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대출 편중된 은행의 전당포식 행태…생산적 금융·금융약자 보호 등 사회적 책임 되새겨야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지난달말 제2회 금융의 날 행사에서 "금융은 이익을 좇아 빠르게 움직이는 속성이 있고 경제·사회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지만 금융기관의 이익에 도움이 되는 곳으로 자금이 몰린다"고 하면서 "이런 금융의 쏠림현상이 버블의 형성과 붕괴로 이어지기도 한다"고 했다.

그리고 "금융은 있는 사람을 더욱 부유하게, 없는 사람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속성이 있다"면서 "거래실적이 좋은 우량고객은 더 낮은 이자로 쉽게 돈을 빌릴 수 있고 각종 우대혜택도 받지만 정작 돈이 절실한 사람은 돈 빌리기가 어렵고 돈을 빌리더라도 감당하기 어려운 높은 이자를 내야하며 제때 못 갚으면 다음번에 돈 구하기가 더욱 어렵게 된다"는 말도 했다.

나아가 오늘날 금융상품은 너무 복잡하여 신뢰의 훼손 문제가 발생하기 쉽다면서 금융상품에 문제가 발생하면 소비자들은 자신들보다 훨씬 더 많은 정보를 가진 금융기관이 고의로 자신을 속였다고 생각하기 쉽기 때문에 금융산업이 발전하고 금융기법이 고도화될수록 신뢰를 잃을 가능성은 커지고 한번 잃은 신뢰는 회복하기 어려워진다고 했다.

또한 "금융권의 수익이 늘어 건전성이 높아진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나 금융기관이 그 수익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 국민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에 국민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고 하면서 "정부의 지분이 없는 민간회사를 ‘기관’이라는 단어를 붙여 '금융기관'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금융의 공공성과 책임성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가 반영된 것"이라고도 했다.

사실 최 위원장은 취임 직후부터 ‘전당포식 영업행태’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은행권의 가계대출에 편중된 영업형태를 강하게 비판했다. 이로 인해 오늘날 가계부채 규모가 1400조원 가까이에 이를 정도로 과도하게 팽창했고 이것이 위기를 촉발할 수 있는 위험요인을 키워왔다고 했다. 


중소기업 대출도 여전히 담보위주로 행해지고 그런 현상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면서 개별 은행이 수익 확보에만 열을 올리는 것이 사회적으로 반드시 바람직한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다. 은행들 스스로 선별기능을 키우고 리스크를 분담하며 신(新)산업, 혁신기업 등 생산성 높은 분야에 자금을 공급해야 함에도 안정적인 담보대출에만 안주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현행 금융시스템을 그대로 두면 과도한 부채를 양성하는 쪽으로 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은행들이 보다 효율적인 자본중개기능을 수행하도록 BIS자기자본비율 산정시의 위험가중치 부과방법 등을 재검토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은행의 영업활동을 시장에만 맡기는 것이 반드시 시장주의가 아님을 애써 강조했다.

최 위원장의 이러한 쓴소리는 그동안 수익성 제고에만 치중해 온 금융업계 종사자들에게 뼈아픈 반성으로 들린다. 외환위기 당시 금융시스템이 망가져 은행권에 엄청난 공적자금이 투입된 이후 수익성은 은행들의 가장 중요한 경영지표가 되어 왔다. 이로 인해 어느새 은행들의 사고방식도 돈많이 벌어야 한다는 민간기업의 사고방식과 다를 바 없게 되었다.

물론 은행이 수익을 남기는 것은 해당 은행은 물론 금융시스템 전체의 건전성을 높인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일이나 수익의 원천을 생산적 금융이 아닌 가계대출 등 소비적 금융에 주로 의존하는 것은 문제다. 그것도 경제적 약자에게서 고리로 수익을 올린다면 사회적 책임을 망각한 처사라 할 수 있다. 금융의 책임은 가진 자의 여유자금을 자금중개기능을 통해 생산적인 곳에서 활용되도록 성장생태계를 조성하는 데 있다.

사실 시중은행들은 외환위기 이후 가계대출 비중을 계속 늘려왔다. 1999년과 2016년을 비교할 때 가계대출 비중은 우리은행이 28.2%에서 54.0%로, 신한은행이 23.9%에서 51.0%로, 하나은행이 25.2%에서 53.7%로 두배 가까이 늘었다. 중소기업대출도 담보·보증대출 비중이 2009년에 50.8%였던 것이 작년에 68.5%로 상승했다. 이러한 은행들의 보신적 영업행태는 국가경제 측면에서 결코 바람직하다고 볼 수 없다.

사실 우리 은행들은 2000년대 중반부터 규제완화의 미명하에 감독당국 역할이 제한된 틈을 타 자산확대 경쟁에 열을 올렸고 그러한 자산확대는 주로 리스크가 적은 주택담보대출을 통해 이루어졌다. 이렇게 풀려나간 돈은 부동산가격을 올리며 버블을 초래했고, 이것이 다시 주택담보대출을 늘리는 악순환을 가져 왔다. 이러한 금융의 모습은 사라져야 한다.

은행들은 선별력을 길러 유망기업들을 적극 발굴하고 이들에게 필요한 자금을 공급함으로써 일자리 창출과 근로자의 소득증대를 지원하여 양극화 해소에 기여해야 한다. 특히 오늘날 급속도로 진행되는 4차 산업혁명 하에서 미래의 성장동력을 창출하기 위해서는 혁신기업 쪽으로 자금이 많이 흘러 우리 경제의 심장이 다시 역동적으로 뛰도록 해야 한다.

또한 은행들은 금리인상을 수익성 제고의 기회로 보지 말고 돈갚기 어려운 차주들의 사정도 고려해야 한다. 연체되자마자 일률적으로 경매를 실행하여 서민의 재산권을 쉽게 박탈하거나 부실채권을 대부업체나 추심업체에 넘겨 가혹한 상환위협에 시달리게 하는 일도 자제해야 한다. 은행의 대출은 어쨌든 은행 책임하에 실행된 것이므로 부실화된 개인채권도 상각 등을 포함하여 은행이 스스로 책임을 떠맡는 것이 마땅하다.

그리고 우량고객에게 주던 우대혜택을 줄여 저신용 서민들의 금융비용 감축에 사용하고, 상환이 어려워진 고객들에게는 맞춤형 컨설팅을 통해 다시 건전한 고객으로 재기할 수 있도록 신용회복 프로그램을 적극 가동함으로써 금융이 가진 이 시대의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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