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기규제·금리상승·입주물량폭탄 '삼각파고' 휩싸인 부동산시장…'사는 것' 아닌 '사는 곳'으로 패러다임 시프트를

’불패신화’가 지배하던 부동산시장에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새 정부 출범후 잇단 규제책에도 꿋꿋이 버텨내던 서울 강남권 등에서도 상황이 달라지고 있음을 드러내는 신호가 점점 뚜렷해지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신호는 시장의 주도권이 사는 쪽과 파는 쪽중 누구에게 있는지 보여주는 매수우위지수다. 이 지수는 0∼200 사이의 값을 갖는다. 100을 넘어서면 집을 사려는 사람들이 넘친다는 의미로 집주인이 갑이다. 반대로 100을 밑돌면 집을 사려는 사람이 부족하다는 뜻으로 매수자들이 칼자루를 쥐게 된다. 

 

KB국민은행이 며칠전 내놓은 주간 주택시장동향 조사결과를 보면 지난달 마지막주 전국 아파트 매수우위지수는 47.8로, 지난 4월 마지막주 46.7 이후 6개월만에 가장 낮았다. 서울의 경우에도 84.0으로 한 달 만에 최저치를 나타냈다. 집주인이 아닌 집을 사려는 매수자들이 유리해졌다는 의미다.

새 정부가 들어서기 무섭게 6·9 대책을 시작으로 8·2 대책, 9·5 대책에 이어 10·24 가계부책 대책까지 부동산투기 규제대책을 쏟아내고 있다. 이런 규제책의 영향으로 중개업소에 집을 사려는 사람들 발길이 뜸해졌다고 하더니 지표로도 확인되고 있는 셈이다.

시장의 변화를 유발한 요인은 규제대책만이 아니다. 금리도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달 열린 금통위에서 기준금리 인상을 시사한이후 실세 금리가 오름세를 타고 있다. 시중은행들은 앞다투어 대출금리를 올리고 있다. 한은이 예고한 것만으로도 이런대 이달말 또는 내년초로 예상되는 기준금리인상이 단행될 경우 시중금리는 더욱 가파르게 상승할 것이 뻔하다.

한은이 현재 1.25%인 기준금리를 0.25%포인트만 올리고 은행이 기준금리 상승분만 대출금리에 반영하더라도 차주들은 연간 2조3000억원의 이자를 추가 부담하게 된다고 한다. 금리인상이 여러차례 이어져 1%포인트에 달한다면 차주가 감당해야할 연간 평균 이자비용이 308만원에서 476만원으로 168만원 늘어나고, 한계가구는 803만원에서 1135만 원으로 332만원 커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부동산 규제 대책으로 가뜩이나 은행 문턱이 높아지고 있는데 금리까지 오르면 차주들의 부담은 가중될 수 밖에 없다.

여기에 아파트 입주물량 폭탄까지 시장을 덮칠 판이다. 2015년 전후로 사상최대 분양이 이루어진데 따른 시장영향이 점점 가시화되고 있는 것이다. 부동산114는 내년 입주물량이 44만 가구로 사상최대 규모에 달할 것으로 집계했다. 이중 절반이 넘는 25만 가구가 수도권에 몰려 있다. 물량홍수로 해당 지역은 물론이고 주변 지역에 어떤 영향이 나타날지 쉽게 그려볼 수 있다. 투기규제에 금리인상, 여기에 입주물량 폭탄까지 부동산시장이 강남권 재건축 아파트라고 해서 결코 '독야청청'을 장담하기 힘든 거대한 삼각파고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형국이다.  

 

박근혜 전대통령은 ‘비정상의 정상화’를 국정 구호로 내걸었지만 정작 행태나 내놓은 정책은 비정상을 키웠을 뿐이다. 당시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경기살리기를 명분으로 부동산투기를 규제하는 장치를 싹 거둬낸 이른바 ‘초이노믹스’를 통해 집값을 끌어올려 국민의 소중한 주거공간인 집으로 장난치는 투기꾼들이 활개치는 세상을 만들었다. 

 

한은은 금리를 잇달아 낮춰 이런 정부를 거들었다. 

 

뛰는 집값과 전세값에 겁이 난 무주택자들까지 앞다투어 빚내서 집사기에 가세함으로써 결국 가계부채가 폭증하는 결과를 낳았다. 1400조원을 웃도는 가계부채는 우리 경제를 위협하는 폭탄이 됐고 부족한 자금으로 집을 사느라 빚더미에 오른 가계는 빚 갚느라 허리가 휜다.  

문제가 국가경제를 위협하는 가계부채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투기세력의 준동으로 인한 집값 상승은 젊은이들의 미래에 대한 희망마저 앗아 간다. 내집 마련의 꿈이 멀어진 젊은이들은 혼인과 출산의 엄두조차 내지 못함으로써 국가적 난제인 저출산을 심화시키고 있다.


부동산 투기꾼들이 불로소득으로 쉽게 재산을 불리는 것이 뻔히 보이는데 아주 심지가 굳은 기업인이 아니라면 위험을 감수하면서 사업다운 사업에 의욕을 내기 어렵다. 새로운 길을 열어가야 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한 우리 경제의 대응력도 약화될 수 밖에 없다. 혁신 기업들의 일자리인들 제대로 만들어질리 만무하다. 


서울시장 재선에 성공했지만 무상급식을 둘러싼 갈등속에 지난 2011년 8월 중도퇴진한 오세훈 전시장은 주거관련 정책에서는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시프트(Shift)라고 이름 붙인 장기전세주택을 도입함으로써 저렴하면서도 안정적인 주거를 시민들에게 제공하려 시도했다. 그는 주택의 개념을 재산증식 측면이 강조된 '사는 것'에서 거주 편의성에 초점을 맞춘 '사는 곳'으로 바꾸겠다고 의욕을 보였다. 

 

오 전시장이 장기전세주택에 '시프트'라는 이름을 붙인 것도 주택시장의 '패러다임 시프트'를 일으키겠다는 그의 이런 의지가 반영된 것이다. 나름 가시적인 성과를 냈지만 그의 중도 퇴진으로 미완의 성공에 그치고 말았다.

 

투기꾼들이 선량한 국민의 소중한 보금자리를 더이상 함부로 짓밟지 못하도록 집에 대한 개념을 바로 세워야 한다. ​이제 어렵사리 변화의 동력이 만들어져 가고 있다. 이런 변화가 부동산 시장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안정적으로 정착시키는 동인이 될 수 있도록 정부는 정책의 고삐를 더욱 단단히 조여야 한다.​ 또다시 실패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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