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기관보다 주식투자 비중 낮은데다 대형주 편중 심화…코스닥 시장 침체로 벤처기업 활로도 막혀

지난 9월 순자산 규모 1조 달러를 넘어선 노르웨이 국부펀드는 운용자산의 65% 정도를 주식에 투자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보유 종목수는 9000여개에 육박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노르웨이 국부펀드 뿐 아니라 선진국 주요 기관투자가들은 국내 기관투자가들에 비해 전체적으로 높은 수준의 주식투자 비중을 유지하고 있다.

선진국 기관투자가들은 자산의 40% 정도를 주식으로 들고 있다. 또 과거에 비해 대형주 비중은 줄이고 중소형주 비중을 높이고 있는 추세다. 펀드나 보험, 일반연금 등 전통 기관투자가들보다 헤지펀드나 국부펀드 등 대체 기관투자가 쪽이 총자산 중 주식 비중이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대기업에 돈 몰아준 기관투자가

이에 비해 한국 기관투자가들은 자산의 대부분을 채권으로 보유하고 있으며, 그나마 많지 않은 주식 중에서도 대형주 집중이 점점 심화되고 있다.

한국 기관투자가들 가운데 가장 많은 투자자산을 보유하고 있는 보험사들은 자산 가운데 주식 비중은 10%도 되지 않으며 대부분을 채권에 넣어두고 있는 상태다. 운용자산 규모가 급증하고 있는 퇴직연금은 훨씬 심각하다. 자산의 89% 정도를 은행 정기예금과 보장성보험 채권 등에 넣고 있고,4.2%를 단기자금으로 굴리고 있다. 나머지 6.8%의 실적배당형 역시 85%가 채권형 또는 채권혼합형이어서 주식 투자는 극히 미미하다.

더 심각한 것은 기관투자가들이 얼마 되지 않는 주식투자자금을 대형주에 집중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따른 기관들의 공매도 공세를 견디다 못한 셀트리온이 중소형주 중심의 코스닥시장을 떠나 유가증권시장으로 이전을 결정한 것도 그래서다.

기관투자가들의 대형주 집중을 심화시킨 주역은 국민연금이다. 국민연금은 7월말 기준 602조원의 기금 가운데 국내주식은 20.9%인 126조원 어치를 들고 있다. 국민연금은 특히 지난 연말 기준 삼성전자 한 종목만 23조원 이상을 보유해 전체 주식자산의 23.2%나 되는 대형주 중심의 편향적인 운용을 하고 있다. 자산규모가 커져 운용이 쉽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중소기업은 물론이고 중견기업 비중까지 계속 줄였다. 그뿐만이 아니라 운용자금을 나눠준 기관들에게 섹터별 유형별 데이터란 것을 주면서 역시 대형주에 집중하도록 압력을 가했다.

주식시장의 가장 큰 손인 국민연금이 대형주만을 사면서 한국 증시는 대형주 위주의 비대칭적인 상승세를 보여 왔다. 연초부터 지난 16일까지 코스피가 22.38% 뛰는 동안 코스닥지수는 4.43%만 움직인 것도 이 때문이다.

◇대형주 집중으로 창업생태계 손상

문제는 주식시장의 이런 자금쏠림이 창업 생태계를 심각하게 손상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벤처투자가 활성화되려면 투자자금 회수를 위한 다양한 길이 열려야 한다. 그러나 한국 벤처시장에선 M&A를 통한 자금회수 기회는 극히 제한적이고, 그나마 있던 상장을 통한 회수통로마저 코스닥시장 침체로 위기에 봉착해 있다. 국내 주요 창업투자회사들의 성적이 최근 지지부진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이로 인해 창업생태계는 극도로 위축되고 이는 가뜩이나 어려운 고용시장에 더욱 큰 부담을 주고 있다. 지난 8월 취업자수가 4년6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진 것도 이의 연장선에서 볼 수 있다.

최근 반도체를 중심으로 수출이 양호한 흐름을 보이고 있지만 내수는 여전히 침체 상태다. 돈이 수출 대기업 사이에서만 움직일 뿐 시장 전체로 고르게 돌지 않기 때문이다. 코스피가 뛰었다고는 하지만 외국인과 큰손 위주의 장에 불과하고 일반 서민들에겐 위화감만 줄 뿐이다.

대기업에 의한 고용창출 효과는 미미하고 중소기업이 오히려 고용창출을 많이 하고 있음은 실증적으로 검증된 결과다. 벤처투자가 살아나야 고용도 회복되고 밑바닥 경기가 움직일 것인데 기관들은 그 반대쪽으로 경제를 끌어왔다.

◇고용창출, 시장 기능 회복으로 해결해야

일자리 창출은 지금 정부에는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그렇다보니 우선 공공부문에서라도 일자리를 늘리겠다고 밝혔다. 일자리를 만들어내지 못하면 어떤 정부든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지만 세금으로 일자리를 늘리는 데는 한계가 있다. 세금으로 늘린 일자리는 결국 민간영역을 갉아먹어 장기적으로 경제에 부담을 주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정부는 이제라도 기관투자가에 의한 투자자금 배분의 왜곡을 바로잡아 시장이 건전한 투자를 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국민연금이나 퇴직연금 등 국가가 강제로 떼어가는 연금이 대기업에만 싼 자금을 공급해 부익부빈익빈을 초래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 적어도 중소·중견기업에서 걷어간 만큼이라도 이쪽에 투자가 되도록 만들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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