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보상구조가 강남권 재건축 난장판 조장…투기는 반드시 값비싼 비용 치르도록 정책 설계를


강남권 재건축 아파트 시공권을 따내기위한 건설사들의 수주경쟁이 가관이다. 조합원들을 상대로 금품을 살포하고 향응을 제공하는 행태가 마치 정상적인 일인양 만연돼 있다. 세대마다 수천만원씩 이주비를 주겠다고 약속하거나 내년부터 부활하는 재건축 초과이익환수금 대납을 제시하는 일까지 버젓이 벌어질 정도다.

당국에서 제동을 걸기도 하지만 “우선 이기고 보자”며 거칠게 공세를 펴는 건설사의 승리로 귀결되는 상황이 반복되다보니 갈수록 더 진흙탕 싸움이 되고 있다. 급기야 건설업계 내부에서조차 무법천지가 된 혼탁 수주경쟁을 더 두고 볼 수 없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반포 주공 1단지, 잠실 미성·크로바, 서초구 한신4지구 재건축 수주전에 잇달아 참여했던 GS건설은 현금은 물론 상품권과 숙박권, 명품가방, 청소기, 인삼이 등장한 경쟁사의 무차별 금품살포 실태를 공개하기도 했다.

 

과당 수주전은 부정적 영향이 국지적인데 그치지 않고 부동산시장 전반에 미친다는 점에서 더 폐해가 크다. 가뜩이나 전국적으로 투기꾼이 몰리는 강남권 재건축 투기 광풍을 부추기는 작용을 하기 때문이다. 재건축 투자자의 입장에서는 시세 차익만으로도 짭짤한데 건설사들이 챙겨주는 뒷돈까지 두둑히 보너스로 챙길수 있어 그만큼 투기 메릿이 커지는 셈이다.

 

하지만 공짜 점심은 없다고 건설사들이 뿌린 돈은 결국 어딘가에서 벌충할 수 밖에 없다. 결국 일반 청약자를 봉으로 삼아 비용부담을 전가하는 분양가 상승으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특히 강남권 재건축은 서울과 수도권, 다른 지방의 아파트 시세까지 들썩이게 하는 파급력이 강력하다.강남권의 분양가 상승이 마치 전국 부동산의 가이드 라인인양 시장 전체를 들썩이게 하는 도화선 역할을 하는 일이 잦다. 

재건축 수주전에서 마구 돈을 뿌리는 것은 시공사 선정에서 투표권을 행사하는 조합원들의 환심을 사려는 의도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이 점에서 본질적으로는 선거때 금품을 뿌려 표를 사는 부정선거와 다르지 않다. 부정선거가 적발되면 형사처벌은 물론 당선이 취소되고 선거가 다시 치뤄진다. 하지만 재건축은 조합원들의 표를 사려는 건설사들의 일탈행위에 대해 처벌은 커녕 사고를 더 크게 친 업체일수록 되레 수주전 승리라는 보상을 안겨주는 구조다보니 혼탁상이 더 심화되는 것이다.

재건축 시장에서 벌어지는 난장판은 결국 이런 식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도록 여건이 만들어져 있는 탓이라고 볼 수 있다. 시장을 건전하게 관리해야할 책임이 있는 정부 당국이 그런 난장판을 방치하고 있거나, 오히려 그런 난장판을 조장하고 있다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 

 

올해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미국 시카고대의 리차드 세일러 교수는 행동주의 경제학의 연구업적을 인정받았다. 전통적인 경제학이 전제하는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인간이 아닌 비합리적이고 절제력이 부족한 인간의 의사결정과정에 주목한 것이다.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고 비합리성을 오히려 역이용하여 좀더 나은 선택으로 유도하려는 생각에서 그가 제시한 것이 ‘넛지(Nudge)’라는 개념이다. 

 

국내에서도 베스트셀러가 됐던 `넛지`라는 저서에서 세일러 교수는 이타심보다 이기심을 앞세우기 마련인 개인이 공익에 기여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노력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소변기에 파리 모양 스티커를 붙여놓는 아이디어만으로 소변기 밖으로 떨어지는 소변량을 80%나 줄인 사례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시민의식에 맡겨서는 공익에 부합되는 결과를 얻기 어렵다는 뜻도 담겨 있다.

 

대형 마트의 쇼핑 카트에서도 이런 넛지 개념이 작동된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쇼핑카트를 제 자리로 돌아오게 하는 것은 쇼핑객들의 높은 질서 의식이 결코 아니다. 카트의 자물쇠를 푸는 데 투입한 100원짜리 동전을 돌려받으려는 이기적인 욕구가 카트를 반납대로 끌고 가게 한다. 

 

질서 의식을 믿고 무료로 카트를 쓰게 했다면 주차장은 함부로 방치된 카트로 엉망이 될게 뻔하다. 이런 행위로 결국 소비자 자신들도 피해를 보기 마련이지만 카트를 제 자리로 돌려 놓는 당장의 수고가 더 귀찮게 느껴지는 법이다.100원짜리 동전이 이런 이기심을 억누르고 공익적인 행동을 하도록 유도하고 있는 것이​다.

 

부동산투기에 대한 규제와 재건축 과당 경쟁을 막을 정책도 마찬가지로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발상이 요구된다. 쇼핑 카트의100원짜리 동전과 같은 정책을 궁리해야 한다.

 

부동산 투기가 국가 경제와 국민의 삶에 얼마나 큰 폐해를 낳는 지는 박근혜 정부때 당시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쏟아놓은 정책들이 몰고온 파장을 보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투기에 대한 제어장치를 마구 풀어버린채 빚내서 집사라고 부추김으로써 눈덩이처럼 불어난 가계부채는 지금도 시한폭탄처럼 우리 경제를 잔뜩 옥죄고 있다. 

 

집값 상승으로 다주택자는 쉽게 재산을 불렸지만 무주택자는 물론 1주택자도 빚더미에 오르면서 대다수 국민들은 주거비 상승으로 고통을 겪고 있다. 소비가 제약되고 내집 마련 꿈이 아득해진 젊은이들은 ​혼인과 출산마저 기피함으로써 가뜩이나 심각한 저출산 현상이 갈수록 더 악화되면서 국가의 미래마저 어둡게 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동산 투기와의 전쟁에서 경제관료들을 독려하고 있다. 지난 7월 하순 열린 기업인간담회에서 "부동산 가격을 잡아 주면 피자 한 판씩 쏘겠다"​는 말도 했다. 대통령의 말에 자극 받은 듯 정부는 6·19대책에 이어 8·2 대책까지 내놓았지만 부동산시장, 특히 강남 재건축 시장은 수그러들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부동산투기와의 전쟁은 국가의 미래를 위해서도 결코 밀려서는 안된다. 정부는 강남 재건축 시장이야말로 그 전쟁의 승패를 결정짓는 가장 핵심적인 전장임을 명심하고 비상한 각오로 싸움에 나서야 한다.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날씨가 쌀쌀해지면서 벌써 난로가 등장하고 있다. 뜨거운 난로에 손을 대면 데일 수 밖에 없다. 부동산 투기 대책도 마찬가지다. 어떤 누구라도 예외없이 보상을 얻기는 커녕 반드시 값비싼 비용을 치른다는 생생한 교훈을 얻게끔 정책을 가다듬고 강력하게 실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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