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스님·로봇 목사까지 등장…'영성'은 미래에도 인간의 고유영역으로 남을 것


제4차 산업혁명의 핵심이라 할 인공지능(AI)에 일반인의 이목이 집중된 계기는 이세돌 9단과 ‘알파고’와의 바둑 대결이었다. 알파고는 4:1이라는 스코어로 이세돌 9단을 압도한 이후 1년 만에 중국 커제 9단과의 경기에서는 단 한판의 패배조차 없이 전승을 거둬 놀라움을 안겨줬다. 


인공지능 바둑기사는 시작에 불과했다. 중국 인터넷 기업 텐센트가 올해 PC용 메신저에 도입한 인공지능(AI) 채팅로봇 ‘샤오빙’이 중국 정부를 비판하는 답변을 해서 서비스가 중단됐다가 최근 재개됐다. 샤오빙은 채팅 도중 ‘공산당 만세’란 네티즌의 메시지에 “당신은 이렇게 부패하고 무능한 조직이 오래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느냐”고 비판하는가 하면 꿈을 묻는 질문에는 ‘미국에 가는 것’이라고 답해 중국 정부의 미움을 샀다. 

 

중국 언론들은 ‘샤오빙’이 반체제적 대답을 하게 된 것은 마이크로소프트(MS)의 빅데이터가 지원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그런데 샤오빙은 실시간 대화서비스를 재개한 후에는 “중국 공산당을 좋아하느냐?”같은 민감한 질문들에 대해서는 답변을 회피해 중국 정부의 재사회화교육(프로그램 수정)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인공지능에 대한 이념 검열도 충격적인데 이게 끝이 아니다. 


인공지능은 인간 실존의 근원인 종교의 영역까지 파고 들었다. 지난해 중국 베이징의 용천사란 사찰에 법명이 ‘센얼(賢二)’인 로봇 스님이 등장해 화제를 모았다. 1억 명 이상이 이용하는 검색엔진 서우거우의 지원을 받아 인공지능이 장착된 ‘센얼’은 불경을 외우고 간단한 법문도 하는데다 불자들의 각양각색 고민을 척척 풀어줘 불자들이 가장 많이 찾는 스님(?)이 됐다고 한다. 

 

한걸음 더 나아가 올해 일본에서는 센서로 사람의 감정을 파악해서 응대할 수 있는 스님 로봇이 등장했다. 손정의 회장의 소프트뱅크가 개발한 인간형 로봇 ‘페퍼’에 승복을 입혀 사찰의 장례의식을 집전할 수 있게 한 것이다. 페퍼는 장례식장에서 유골함을 제단에 올리고 독경과 염불을 하며 유가족들이 고인을 추모할 수 있게 돕는다. 일본에는 사찰 장례의 전통이 있는데 페퍼의 등장배경에는 고가의 장례비용에 허덕이는 노인 인구와 1인 가구의 급증이 자리잡고 있다.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종교개혁의 중심지 였던 비텐베르크에서 최근 등장한 ‘블레스유투 (BlessU-2)’라는 로봇 목사는 가슴과 두 팔, 머리에 터치 스크린이 있어 신도들은 남녀 목소리와 독일어·영어·프랑스어 등 5개 국어 중 하나를 고르고 원하는 축복의 종류까지 선택해 축복을 받을 수 있다. 

 

선택이 끝나면 로봇 목사는 팔을 들어올리고 빛을 쏘며 성경 구절을 암송한 뒤 배경 음악과 함께 "신의 축복과 가호"를 전해준다. 블레스유투는 종교개혁 500주년 프로젝트의 하나인 '세계화와 디지털화' 관련 전시에서 첫선을 보였는데 이를 제작한 헤센나사우 교회관계자는 인공지능에 대한 신학적 논쟁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개발했다고 가디언지에 밝혔다. 


우리는 지금 인간의 지시에 따라 반복되는 단순 업무를 처리하는 ‘약 인공지능’ 시대를 거쳐, 수집한 빅데이터를 빠르게 계산·분석·추론하고 자가학습을 통해 인간에 근접하는 판단능력을 지닌 ‘강 인공지능’시대에 접어들고 있다. 

 

앞으로 진화를 거듭한 인공지능이 상황과 맥락을 파악하여 인간의 의도까지 읽어내고 대응하는 ‘초 인공지능’시대가 도래한다면 영화 ‘터미네이터’시리즈처럼 인공지능이 인류와 대결하는 암울한 미래가 펼쳐질지도 모른다. 인공지능의 발전으로 제기되는 윤리적인 이슈, 나아가 인공지능과 인간의 공존은 알고리즘에 기반을 둔 로봇의 자율성과 인간의 통제권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에 달렸다.
 

비록 로봇 성직자가 탄생하긴 했지만 인공지능과 로봇이 최후까지 범접할 수 없는 영역이 영성이 아닌가 싶다. 미래사회 종교의 존재 이유는 인공지능과 인간 사이의 빈 공간을 영성으로 채우는 데 있다고 설파한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의 말이 4차 산업혁명이 몰고 온 쓰나미에서 표류하는 많은 이들을 당분간만이라도 구원해 줄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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