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금이 '단기투기→장기투자' 행태변화 이끌어야…자문사 전문성 높일 건강한 생태계 조성도 과제

최근들어 국내에서도 스튜어드십 코드(Stewardship Code, 이하 '코드')와 관련한 논의가 뜨겁다. 오랜전부터 코드 도입의 중요성을 말해 왔던 필자로서는 무척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부디 코드 도입 논의가 '구두선'에 그치지 않고 한국자본시장에 제대로 뿌리내리길 바란다. 

 

주지하듯 코드의 근본목적은 기관투자자들과 기업간에 우호적이며 생산적인 대화가 이뤄지고, 이를 통해 장기적으로 기업가치를 높임으로써 상호 윈윈하자는 데 있다. 따라서 일각에서 주장하듯, 코드 도입으로 인한 경영권 위협 및 경영행위 방해 운운은 코드의 본질에서 한참 벗어난 것이다.

다만 코드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몇가지 전제조건들이 있다. 이 조건들이 충족되지 못하면 코드는 정치권의 립서비스와 정책당국의 제스쳐로 이어졌다가 일정기간 경과 후 유야무야되고 말 것이다. 즉 지난 99년 기업지배구조원이 제정했던 기업지배구조 모범규준이 걸어왔던 길을 동일하게 따라 갈 가능성이 매우 높다. 코드가 명실상부하게 발전하기 위해 필자는 다음의 세가지 전제조건들을 제시한다.

첫째, 코드 실행은 장기투자를 실천하겠다는 선언과 다름 아니다. 따라서 투자기관은 최소 3년 이상의 투자시계를 가져야 한다. 그래야 투자자 자신도 해당기업에 대한 애정과 이해도를 높일 수 있고 기업 측에서도 투자기관을 '뜨내기 주주'가 아닌 대화의 상대로 인정해 줄 것이다. 

 

또한 장기투자가 전제 될 때 비로서 투자기관은 기업에 대한 모니터링과 진단 그리고 문제의 해법을 찾아 기업 측과 접촉하려는 유인을 가질 수 있다. 장기투자를 해야 시장을 이길 수 있다는 믿음과 철학이 부재한 투자기관은 스튜어드십 코드를 형식적으로 도입할 수 있을지는 모르나, 진정한 '스튜어드(Steward, 집사)'가 될 수는 결코 없다. 이들은 투자대상기업의 위험 요인들이 발견되는 즉시 한번의 클릭으로 손쉽게 해당 회사 주주의 신분을 내 팽개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매우 단기투기적인 한국자본시장에서 코드가 뿌리내리기까지는 지난한 과정을 거칠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정책 당국자들은 코드 도입추진과 동시에 장기투자 유도방안을 찾기 위해 더욱 노력해야 한다. 필자는 두가지를 제안한다.  하나는, 당장 주식을 팔아서 자금을 만들 필요가 없는 국민연금 같은 공적 연기금들부터 투자철학을 바꾸고 장기투자의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금융당국이 펀드 판매사들인 은행과 증권사들의 예탁자산의 펀드 회전율을 평가해서 그것이 낮은 판매사들에게는 정책적 인센티브를, 과도할 만큼 높은 판매사들에게는 반드시 불이익을 줘야 한다.

둘째, 코드 역시 산업 생태계가 마련되어야 확산 발전될수 있다. 투자기관들이 코드를 도입 실행하기 위해서는 내부 정책 및 시스템과 인력 등이 마련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다음과 같은 투자행위들에 대해 자원을 배분해야 한다. △투자대상 기업 모니터링 문제점 진단 및 솔루션 도출 △인게이지먼트(회사 접촉 및 대화) △의결권 행사 △법적 검토 및 필요한 경우 행사 등이 그것들이다. 즉 이것은 코드를 실행하기 위해 투자기관들이 추가적 재무 코스트를 부담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추가적인 비용이 발생하는 스튜어드십 투자를 통해서 그 이상의 추가적인 수익이 발생할 수 있다는 믿음이 없다면 투자기관들은 눈가리고 아웅하는 식의 형식적 코드 도입에 그치고 만다. 여기서 투자 사슬(Investment Chain)상 최상단에서 자금을 공급하는 연기금의 역할이 중요하다. 우선 먼저 연기금들이 자산운용사들에게 자금을 위탁할 때, 이 추가적인 코스트가 감안된 수수료 정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그리고 집행 이후, 자산운용사들이 이 추가적인 수수료를 인하우스 역량 강화에 투자했는지 아니면 외부 서비스 자문기관에 지불했는지를 엄격히 실사해야 한다. 즉 추가적인 수수료가 순수하게 스튜어드십 투자행위 및 전문성 제고를 위해 사용됐는지를 점검해야 한다는 뜻이다. 자산 보유기관들이 이런 사안에 대해 관심을 갖고 꼼꼼히 챙기지 않으면 국내에서 스튜어드십 코드의 생태계는 결코 마련될 수 없다.

마지막으로 한가지 더 첨언하자면, 학계의 관심이다. 즉 스튜어드십 투자가 장기적으로 기업의 지배구조 및 ESG성과 개선에 긍정적인 기여를 하고 이것이 투자에서 추가적인 알파를 창출할 수 있다는 실증적 연구가 선행되지 않으면 국내에서 코드의 실질적 확산이 이뤄지기 어렵다. 이점에서 최근 피알아이(PRI)의 지원에 따라 수행되었던 런던정경대학의 시리(Xi Li)교수팀의 인게이지먼트를 통한 추가적인 재무성과 창출에 관한 연구나, 카스 경영대학원의 진 파스칼 곤드(Jean-Pascal Gond) 교수의 연구는 매우 큰 시사점을 갖는다. 국내에서도 이와 유사한 연구물들이 속속 발표 될 수 있도록 정책당국이나 자산 보유기관들의 관심이 요구된다.

우리는 경험적으로 정부 주도의 탑 다운식 정책이 필드에 적절히 착근되는 것이 얼마나 어렵다는 사실을 잘 안다. 과거 대중소기업 동반성장 정책들이 그랬고, 저탄소 녹색성장이나 창조경제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이번 스튜어드십 코드는 달랐으면 한다. 그러기 위해 필자가 앞서 제시한 전제조건들에 대한 두리뭉실한 관심이 아니라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지원과 관심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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