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피’ 전략적 세대교체 단행…옥중경영 포석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시대가 공교롭게도 ‘옥중(獄中)’에서 활짝 열렸다. 31일 삼성전자는 주요 3대 사업부문 CEO(최고경영자) 모두를 전격 교체했다.

앞서 권오현 부회장이 퇴진을 밝히면서 큰 폭의 사장단 인사가 불가피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됐지만, 뚜껑을 열고 보니 ‘쇄신’에 가까운 수준이다. 

 

이 부회장은 2014년 부친인 이건희 회장이 갑작스레 심장 질환으로 쓰러지면서 총수 역할을 맡아왔지만 사장단 인사는 되도록 최소 범위 내에서 실시해왔다. 표면적으로는 부친의 인사를 존중한다는 차원으로 비춰졌을 수 있겠으나, 사실 조직의 안정성을 도모하면서 총수로서 연착륙하겠다는 속내가 깔려있었다.

지난해엔 이 부회장이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얽히면서 사장단 인사 자체를 건너뛰었다. 사실상 최근 3년간 제대로 된 인사가 이뤄지지 않은 셈이다. 여기에 올해 맞물린 권 부회장의 용퇴로 삼성에 ‘젊은 피’를 수혈할 수 있는 제반 조건이 갖춰졌다.

이날 단행된 인사가 지니는 함의(含意)는 사뭇 다르다고 봐야 한다. 단순히 변화 속도가 빠른 IT(정보통신)업계에서 새로운 흐름을 주도하기에 적합한 인물을 인선했다는 데 그치지 않는다. 이 부회장과 호흡을 함께 하며 삼성의 미래를 새롭게 다시 설계할 수 있는 ‘이재용의 사람들’로 틀을 재편한 셈이다.

이날 인사에서는 반도체 사업을 총괄하는 DS(디바이스 솔루션, 부품)부문장에 김기남 사장이, CE(소비자 가전)부문장에 VD(영상 디스플레이)사업부 김현석 사장이, IM(ITㆍ모바일) 부문장에 무선사업부 고동진 사장이 각각 임명됐다.

인사에 앞서 윤부근, 신종균 사장은 각각 CE부문장과 IM부문장을 스스로 내려놨다. 앞서 용퇴 의사를 밝힌 권오현 부회장에 이어 이건희 시대의 주역들이 일선에서 물러나게 됐다.​ 권 부회장과 윤 사장, 신 사장은 모두 이건희 회장이 경영 현장을 총괄했던 2013년 주주총회에서 대표에 오른 사람들이다. 

 

2012년부터 경영지원실장(CFO)을 맡아온 이상훈 사장도 직함을 내려놨다. 이 사장의 경우 권 부회장이 수행해 온 이사회 의장직에 추천됐지만, 회사 내 반도체 부문이 차지하는 위상과 사실상 ‘총수대행’ 역할을 해온 권오현 부회장의 후임을 계승했다는 상징성을 감안하면 김기남 사장의 역할이 두드러질 것이라는 전망에 힘이 실린다. 


단순히 겉으로 보이듯 기존 60대였던 부문장을 50대 사장으로 바꾼 게 다가 아니다. 새로운 삼성을 맞이하기 위해 조직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고 긴장감을 불어넣기 위한 본격적인 수순에 들어갔다는 얘기다. 

이재용 부회장 입장에서는 이번 사장단 인사를 통해 그간의 리더십 공백을 메꾸는 것은 물론, 조직 기강도 확립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게 됐다. 하루 앞으로 다가온 창립기념일을 앞두고 영어의 몸으로 삼성의 새 역사의 시작을 열게 된 점은 이 부회장 본인으로서도, 삼성에 있어서도 두고두고 아쉽게 반추될 부분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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