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솜방망이 처벌에 조작 인정 않고 영업 재개…나쁜 선례 될 수도

지난해 ‘디젤 게이트’ 파문으로 판매 정지를 당했던 아우디폴크스바겐 코리아가 국내 시장 판매에 시동을 걸었다. 첨병은 아우디 스포츠카 RS 쿠페가 맡았다. 국내 시장에서 판매가 중단된 지 14개월 만이다.

폴크스바겐도 조만간 판매 재개에 나설 것으로 점쳐진다. 정부 인증절차에 따라 판매 재개 시점이 확정되겠지만, 해를 넘기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판매중단 조치 이전까지 벤츠, BMW와 함께 수입차 시장을 3등분한 브랜드인 만큼, 판매재개 이후 빠르게 판매량을 회복할 것이라는 업계의 지배적인 관측이다. 대기 수요와 업체의 적극적인 판촉까지 더해지면 예전의 위상을 회복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수도 있다.

다만 환경부의 리콜 명령을 받고도 성의 없는 계획서를 제출해 국내 소비자들 무시하는 태도를 보인 데다, 배상금 규모 역시 턱 없이 낮게 책정한 데 대한 비난의 목소리는 여전히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국내에서 수백억원의 천문학적인 이익을 거두고도 국내 소비자들을 이른바 ‘호갱’으로 취급해 온 이 회사의 행보를 감안하면 소비자들의 공분은 십분 이해가 되고도 남는 부분이다.

사실 상당수 국내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아우디폴크스바겐의 판매 재개를 놓고 정부의 안일한 대처를 비난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아우디폴크스바겐이 국내에서 배출가스 조작과 인증서류 위조, 허위.과장광고 등으로 부과받은 과징금은 총 690여억원이다. 미국 정부가 5조1000억원에 달하는 과징금을 매긴 것과 비교하면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비난은 마땅하다.

소비자 배상 금액도 차이가 크다. 미국에서는 배출가스 조작 사건에 따른 배상을 위해 47만5000명에게 총 147억달러(약 17조원) 규모의 현금을 배상하는 안에 합의했다. 국내에서는 100만원 상당의 쿠폰 지급이 전부다. 이마저도 고장 수리 쿠폰인 탓에 배상이라는 개념과는 거리가 멀다는 지적도 나온다.

아우디폴크스바겐 코리아에는 이미 당시 조작에 대해 책임질 인사도 남아있지 않다. 디젤게이트 책임자인 요하네스 타머 아우디폭스바겐코리아 전 총괄사장은 지난 6월 재판을 앞두고 돌연 독일로 출국한 이후 돌아오지 않고 있다. 현재 독일 본사에서 일하고 있어 사실상 해외 도피나 다름없다. 토마스 쿨 전 폴크스바겐코리아 사장도 국내를 떠난 지 오래다.

폭스바겐코리아 대표이사 재직 당시 해당 사안에 대한 결정 권한이 제한적이었던 박동훈 전 르노삼성자동차 사장 만이 홀로 한국에 남겨진 채 재판에 발이 묶였다. 도망치듯 떠난 임원들의 빈 자리는 폴크스바겐 본사 해외법인 감독을 맡던 마커스 헬만과 아우디 홍콩·마카오 법인에서 총괄사장으로 있던 르네 코네베아그로 부지불식간에 교체됐다.

부도덕한 기업으로 낙인이 찍혀도, 한국 시장에서는 언제든지 판매 재개에 나설 수 있다는 나쁜 선례가 생겨버린 셈이다.

도의적 책임은 지되 법적 책임은 면하겠다는 아우디폴크스바겐의 대응 프레임에 갇혀 한국 정부가 넋 놓고 당했다는 비난이 나와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 됐다.

미국 소비자들이 폴크스바겐으로부터 막대한 배상안을 이끌어 낼 수 있었던 것은 비단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와 같은 강력한 구제책에 기인한 것 만은 아니다. 제도적 피해 장치와 함께 정부의 강력하고 주도면밀한 대응이 폴크스바겐이 배상 책임에서 빠져나가지 못하게 옭아맸다.

이번 디젤 게이트로 미국과 마찬가지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었으나, 결국 ‘현행법상 방법이 없다’는 해명(?)을 내놓으며 상황을 흐지부지 종결내 버린 우리나라 정부의 대응과 사뭇 대조되는 대목이다.

핵심 사안인 배출가스 조작 관련 해당 차량 리콜도 깔끔하게 매듭짓지 못하며 폴크스바겐이 빠져나갈 수 있는 빌미를 제공했다. 올해 초 환경부가 수용한 마지막 리콜 계획안에서조차 15개 차종 12만5500대의 배출가스를 소프트웨어로 불법 조작했음을 인정하는 ‘임의 설정(Defeat Device)’에 대한 내용은 포함되지 않으며 유야무야됐다.

끝내 임의설정 사실을 부인하는 폴크스바겐의 태도에 환경부는 리콜을 강제하기 위한 궁여지책으로 폴크스바겐이 임의설정을 인정한 것으로 자의로 해석해 버리는 패착을 두고 말았다. 이는 결국 폴크스바겐이 법적 책임에서 벗어나는 면죄부를 주는 결과로 귀결됐다.

아직까지도 폴크스바겐은 ​임의설정​은 미국에서만 법적으로 문제될 뿐, 한국에서는 저촉되지 않는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미국에서는 처벌받은 죄(罪)가 국내 시장에서는 값싼 용서로 면책(免責)됐다.

국내 수입차업체 한 임원은 “아우디폴크스바겐 코리아가 그릇된 행태를 저지르고도 ​눈 가리고 아웅​ 식으로 판매 재개에 나서고 있는 것은 문제​라며 ​만약 국내 수입차 시장에서 다시 예전의 입지를 회복하게 된다면 부도덕한 기업도 국내에서 활동하는 데는 아무런 제약을 받지 않는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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