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머·혐오글 난무, 일부 순기능 사례에도 악용 우려 높아…“익명성 탓, 현재로선 자정방법 없어”

사진=셔터스톡
익명을 보장하는 페이스북 페이지인 ‘대나무숲’에서 각종 논란이 불거지고 있는 가운데, 대나무숲에서 자정 작용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대나무숲은 익명성을 담보로 같은 소속 집단들이 모여서 허심탄회하게 아무런 이야기나 할 수 있는 공간이다. 2013년 서울대 학생이 만든 대학 대나무숲은 전국 대학 120곳 넘게 개설하면서 확대됐다. 직장 관련 대나무숲도 꾸려져 직장인들 사이에서도 큰 인기를 얻고 있다.

하지만 대나무숲에 게재된 글이 자주 논란이 되면서 비판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히 대나무숲을 관리하고 게시물을 게시하는 관리자가 게시물을 제대로 걸러내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나름대로 규칙을 정하고는 있지만 한정된 인력과 비전문가가 처리하기에는 힘든 부분이 많아서다.

지난 12일 고려대 대나무숲에는 ​학벌주의가 심해지면 좋겠어요​라는 글이 게시됐다. 제보자는 “노력해서 고대에 왔으니 학벌주의가 더 심해져서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출신이 더 대접받으면 좋겠다”며 “아예 진출할 수 있는 직업군이 분류되면 더 좋다”고 밝혔다.

해당 글이 게재되자마자 수 천 개가 넘는 댓글이 달렸다. 대다수 이용자들이 불쾌감을 표시했다. 학력뿐만 아니라 대나무숲에는 성차별, 장애인비하, 저소득층 비하 내용 등을 담은 글들이 여과 없이 실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대나무숲이 익명성을 갖는 한 앞으로도 이런 일은 계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송명빈 성균관대 신문방송학과 겸임교수는 “익명이기 때문에 사실 관계 확인이 안 된 카더라 통신이 많고 여성 혐오 발언도 많은 편”이라며 “토론의 장을 지향한다고 하지만 익명인 상태에서는 이런 글들을 막아낼 방법이 없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지금으로선 역기능이 더 크다는 평가다. 지난 9월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운영하는 아르바이트 전문 앱 알바콜이 대학생 회원 354명을 대상으로 대학생 SNS 대나무숲 이용실태를 조사한 결과, 대나무숲 콘텐츠에 대해 52%만 신뢰하고 48%는 신뢰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절반 정도가 콘텐츠에 대한 신뢰도를 갖지 않고 있는 셈이다.

대나무숲을 가끔 이용하는 박아무개씨(여‧25)는 “대나무숲에는 막장 이야기가 많다. 대부분 강의에서 본 마음에 든 이성 이야기나 성관계 얘기가 주를 이룬다”며 “익명인 탓에 여러 제보가 들어오고 파급력이 크다는 장점은 있지만 악용될 가능성도 다분하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도 자정작용을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분석했다. 개개인의 올바른 소양에 기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송 교수는 “이런 사이트에서 가짜뉴스, 가짜 정보가 생길 위험이 크다”며 “음모를 저지르는 등 진실과 거짓이 혼돈될 가능성이 크다. 대나무숲을 통해서 이런 일이 더 가속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물론 순기능도 있다. 다양한 성폭력 사건, 적폐 등이 대나무숲을 통해 알려지면서 변화를 가져오기도 했다. 앞서 간호학과, 간호사 대나무숲에는 간호사들이 장기자랑에서 야한 옷을 입고 선정적인 춤을 선보일 것을 강요당한다는 글이 게시됐다. 해당 글이 퍼지면서 이 사건이 알려지자 한림대 성심병원을 소유한 일송학원의 윤대원 이사장은 사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고용노동부는 한림대의료원 산하 성심병원 5곳에 근로 감독을 실시했다.

A대학 대나무숲 관리자는 “대학 술 강요 문화나 직장 내 차별 문제 등 불편부당한 일을 밝히는데 대나무숲이 신문고 역할을 대신해 온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면서도 “이런 순기능보다 자극적인 글, 논란 글 수가 월등히 많다보니 역기능에 대한 우려가 더 커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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