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금리인상 시사에도 장기금리 전망은 '비둘기파' 우세…가계부채 부담 한국도 섣불리 금리 손 못대

최근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연준)가 자산축소 의지를 밝히면서 시중 금리가 상승할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이러한 상황을 투자자나 기업들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미국이 금리를 올리더라도 당분간 인상폭은 크지 않을 것이며, 또한 금리인상 속도 역시 빠르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저금리 기조는 앞으로도 상당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고 할 수 있다. 또 미국이나 한국 모두 금리를 올리더라도 과거처럼 시장에 충격을 줄 정도로 크게 높이지는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 만큼 경제주체들은 금리인상 이슈에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기 보다는 금리 이외의 변수와 함께 저울질을 하면서 대응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연준 단기는 매파·장기는 비둘기파

향후 미국의 금리인상이 크지도 잦지도 않을 것이란 점은 우선 연준의 발표문을 통해 읽을 수 있다.


미 연준은 지난 20일 FOMC(공개시장위원회)를 통해 10월부터 대차대조표 정상화 프로그램을 시작한다고 밝혀 세계 금융시장에 영향을 미쳤다. 연준은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초래한 금융위기를 진정시키는 과정에서 금리를 대폭 내리는 것으로도 안되자 직접 시장에 개입해 각 금융기관이 보유하고 있던 채권을 사들이는 방식으로 시중에 달러를 공급했다. 이 과정에서 보유하게 된 4조5000억 달러의 국채와 모기지 채권을 단계적으로 매각해 연준의 자산구조를 정상화하겠다는 방침은 이미 지난 6월에 밝힌 바 있다. 이번 발표는 당시의 결정을 구체적으로 진전시키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런데도 이 여파로 지난 21일 일본에선 엔화 가치가 전날에 비해 1%가량 하락하기도 했고, 서울 외환시장에서도 원화가 달러화 대비 0.4% 정도 하락하며 약세를 보였다. 이날 코스피 역시 약세를 기록했다.

미국의 대차대조표 축소 방침에 아시아 주요시장이 급격히 반응한 것은 미국의 금리가 상승할 경우 한국과 미국의 금리가 역전되는 등의 이유로 외국인 투자자금이 미국으로 빠져나갈 가능성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현실경제는 시장에서 이론적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단순한 게 아니다. 미 연준이 이번 FOMC에서 대차대조표 축소를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기준금리는 내리지 않고 1.00~1.25%로 동결한 것 역시 현 상황을 이해하는 단서가 된다.

연준이 다음 달부터 대차대조표 정상화에 돌입한다면서 기준금리는 묶어둔 데는 사연이 있다. 연준이 최대 사명으로 내세우는 고용 극대화와 물가안정이란 두 가지 목표를 달성하기에 필요한 여건을 조성하기엔 현실경제 여건이 녹록치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연준은 이번 FOMC 회의 결과를 밝히면서 12개월 기준 인플레이션이 단기적으로는 2 % 미만으로 이어지고 있고, 중기적으로나 자신들의 목표치인 2%선에 이를 것으로 예상한 바 있다. 연준이 보충자료로 제시한 전망치에서도 PCE(개인소비지출) 인플레이션이 내년까지는 2%대에 이르지 못하고 2020년에야 2%대에 이를 것으로 나타났다. 그만큼 연준 자체도 아직 경제전망에 대해 확신하지 못한다는 얘기다.

특히 연준은 이날 FOMC에서 12월 금리인상 가능성은 높게 제시했지만 연준 펀드의 장기금리 전망을 오히려 3%에서 2.75%로 낮춰 제시해(중간값 기준) 단기적으로 매파처럼 보였지만 장기로는 비둘기파적 입장을 취했다. 이 때문에 금융시장에선 단기금리는 오르고 장기금리는 하락하는 모습이 나타나기도 했다.


BOA메릴린치는 이런 점을 감안해 올해 12월에 기준금리를 올리겠지만 이후로는 금리인상 횟수가 그다지 많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연준이 그만큼 확신을 갖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국내 여건도 고금리는 부담

한국은행이나 정부 역시 미국의 금리인상 기조에 크게 연연하지 않는 분위기다. 미국이 기준금리를 가파르게 끌어올리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어서다.
 

고형권 기획재정부 1차관은 지난 21일 거시경제금융회의에서 이번 미국의 FOMC 결과에 대해 “시장에서 예상한 수준”이라며 대차대조표 정상화 조치 역시 "월별 자산축소 규모가 크지 않아“ 큰 부담이 되지 않는 것으로 평가했다.
 

정부로선 그 보다는 GDP의 93%나 되는 가계부채가 여전히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는 게 발등에 떨어진 불일 것이다. 과도한 주택공급 때문에 불가피하게 이어지는 가계대출이 계속 늘어나고 있는 만큼 현 수준에서 금리를 올려 가계에 부담을 주기가 쉽지 않은 형국이다.
 

여기에 최근 다른 OECD국가들과는 달리 국내자본이 생산적인 곳으로 투자가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에 여전히 늘어나고 있는 청년실업도 심각한 고민거리다.
 

결국 정부나 한국은행이나 섣불리 금리를 올리기엔 부담이 너무 크기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국내외 여건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연준이나 한국은행이나 기준금리 카드를 조몰락거리고는 있지만 경제기조를 흔들 만큼 크게 쓰기는 어려울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개인이나 기업이나 금리인상을 예상해 지나치게 크게 움직일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그 보다는 앞으로 이어질 정부의 가계부채 대책이나, 북핵위기의 진전, 중국 신용등급 하향조정의 여파 등 개별적인 이슈들이 오히려 시장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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