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질은 숫자 전달 아닌 해석과 상상…애널리스트 업계 “되레 기회”

이미지=셔터스톡

인공지능(AI)이 인간을 대체할 것이란 분석이 하루가 멀다하고 나오고 있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 보고서는 10년 후 국내 일자리 절반 이상이 인공지능으로 대체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그러나 정작 해당 직업군 종사자들은 크게 개의치 않는 모습이다. 인공지능에 맞서 싸울 비대칭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역설적으로 더욱 ‘인간다운’ 일에 집중하고 직업의 본질을 추구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세 번째 이야기의 주인공은 증권사 애널리스트다. [편집자주]​

“이미 쓰이고도 있지만, AI 저널리즘이 확산되면 가장 먼저 증권기사를 대체하지 않을까?”

경제지 7년차 기자의 말이다. 딱히 새로운 전망은 아니다. 이미 미래는 우리 곁에 성큼 다가와 있다. 경제보도에서 가장 먼저 로봇으로 대체된 분야가 바로 증권이다. ‘차기 후보’는 유통이 꼽힌다. 주가, 물가 등 숫자와 연관된 업종들이다. 투자자가 사라지지 않는 한, 먹고 마시는 걸 ‘알약 1개’가 대체하지 않는 한 이 숫자들은 사람 곁에 영원히 살아있을 수밖에 없다.

로봇은 이 숫자를 빠르게 글로 만들어낸다. 속도는? 겨우 0.3초다. 1초에 3개 씩 시황 정보를 기사화하는 로봇을 사람이 앞설 수는 없다. 입력하는 데이터가 틀리지 않는 이상 로봇이 작성한 증권 기사가 오류일 가능성은 제로다. 문제는 사람이지 로봇이 아니라는 얘기다.

AI는 증시 관련 데이터를 반복해 수집한다. 이를 금세 코스피의 지수별·업종별·종목별 기사로 탈바꿈시킨다. AI와 빅데이터가 만나면? 아마 투자자 개인 맞춤형 정보를 매일 아침마다 스마트폰으로 배달해줄 지도 모르겠다.

증권 시황을 분석하고 이를 리포트로 만들어 투자자에게 제공하는 애널리스트의 미래는 어떨까. 사라질까? 다른 일자리를 찾아야 할까? 답은 단연코 ‘노’(NO)다.

지금도 과거에 비하면 애널리스트에 의존하는 개인투자자는 줄었다. 하지만 스타급 애널리스트를 찾는 금융가의 움직임은 훨씬 더 치열해졌다. 군계일학 찾기다. 전문분야를 통찰력 있게 설명해 줄 인재가 그만큼 희귀해진 탓이다. 전문성? 통찰력? 맞다. ‘인간은 필요없다’ 같은 책이 나오는 지금 ‘인간만 필요하다’고 자신만만하게 주장할 덕목들이다.

애널리스트는 현재 시장가치를 판단하고 해석해 이를 토대로 미래가치를 계산한다. 데이터만 설명한다고 미래가 그려지지는 않는다. 같은 숫자를 두고도 주안점을 어디에 두는가에 따라 훗날을 보는 시각은 달라진다.

누군가는 스마트폰 산업 성장정체를 이유로 몇 년 후 메모리 반도체 수요가 꺾이리라 본다. PC수요도 과거에 비할 바가 아닌데 한국 반도체 기업도 어서 다른 길을 찾아야 한다는 논리로까지 이어진다.

하지만 다른 누군가는 또 다른 상상을 한다.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 덕에 그래픽 D램 시장이 커질 것이라 본다. 여전히 한국 반도체 기업 앞에 놓인 도로는 잘 포장돼 있다고 생각한다. 이렇듯 똑같은 현상 앞에서도 통찰의 깊이와 상상력의 활용에 따라 리포트 질이 달라지는 게 ‘애널의 세계’다.

전망은 어디서 오나. 정상급 애널리스트들의 공통점은 취재력이다. 그들이 기자보다 더 생생하게 업계를 설명하는 힘은 발품 판 취재에서 나온다. 그래서일까. 그들도 기자들과 똑같이 ‘사람 만나고 취재해야 남들과 다른 글을 쓰는데, 시간이 부족하다’는 고민을 한다.​ 

 

AI의 등장은 차트 분석을 애널리스트의 일과로부터 떼어낼 것이다. 그 덕에 되레 직업 생산성을 높이는 요인이 될 수도 있다. 잡무까지는 아니더라도 작은 업무는 마치 비서처럼 대신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다. 통찰과 취재력을 갖춘 각 분야 전문 애널리스트들의 몸값은 AI 시대를 코앞에 두고 금값이 됐다. 최근 여의도 증권가에서는 반도체 전문 애널리스트를 영업하려는 움직임이 치열했다. 반도체 슈퍼싸이클 덕에 이 현상을 제대로 설명해줄 인물들이 각광받고 있어서다. 로봇이 손쉽게 대체할 수 있는 일이라면 굳이 그들을 좋은 조건에 모셔갈 필요는 없다.

국내 최정상급 반도체 전문 애널리스트로 꼽히는 이승우 연구원도 올해 IBK투자증권에서 유진투자증권으로 이직했다. 다양한 각도의 시각이 생생히 살아있는 그의 리포트는 반도체 담당 기자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높다.

기자는 그에게 ‘평소 업무 패턴이 어떤가. 차트 분석도 중요하지만 누군가 만나는 데 더 시간을 많이 할애한다고도 들었는데?’라고 물어봤다. 이 연구원은 “사람도 많이 만나고 여러 회사 관계자들도 만난다. (또) 계속 생각을 한다”고 답했다. 키워드는 역시나 ‘만남’과 ‘생각’이다.

다음 질문을 던졌다. ‘그럼 AI가 애널리스트업계에 도입되면 업무에 더 도움 되지 않을까?’

이 연구원은 “당연하다. 4차산업혁명과 관련해 가장 큰 딜레마는 일자리다. (그런데) 사실 이 기술발전과 일자리 소멸 이슈는 1차산업혁명 때부터 계속돼 왔다. PC가 나온 후에는 사무직이 없어진다고 했다. ATM 기기가 나오자 은행원도 사라진다고 했다. 실제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서 “일자리는 없어지는 게 아니라 변하는 것이다. 애널리스트가 AI를 일종의 어시스턴트로 쓸 수 있지 않겠나. 도리어 좋은 거다. 리포트의 질도 더 좋아질 수 있다. 우리가 창작할 수 있고 상상의 나래를 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그렇다. AI는 애널리스트의 일자리를 뺏는 게 아니라 상호 보완재의 역할로 공존하게 될 것이다. 단, 과제가 있다. 평범한 애널리스트가 아닌 비범한 애널리스트가 되어야 한다는 거다. 머리와 발을 동시에 쓰는, 즉 통찰과 취재력을 겸비한 애널리스트에게 ‘AI’는 기회의 영토다. 그건 기자도 마찬가지다. 정해진 미래인 셈이다.

강고한 기술 낙관론자들은 AI가 통찰까지 갖출 날이 도래하리라 본다. 그게 그들의 상상력이다. 하지만 설사 그날이 와도 과제는 그대로다. 결국 로봇과 대결하기 위해 인간이 쓸 무기는 통찰과 상상, 이 두 가지뿐이다. 대안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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