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 자체조사 결과 따라 파장 확산 가능성…금융권 물갈이로 번질까 '촉각'

이광구 우리은행장이 신입 행원 채용 비리 논란과 관련해 사임 의사를 밝혔다. / 사진=뉴스1
이광구 우리은행장이 채용 비리 의혹에 책임을 지고 전격 사퇴하면서 금융권에 파장이 일고 있다. 금융당국의 금융권 최고경영자를 겨냥한 강경 기조가 현실화 되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은 전 은행권에 채용비리를 자체적으로 조사해 11월 말까지 개선 방안을 제출할 것을 요구한 상태다. 채용비리가 일부나마 드러날 경우 우리은행처럼 최고경영자의 거취 문제까지 제기될 수 있는 상황이다.

3일 우리은행 고위관계자는 "국회 국정감사에서 우리은행 채용비리 리스트가 공개된 후 금감원으로부터 자체조사 후 결과를 제출하라는 요구를 받았고 이 자료를 바탕으로 검찰 압수수색까지 감당해야 하는 상황이었다"며 "은행 차원에서 해명하고 버텨보려 했지만 은행장이 결국 책임지고 물러난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금감원이 '제 식구 감싸기' 비판을 받으면서까지 우리은행에 자체점검을 지시한 이유가 있다. 금감원 메시지는 '행장 거취를 결정하라는 것'이었다"며 "행장이 금융권 친박 인사로 분류됐고 서금회 일원이었다는 정치적인 이유도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그는 "채용비리 논란을 일으킨 것은 분명 잘못됐기 때문에 행장이 사퇴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우리은행 내부에선 이 행장이 채용비리에 대한 금감원의 '자체검사 결과 보고'와 '검찰 수사'에 압박을 받고 사퇴 결단을 내린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전 은행권이 금감원에 11월 말까지 채용비리 관련 자체검사 결과를 제출해야 하는 입장에 놓여 불안한 모양새다. 금감원이 자체검사 결과에 따라 금융권 채용업무 전반을 조사할 계획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금감원에 채용 청탁한 의혹으로 김용환 NH농협금융지주 회장 집무실과 자택을 검찰이 압수수색하고 휴대전화와 수첩 등을 확보한 바 있다. 조사 진행 상황에 따라 김 회장은 검찰에서 참고인 조사를 받을 수 있다. 국내 5대 금융사 최고 경영진 중 2명이 금감원과 검찰의 칼날을 피하지 못한 것이다.

금융권에선 채용비리 수사가 자칫 전 정권과 관련한 금융권 인사 물갈이로 번질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새 정부 들어 금융권에 돌았던 '금융 홀대론'에 이어 금융 최고 경영자 관리로 조사의 방향이 변질될 것을 우려하는 것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금감원이 자체조사를 지시한 것과 관련해 경고의 메시지를 보낸 것이 아니냐"며 "조사 결과도 주관적 해석 여지가 있다. 금감원이 조사에 들어오면 금융사는 채용비리가 있다는 의혹만으로도 경영에 치명타를 입는다. 현재 금융당국의 금융사 길들이기가 자연스럽게 형성됐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금감원 관계자는 "채용비리 자체 조사는 은행권 우려와 같이 긴장하라는 것이 아니라 채용비리를 제대로 조사해서 보고하라는 것"이라며 "불법·부당한 방식을 근절하기 위한 방법이다. 우리은행 채용비리 관련 최고경영자 사퇴는 도의적 책임을 지고 스스로 물러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이광구 우리은행장은 2일 전체 임직원에게 이메일을 보내 "2016년 신입 행원 채용 논란과 관련해 도의적 책임을 지고 사임하려 한다"고 밝혔다. 지난달 16일 금융감독원에 대한 정무위원회의 국정감사에서 우리은행 특혜채용 의혹이 제기된 지 16일 만의 사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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