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행률 적용 위해선 분양권 중간 환불규정 필요…공정위 "계약은 사적영역이라 관여 곤란"

 

새 회계기준 도입에 앞서 건설업계가 아파트 분양시 수분양자와 체결하는 ‘표준계약서’를 변경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완공 이전 환불규정을 명시해 수분양자의 ‘지급청구권’을 명확히 해야 IFRS15 하에서 진행률 적용을 명확히 할 수 있단 분석이다. 다만 이에 대해 정부 측은 “계약은 사적영역”이라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29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내년부터 도입될 새 수익인식 기준인 IFRS15는 재화의 인도시점을 기준으로 매출액이 산정된다. 건설업계에 한정하면 분양된 아파트가 수분양자에게 인도된 뒤 소유권 이전등기가 되고 나서야 업체에 매출로 인식되는 셈이다. 발주처가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도급공사가 아닌 토지매입부터 분양, 착공, 준공 등 전 과정을 건설사가 진행하는 자체 분양사업이 이 기준의 사정권에 놓인다.

수주산업으로서 진행률 기준으로 매출을 인식한 건설업계에 치명적일 수 밖에 없다. 그간 건설사는 분양대금이 들어오지 않더라도 공기 진행률에 따라 매출이 인식됐다. 따라서 새 회계기준이 도입될 시 아파트 분양 이후 준공까지 3년 가량의 시간이 지나야 수익이 발생하게 된다. 

이에 따라 새 회계기준에 맞춰 자체 분양사업시 수분양자가 분양권을 중간에 환불할 수 있는 문구를 명시하게 ‘표준계약서’를 변경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새 회계기준의 문단 3항에 ‘자산의 대체불가능성’이란 문구가 있다. 건설사의 아파트 분양에 이 문구를 적용시 공사 도중 소비자가 계약포기를 원할 경우 중간 대금을 받을 수 있는 권리가 있는 지의 해석으로 이어진다. 지급청구권과도 연결된다. 이는 자체 분양사업에서도 진행률을 적용할 수 있는 지를 가늠하는 핵심 문구다.

이를 실제 상황에 적용하면 다음과 같다. 공사비를 포함한 1억원 규모(건설사 예상이익은 1000만원이라 가정)의 아파트 호수를 계약한 수분양자가 자금력이 부족해 중도금 또는 잔금납부를 할 수 없을 경우 계약취소를 건설사에 요청할 수 있다. 공정률이 70%라 가정하면 새 회계기준상 건설사는 수분양자에게 7700만원(1억1000만원x0.7)을 지급해야 한다. 그래야만 건설사 자체분양 사업에 진행률이 적용된다. 인도기준의 핵심은 제작이 진행 중이거나 제작이 완료된 물적재화를 기준으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제조업에서 공정중단에 따른 중간환불을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다만 현행 표준계약서상 수분양자는 분양권에 대해 환불 자체가 불가능하다. 계약서에 ‘취소할 수 없는 계약’​이란 문구가 들어갔기 때문이다. 또한 수분양자가 아파트란 물적재화가 아닌 미래 입주권리를 구매한 것도 한 이유다. 따라서 수분양자가 계약을 포기하고 싶으면 또 다른 개인에게 분양권을 판매해야만 한다. 이에 따라 공정률에 근거해 대금환불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가 수분양자에게 존재하지 않는다. 새 회계기준에서 진행률 적용 여부를 가늠하는 지급청구권, 자산의 대체불가능성과 상충되는 대목이다.

한종수 이화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현행 표준계약서는 계약취소에 대한 여러 해석을 낳는다. 일례로 계약취소를 해주지 않고 완공 뒤 환불이 가능한 건지, 다른 방식으로 예상이익을 포함해 중간에 환불을 해줄 수 있는지에 대한 해석이 애매모호하다”며 “이에 예상이익을 포함해 공정률에 따라 수분양자가 대금을 환불받을 수 있단 문구가 들어가야 (진행률 적용을 위한) 새 회계기준에 총족된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건설업계 차원에서도 움직임이 일고 있다. 정부 측에 표준계약서 상 환불규정과 관련해 새 회계기준에 적합한 문구를 넣어달라고 업계 차원의 건의가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정부 부처에서 소극적인 움직임을 보인단 지적이 일고 있다. 아파트는 타 자산 대비 가격이 매우 높다. 이에 따라 소비자와의 분쟁 등을 감안해 정부 차원에서 표준계약서와 관련해 지침을 마련해야 한다고 건설업계 측은 바라본다. 다만 계약서 변경시 소비자권익위원회의 추가 점검 등의 복잡한 절차, 건설업체와 개인의 계약은 ‘사적영역’이란 이유로 제대로 된 검토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전언이다.

공정거래위원회 관계자는 “아파트 공급에 관한 표준약관이 존재하긴 한다. 다만 가이드라인만 존재한다. 특정 약관을 쓰도록 공정위가 강제할 수 없다. 또한 공정위가 사전적으로 업체 약관을 검토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 전문가는 “건설업종과 마찬가지로 수주산업인 조선협회는 진행률 적용이 가능하다. 계약서상 선사가 중간 취소시 선박건조 공종에 따른 일정이익을 더해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는 규정이 계약서에 규정됐다”며 “상거래 규정을 관장하는 공정위가 건설업계에도 이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제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미지= 조현경 디자이너

저작권자 © 시사저널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