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포기각서 요구 등으로 가맹점주 원성…시퍼렇게 멍든 색깔로 파랑 의미 전복시킨 현대차

프랑스의 중세사 연구자 미셸 프루스트는 파랑을 성스러운 색이라 했다. 도덕적이며 경건한 색이라 칭했다. 파랑은 색소 추출의 복잡함 때문에 역사에서 뒤늦게 두각을 나타냈다. 그러나 중세시대를 기점으로 성화(聖畵)에 주로 사용되며 범접할 수 없는 종교성을 획득했다. 중세시대 화가 로렌초 디 크레디의 ‘수태고지(1495~1500년경)’를 보면 단번에 알 수 있다. 성모 마리아를 감싼 청색 겉옷은 하늘에 대한 빛과 숭고함을 상징한다.

 

지난 2개월은 그러나 기자에겐 파랑에 대한 관념이 뒤바뀌는 시간이었다. 현재의 파랑은 과거의 파랑과는 달랐다. 2017년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시기에 마주한 파랑은 더 이상 성스러운 색이 아니었다. 시퍼렇게 멍든 아픈 색들이었다. 파란 입술, 파란 손가락, 파란 숨소리들은 바스라지기 직전이었다.

 

전국에 1400여개의 현대자동차 정비 브랜드 블루핸즈 가맹점들이 있다. 29개 가맹점이 올해 계약해지 통보를 받았다. 이 중에는 스패너 대신 낫을 들고 귀농을 선택한 사람도 있고, 하루하루를 꾸역꾸역 버텨나가는 사람들도 있다. 가맹거래법상 최초 계약 이후 10년이 지나면 가맹 본부는 별다른 사유 없이 가맹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 법적으로는 아무런 하자 없는 조치였지만 가맹점주들의 가슴은 시퍼렇게 멍들어가는 시간이었다.

 

블루핸즈는 가맹점주들에게 암묵적으로 시설개선을 요구했다고 한다. 가맹점 크기에 따라 몇 억원의 비용이 소모되기도 하는 공사다. 돈이 없어 시설개선을 하지 못한 사람들도 있다. 블루핸즈가 일부 지점에 대해 시설개선을 조건으로 가맹계약 여부를 결정했다고 한다.

 

블루핸즈는 201412월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시설개선을 이유로 불이익을 주는 행위를 금지하는 시정명령을 받은 바 있다. 그래서 더욱 은밀하고 치밀하게 증거를 남기지 않았다고 추측한다. 흔적들을 모두 파랗게 지워버렸다.

 

올해 가맹계약을 연장한 한 블루핸즈 가맹점주는 갑자기 생전 찾아오지 않던 본사 사람들이 갑자기 찾아오기 시작했다. 업소가 깔끔하면 고객들이 좋아하지 않겠냐고 넌지시 물었다결국 계약 연장을 위해 시설개선 이행에 대한 각서를 썼다고 말했다. 그에 대한 증거는 없냐는 질문에는 증거는 없다. 증거가 될 만한 꺼리를 요구하는 순간 위에서 찍힌다고 고백했다.

 

블루핸즈는 계약 종료를 앞둔 가맹점주들에게는 가맹계약 포기 각서를 요구했고, 가맹 점주들에게 개별 고지도 없이 일부 서비스에 대해 부품비 10%를 미지급했다. 그리고는 모두 고객 서비스를 위해서였다고 말한다

 

하지만 함께 일하는 동료(현대자동차가 블루핸즈 가맹점주들을 동료라고 인식한다는 전제 하에)들은 챙기지 않고 고객 서비스 확대를 외치는 현대차의 모습은 생경하게 느껴진다. 자동차 결함 사태가 발생할 때마다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던 모습도 모두 고객 서비스를 위한 것이었을까.

 

블루핸즈는 공식 홈페이지에서 스스로를 믿음과 신뢰를 주는 서비스라고 소개한다. 아마도 블루핸즈 역시 파랑을 신뢰와 도덕의 색으로 인식했던 것 같다. 그러나 블루핸즈의 믿음과 신뢰가 향한 방향은 종교적 가치관과는 거리가 멀었다. 철저히 수익성만 좇는 자본주의에 대한 믿음이었다. 블루핸즈는 한편으로 시퍼렇게 멍든 파랑을, 또 한편으로는 무자비한 파랑을 만들어냈다.

 

어쩌면 지금 시대에 신뢰니 도덕이니 운운하는 것도 시대착오적일지 모른다. 파랑의 본래 의미를 들먹이며 지적하는 것도 요즘 말로 꼰대질일지도 모른다. 그에 비해 현대차는 언제나 그랬듯 한 발 앞서나가고 있다. 파랑의 의미를 재해석하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냈다. 이제는 모두가 인정해야 할 지 모른다. 현대차야말로 파랑의 의미를 전복시킨 시대의 전위 예술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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