질문에 묵은 회포 풀 듯 대답을 이어갔다. 오전 11시 30분에는 400번대까지 순서가 내려왔다.

1000번 번호표를 받은 ‘최후의 1인’은 오후 6시가 돼야 시착과 구입이 가능할 것으로 보였다. 구입 기회를 어렵게 얻은 1000번 역시 꼬박 12시간을 견뎌야 비로소 살 수 있는 그 패딩. ‘세상에 남은 단 하나의 롱패딩’을 사겠다는 복마전을 방불케 한 22일 롱패딩 판매. 놀랍지만 오늘이 마지막이 아니다. 오는 30일 같은 곳에서 한 번 더 있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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