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성차 사냥 가속, 기술력·인지도 제고 속도…경쟁자로 인정하고 대비해야

그동안 글로벌 시장에서 중국 자동차업체들의 위상은 ‘짝퉁’이란 오명을 뒤집어쓴 비웃음의 대상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중국 업체들의 대형 완성차 브랜드 인수 사례를 보면 더 이상 키득대며 조롱하긴 힘들듯 하다. 굵직한 완성차업체들의 사냥에 속도를 내면서 중국 자동차업체를 바라보는 시선의 결이 달라지고 있다. 

 

인수합병(M&A)를 주도하고 있는 건 지리자동차다. 이 회사는 지난 2010년 스웨덴 볼보자동차를 인수했다. 당시만 해도 지리의 기술력 제고에 대한 기대보다는 볼보의 브랜드 가치 하락에 대한 우려가 더 컸다. 하지만 7년이 지난 뒤 평가는 달라졌다. 지리는 볼보의 프리미엄 브랜드 이미지를 계승하면서 기술력은 자사에 성공적으로 이식시켰다. 인수 뒤 판매량은 고공 비행 중이다.

실제 지리의 올 상반기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배 이상 증가했다. 글로벌 자동차 브랜드 순위도 20위권 중반대로 40계단 가까이 뛰어올랐다.

지리차의 M&A 행보는 거침이 없다. 올해 5월에는 영국 스포츠카 제조업체 로터스도 매입했고, 이어 7월에는 하늘을 나는 자동차 ‘플라잉카’를 개발한 미국 스타트업 테라푸지아까지 손에 쥐었다.

베이징자동차도 앞서 2009년 스웨덴 사브(SAAB)의 2개 차종 생산설비와 지식재산권을 인수하며 약점으로 지적됐던 연구개발(R&D) 능력 향상과 비용 절감의 전기를 마련했다. 둥펑차는 2014년 프랑스 푸조·시트로엥(PSA) 지분 14%를 매입, 3대 주주에 올랐다.

해프닝에 그쳤지만 지난달에는 중국 최대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제조업체인 창청자동차가 미국 빅3 자동차업체로 꼽히는 피아트크라이슬러(FCA)의 ‘지프(Jeep)’ 인수 타진 소식이 업계를 들썩이게 했다.

중국 자동차업체들은 지난 2008년 이후 해외 자동차 산업에 340억달러를 쏟아부었다. 이를 통해 자동차 제조·부품 분야에서 규모는 물론, 기술력 육성에 전사적인 역량을 집중해왔다. 올 상반기만 따져봐도 1억달러를 넘는 자동차 관련 해외투자가 8건에 달한다. 액수로는 55억달러 규모다.

여기에 적극적인 정부 지원도 ‘믿는 구석’이다. 중국 정부는 올해 4월 글로벌 자동차 시장 진출을 확대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자동차산업 장기 발전 방안’을 마련해 시행에 들어갔다. 2025년까지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자동차 회사 8~10곳을 키워 낸다는 목표다.

솔직히 우리나라는 그동안 제조업 분야, 특히 자동차에 있어서 만큼은 중국에 절대적인 우위를 점한다고 우쭐해 왔다. 자동차는 2만여개가 넘는 부품으로 이뤄진 첨단산업의 결정체다. 이 탓에 흉내내기 수준의 ‘카피 캣(Copy Cat·모방자)’은 가능할 지언정, 성능과 브랜드 인지도에 있어서 만큼은 넘어설 수 없는 격차가 있다고 자신감을 보여 온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제는 중국 자동차업체들을 더 이상 ‘대륙의 짝퉁’이라고 무시하는 과오를 범해서는 안 된다. 거듭된 M&A로 기술력과 가격 부문에서 빠르게 경쟁력을 키우며 글로벌 자동차업계를 크게 위협하고 있다.

사실상 유일한 국산 완성차업체인 현대·기아차 역시 불과 10여년 전만 하더라도 글로벌 시장에서 ‘값싸고 탈 만한 차’로 평가절하 받았지만, 지금은 글로벌 유수의 완성차 메이커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는 걸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중국의 자동차 ‘굴기(堀起)​를 더 이상 ​치기(稚氣)​로 치부할 수 만은 없는 상황이 됐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잠재적인 경쟁자로 받아들이는 인식의 변화가 시급한 시점이다. 


최근 만난 국내 완성차업체 한 임원은 “아직까지는 무시할 수 없는 격차가 있지만 중국 자동차업체들이 자국 정부의 강력한 지원을 등에 업고 한국의 뒤를 바짝 쫓고 있는 상황​이라며 ​몇 년 후 글로벌 자동차시장에서 양국의 위상이 어떻게 변화될 지에 대해서는 장담하기 힘들다”고 전했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