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국부펀드들 주식 투자늘려 고수익…한국 주식형펀드 규모는 10년새 반토막

한국은 경제규모가 커지고 주식시장의 시가총액이 계속 증가하고 있음에도 주식형펀드는 오히려 급격히 위축되고 있으니 기현상이 아닐 수 없다. 세계 주요 국부펀드들이 주식 비중을 지속적으로 늘려 고수익을 올리고 있는 것을 감안할 때 대책이 시급한 실정이다.

정부나 한국은행 등에 따르면 올해 한국의 GDP는 1700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보여 5년 전에 비해 23% 정도 늘어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또 지난 10월말 기준 시가총액은 2012년 말에 비해 41%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이처럼 경제 규모가 커지고 주식시장 규모 또한 커졌지만 한국의 주식형펀드는 오히려 대폭 위축됐다. 공모와 사모를 합친 전체 주식형펀드 규모는 2012년 말 86조원대에서 지난 10월말엔 76조원대로 10조원이나 줄었다. 특히 2007년에 140조원대에 이르렀던 것에 비하면 거의 절반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전체 펀드시장 자체는 성장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0월말 기준 한국의 펀드시장 규모는 공모와 사모를 합쳐 520조원으로 2012년말의 308조원에 비해 212조원이나 증가했다.

전체 경제가 성장했고 펀드시장이 확대됐는데도 불구하고 주식형펀드가 위축된 것은 자금시장을 주도하는 금융기관들이 사모 위주로 마케팅을 벌이면서 시장을 왜곡시킨 때문으로 보인다.

지난 10월말 기준 펀드시장은 사모 284조원, 공모 236조원으로 사모펀드 시장이 월등히 크게 성장했다. 그런데 사모펀드들은 유입된 자금의 대부분을 수익도 크게 나지 않는 채권이나 부동산, 특별자산펀드 등에 쏟아 넣고 있다. 금융기관들이 실적보다는 신상품 마케팅으로 자금을 끌어 모았다는 것을 나타내는 증거다.

이 와중에 그나마 남은 공모펀드들조차 투자자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주식형펀드는 지난 5년간 수익률이 30%가 넘는데도 펀드 자금은 오히려 24조6000억원이나 빠져나갔다. 반면에 12%대 수익률에 그친 채권형펀드엔 9조6000억원대의 자금이 유입됐다. 특히 5년간 수익률이 9%선에 그친 MMF에 27조7000억원, 0%대에 머문 대안펀드에는 5조5000억원대의 자금이 유입됐다. 금융기관들이 투자자들에게 합리적인 투자 조언을 하지 않고 수수료에만 눈독을 들여 신상품 위주로 판매했기 때문이다.

세계 국부펀드 주식 늘려 고수익


이에 비해 세계 주요 국부펀드들은 주식 비중을 대폭 늘려 고수익을 내고 있어 대조된다.

최근 일본공적연금(GPIF)은 이번 회계연도 상반기(4~9월)에 9조5670억엔을 벌어들였다고 밝혔다. 이는 삼성전자가 6개월 동안 번 이익의 5배가 넘는 수준이다. 


156조8177억엔(약1조4000억 달러)의 자산을 운용하고 있는 이 연금은 일본 국내채권에선 0.12%의 저조한 성과를 냈으나 국내주식에서 11.82%, 해외주식에서 11.08%의 양호한 성적을 내면서 이처럼 많은 수익을 올렸다.

불과 3~4년 전만 해도 GPIF가 단기간에 이처럼 많은 수익을 낼 수 있으리라고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다. 2014년 3월말까지만 해도 이 연금은 전체 자산의 72.73%를 채권에 몰아넣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GPIF의 자산구조는 상전벽해처럼 바뀌었다. 9월말 기준 국내주식이 24.35%이고 해외주식이 24.03%이며 국내채권은 28.5%로 급격히 감소했다. 해외채권 14.02 단기금융상품 9.1% 등이 뒤를 이었다. 한 마디로 수익을 내지 못하는 채권을 과감히 던져버리고 주식으로 돌아선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운용자산이 최근 1조 달러 대에 들어선 노르웨이 국부펀드(NBIM)는 올해 들어 9월말까지 주식에서 13.79%, 채권에서 2.77%의 수익률을 올렸다고 밝혔다. 덕분에 이 펀드는 1988년 설립이후 5.98%, 최근 5년간은 9.23%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노르웨이 국부펀드가 이처럼 높은 수익률을 낸 것도 주식투자 비중을 대폭 늘렸기 때문이다. NBIM는 전체 자산의 65.9%를 주식에, 31.6%를 채권에, 나머지 2.5%를 부동산에 투자하고 있는데 전 세계 알짜 주식에 고르게 투자하고 있는 게 특징이다. 이 펀드는 세계 77개국 8,985사 주식에 분산투자해 매년 안정적 수익을 내고 있다. NBIM은 이처럼 주식투자 비중이 높은데도 주식투자를 더 하려고 올해 초 노르웨이 의회에서 주식 비중을 70%까지 올릴 수 있도록 허가를 받았다.

이처럼 세계 주요 국부펀드들은 높은 수익률을 지속적으로 내기 위해 각국 주식에 적극 투자하고 있다. 이들은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 금리가 상승세로 돌아서면서 채권 수익률이 계속 내려갈 것으로 보고 채권을 줄이고 주식 비중은 늘리고 있다.

외국 국부펀드들이 주식 비중을 늘린다는 소식은 오래 전부터 들려왔다. 그런데도 한국 금융기관이나 정부는 대응은커녕 오히려 주식기피를 심화시켰다.

특히 정부는 근본적으로 주식을 위험자산으로 치부하고 투자를 막으며 수익도 내지 못하는 은행예금이나 보험사 저축성상품 등으로 자금을 몰아넣게 만들었다.

대표적으로 적립규모 150조원대의 퇴직연금의 경우 시행초기 주식투자를 사실상 금지시켜 90% 이상을 은행의 저금리 예금이나 보험사 저축성보험 등으로 밀어 넣었다. 이후 비판이 쏟아지자 지금은 아예 적립금 통계마저 제때 공표하지 않고 있다. 1077조원대 자산을 굴리는 보험회사들도 사실상 주식투자가 쉽지 않은 실정이다.

603조원의 자산을 운용하는 국민연금은 상대적으로 나은 편이지만 그래도 자산의 51.8%가 채권에 들어가 있다. 주식은 37.5%이며 이 가운데 국내주식 비중은 20.6%에 불과하다. 대체투자는 10.6%로 외국기관에 비해 과다한 편이다.

경제 살리려면 증시부터 살려야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영국은 125명의 주주로 설립한 동인도회사가 이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계 최강국 미국을 이끌고 있는 것도 애플이나 마이크로소프트처럼 이익을 추구하는 주식회사들이다. 이처럼 주식회사들은 경제를 키우고 더 나아가 국가를 살찌우는 기반이 되고 있다.

그런데도 한국은 아직도 주식은 위험하고 주식투자는 비도덕적이란 케케묵은 낡은 관념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외국인들이 주식에 투자해 거액의 배당금을 받아간다며 배가 아프다고 한다. 그 이율배반적인 주식기피증은 거의 병적일 정도다.

이 병을 치료하려면 정부부터 바뀌어야 한다. 음으로 양으로 주식투자를 막고 있는 규제부터 뿌리째 뽑아내야 한다. 경제 관료나 금통위원도 시장 전문가 중에서 선발하는 수준을 넘어 시장을 모르면 아예 배제하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

인구가 늘어나지 않는 나라가 경제를 유지하려면 투자를 통해서라도 돈을 벌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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