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면 알수록 신세계다. 요즘 아이들이 스타를 사랑하는 방법.

일러스트=우먼센스 이현정

좋아하는 가수의 사진 또는 출연한 방송이 녹화된 비디오테이프를 마치 신주 단지 모시듯 소중하게 보관하는 게 전부였던 과거와는 확연히 다르다. 지금은 직접 아이돌 멤버를 뽑아 키우는 시대다. 자신이 좋아하는 후보를 데뷔시키기 위해 직접 홍보 책자를 만들고, 커피차를 빌려 촬영장 앞에서 일반 사람들에게 커피를 나눠주며 좋아하는 스타에 대한 애정을 부탁하기도 한다. 이런 현상은 소위 말하는 부자 동네, 즉 강남에서 시작돼 전국적으로 퍼져나갔다. ‘팬질’ ‘덕질’이 진화하고 있는 셈이다.

 

변하는 팬심, 신흥 강자 몬스터엑스·위키미키

요즘 10대들이 트렌드를 만들어내는 속도는 언론보다 빠르다. 언론에서 현재 가장 많이 다루는 아이돌 그룹은 실제 10대 사이에서 이미 ‘옛날 스타’가 된 경우가 허다하다. 엑소나 방탄소년단, 뉴이스트, 오마이걸, 러블리즈, 트와이스, 아이오아이는 이미 ‘구아이돌’로 불린지 오래. 한차례 거대한 팬덤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새롭게 등장한 아이돌 그룹은 몬스터엑스, MVP, 구구단, 위키미키 등이다. 아직 주목받지 못하는 신인이지만 팬덤의 화력이 예상외로 뜨거워 그들의 성장을 기대해볼 만하다.

 

이처럼 팬이었던 그룹에서 나와 다른 그룹의 팬이 되는 걸 ‘탈덕’ ‘환승’이라고 말한다. 좋아하는 멤버가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다든지, 팬을 기만하거나 조롱하는 행동을 보이면 바로 등을 돌린다. 그리고 해당 아이돌과 경쟁 구도에 있는 다른 그룹의 팬이 된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이상형과 비슷한 스타일의 멤버 팬으로 활동하다가 자기 취향에 딱 맞는 그룹이 데뷔하면 그쪽으로 마음을 돌리는 경우다. 처음부터 끝까지 한 명의 스타만 줄곧 좋아하던 예전과는 분위기가 확연히 다르다. 사랑이 어떻게 변하냐고? 옛말이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취향의 변화에 따라 팬들의 마음도 움직인다. 놀라운 건 ‘팬질’을 열심히 할수록 음악적 정보와 지식이 전문가 수준이라는 사실이다. 좋아하는 그룹의 장르에 대한 분석부터 곡에 대한 해석까지, 체계적이고 전문적으로 깊숙이 파고든다. 팬덤을 ‘환승’할 때마다 새로운 아이돌 그룹에 대한 연구를 거듭하는 셈이니 ‘팬질’ 하는 아이들의 음악적 지식을 결코 무시할 수 없다.

 

덕후 생활 백서

학급 내 팬덤 파벌 강남의 유명 중학교 내 교실을 들여다보면 재미있는 현상 하나를 발견할 수 있다. 좋아하는 그룹 또는 멤버가 누구인지에 따라 친구가 바뀐다. 학급 내 ‘파벌’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한 다리만 건너면 연예인과 친분이 있는 ‘강남맘’ 부모의 도움을 받는 자녀들도 있다. 쉽게 구할 수 없는 사인 CD는 물론이고 몇 십만원 하는데도 없어서 못 구한다는 콘서트 VIP석 티켓을 척척 구한다. 그리고 그런 것을 구하느냐 못 구하느냐에 따라서도 ‘파벌’이 갈린다. 가정 형편에 따라 팬질의 퀄리티도 달라지는 셈이다.

 

주인공 없는 생일 파티 좋아하는 멤버의 생일날이 되면 온 가족이 모여 그의 생일 축하 파티를 여는 문화도 생겼다. 정작 생일 당사자는 그 자리에 없는 ‘독특한’ 분위기의 생일 파티지만, 부모님은 자녀가 좋아하는 스타를 위해 케이크를 준비하고 함께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준다. 생일 선물은 주로 저소득층을 위한 기부로 대신한다. 최근엔 <프로듀스 101> 출신 큐브엔터테인먼트 연습생 유선호의 생일인 1월 28일에 맞춰 1백28만원을 작은사랑나눔운동본부에 기부한 사례도 있다. 부모 입장에선 파티를 안 열어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좋아하는 연예인을 보기 위해 새벽부터​ 공개방송 현장을 찾는 자녀를 지켜보는 것보단 낫기 때문이다. ‘팬질’에 열정적인 아이일수록 학업 성적도 좋다. 부모의 물심양면 지원 아래 ‘팬질’도, ‘공부’도 열심히 하기 때문이다.

 

팬덤 핫 플레이스, 교보문고 한정판 사진집이나 아이템이 출시되면 팬덤들은 교보문고로 향한다. 다른 곳에서 구매하면 판매량이 집계되지 않기 때문에 먼 길도 마다하지 않고 발품을 파는 것이다. 판매 부수를 올리기 위해 한 사람당 1백만원씩 구매하는 ‘과소비 운동’도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 요즘 ‘팬덤’은 내 스타를 위해 못 하는 게 없다.

소장 가치 100%의 나만의 사진첩을 만들기 위해 직접 공개방송 현장을 찾는 팬들도 있다. 전문적인 사진 기자가 사용한다는 망원 카메라, 일명 ‘대포 카메라’를 들고 아이돌 그룹의 각종 스케줄을 따라 다니는 덕후들이다. 이들을 ‘찍덕’ ‘캠덕’이라 부른다. 직접 찍은 사진이나 영상, 일명 ‘직찍’과 ‘직캠’은 포토북으로 재생산돼 일종의 팬 커뮤니티인 ‘홈’을​ 통해 유통·거래된다. 제작 단가는 1만5천원 수준이지만 판매가는 10만원을 웃돈다. 사진과 영상의 상태에 따라 가격은 천차만별이다. 홈페이지 운영자를 ‘홈마(홈페이지 마스터)’라 부르고, 영상과 사진 등을 제공하는 사람을 ‘선생님’이라고 부른다. ‘홈마’와 ‘선생님’의 돈벌이 수단 역시 포토카드, 방석, 인형, 달력 등이다.

 

모든 활동의 시작은 트위터 팬덤 활동은 트위터부터 시작한다. 트위터에 팬 페이지를 만든 뒤 그 안에서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사진첩을 사고판다. 해외 팬들은 트위터를 통해 웃돈을 주고 사기도 한다. 그뿐만 아니라 콘서트 티켓도 사고판다. 티켓 판매 사이트에 좌석을 지정해놓으면 자동으로 선택, 결제까지 해주는 프로그램도 있다. 약 4만원에 구입한 좌석이 30만~40만원의 프리미엄이 붙어 재판매되기도 한다. 지난해 뉴이스트 콘서트의 S석 티켓이 약 7백만원에 거래됐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보도 자료 배포 내가 좋아하는 스타를 띄우기 위해 소속사 역할을 대행하는 팬들도 있다. 사진과 활동 자료를 모아 만든 보도 자료를 각 언론사에 배포하는 작업을 수행하는 것. 방송 모니터부터 기부, 착장 아이템 완판 등 소재도 다양하다. 팬들이 보낸 보도 자료는 아이돌 소속 회사에서 배포하는 일반 보도 자료와 별반 다르지 않다. 팬덤 조직이 전문화·체계화되는 것을 방증하는데, 자기가 좋아하는 스타의 기사가 하나라도 잘 나오게 하기 위해 연예부 기자와 친분을 맺고자 하는 팬들도 있다.

 

지하철 전광판 금수저 팬덤은 팬심을 표현하는 방법도 스케일이 남다르다. 버스 전체를 래핑해 돌아다니는 광고판으로 활용하고 영화관의 한 관을 통째로 대여하거나 뉴스용 전광판을 이용한 광고 등이 바로 그 예이다. 한 층 전체가 지코로 도배된 홍대CGV ‘지코층’과 지난 6월 운영된 강변CGV 방탄소년단관은 이미 팬들 사이에서 ‘성지’로 꼽힌다. 최근 빅뱅 멤버 지드래곤의 컴백을 응원하기 위해 팬들이 지하철 3호선 열차 한 칸에 지드래곤의 얼굴과 새 앨범 문구를 바닥과 벽면 등에 래핑한 ‘권지용 열차칸’을 꾸며 화제가 되기도 했다. 비용도 만만치 않다. 가장 핫하다는 삼성역 전광판 광고료는 한 달에 약 7백만원 선. 전광판 수를 늘리면 비용은 천정부지로 치솟는다. 그런데도 팬들은 자기 스타를 위해 돈을 아끼지 않는다.​

 

덕후 용어 사전

대포(머포) 이전에는 망원 렌즈로 사진 찍는 사람들을 가리켰으나 요즘은 대구경 단렌즈를 사용하는 찍덕들을 일컫는 말.

눈덕 ‘눈으로 덕질하는 사람’을 줄여 부르는 말. 카메라 등을 사용하지 않고 멤버와의 소통을 위주로 덕질하는 사람.

안방덕후 현장에 나오지 않고 집에서 컴퓨터 등을 통해 사진과 영상, 출연하는 프로그램을 챙겨 보는 사람.

플미 ‘프리미엄’의 줄임말로 티켓 등을 거래할 때 ‘원가 + 추가금’을 지칭한다.

공방 ‘공개방송’의 줄임말. 음악 프로그램의 방청을 말한다.

사녹 ‘사전 녹화’의 줄임말. 공개방송을 진행하기 전에 진행하는 녹화.

현참 ‘현장 참여’의 줄임말. 보통 팬클럽의 ‘사녹’ 또는 ‘공방’의 자리가 따로 나오는데 이는 사전에 신청해야 가능하다. 하지만 이를 잊어버린 경우 현장에서 앨범과 음원 구매 내역서 등을 지참하면 녹화에 참여할 수 있다.

깐·덮 이마를 ‘깐’ 머리와 ‘덮은’ 머리를 지칭하는 단어. 호불호가 확실히 갈리기도 한다.

갈말갈 ‘갈까 말까 할 때는 갈 것’의 줄임말로 오프라인 행사에 갈까 말까를 고민하는 팬에게 주로 쓰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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