法 “공공재원 국민연금 정치·이익추구 이용 안 돼…지도 감독권 남용”

문형표 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이 14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삼성합병 개입’ 관련 직권남용·권리행사 방해 등 항소심 선고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뉴스1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과정에 양사의 주요 주주였던 국민연금에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혐의로 기소된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2심에서도 실형을 선고받았다.

서울고법 형사10부(재판장 이재영 부장판사)는 14일 오전 열린 문 전 장관의 항소심 선고 공판에서 징역 2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함께 기소된 홍완선 전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장도 같은 형량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국민연금은 공공재원이므로 원칙을 지켜 안정성을 유지하고 관리·운용돼야 한다”면서 “가입자의 이익과 무관한 정치적 목적, 이익집단 추구에 이용돼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국민연금은 복지부 장관이 기금 운용 본부를 별도로 설치해 투자와 의결권 행사를 자율적으로 심의·의결하도록 돼 있다”면서 “(그런데도) 보건복지부 장관 문형표는 지도감독권을 남용하는 방법으로 홍완선에게 찬성의결을 유도하고 의무 없는 일을 하도록 했다”고 꾸짖었다.

재판부는 문 전 장관 등 두 사람에 대한 일부 혐의를 1심과 달리 무죄로 판단했으나 형량은 유지했다.

문 전 장관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지시로 2015년 7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과정에서 양사의 주요 주주였던 국민연금이 예상되는 손실에도 불구하고 찬성 의견을 내도록 영향력을 행사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문 전 장관은 이를 위해 외부 인사들로 구성된 ‘의결권 행사 전문위원회’가 아니라 국민연금 내부 ‘투자위원회’에서 의사결정을 하도록 압박한 것으로 조사됐다.

홍 전 본부장은 국민연금 투자위원회 위원들에게 합병 찬성을 독려할 목적으로 합병 시너지를 부풀린 보고서를 만들도록 지시하고, 실제로는 삼성물산 주식 가치가 저평가된 합병이 성사되면서 국민연금에 1388억원의 손실을 끼친 혐의로 기소됐다.

1심은 삼성이 합병 찬성을 청탁했는지, 박 전 대통령 등 윗선의 지시가 있었는지 등에 관한 판단은 하지 않은 채, 문 전 장관이 공단에 영향력을 행사해 기금운용의 독립성을 침해하고 국민연금의 주주가치를 훼손했다고 판단했다.

 

한편, 법원은 최근 양사의 합병이 법률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판단을 내놓았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6(재판장 함종식 부장판사)는 지난달 19일 옛 삼성물산 주주인 일성신약이 삼성물산을 상대로 낸 합병무효소송 선고공판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자본시장법에 의해 합병 비율이 산정됐고 부정거래 행위라는 점의 특별한 사정이 없다면서 합병 무렵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경영상황에 비춰 볼 때 제출된 증거만으로 합병이 옛 삼성물산 주주들에게 손해를 준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어 합병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포괄적 승계 작업 일환이었다고 하더라도 경영권 승계가 유일한 목적이라고 볼 수 없다면서 특정인의 지배력 강화가 법적으로 금지돼 있지 않아 합병에 지배력 강화를 위한 목적이 수반됐다고 해도 그 목적이 부당하다고 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앞서 두 회사는 20157월 제일모직 1주당 삼성물산 0.35주의 비율로 합병을 결의했다.

 

이에 삼성물산 주식을 가지고 있던 일성신약과 소액주주들은 두 회사의 합병비율이 삼성물산의 가치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았고, 삼성 총수 일가의 경영권 승계를 위해 추진된 것"이라며 20162월 이 소송을 제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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