쟁점 확정·가치판단 못 해…법률 사무 개념 재구성 전망도

법조 영역에서 인공지능의 역할이 주목받고 있다. 사진=셔터스톡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AI)이 인간을 대체할 것이란 분석이 하루가 멀다하고 나오고 있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 보고서는 10년 후 국내 일자리 절반 이상이 인공지능으로 대체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그러나 정작 해당 직업군 종사자들은 크게 개의치 않는 모습이다. 인공지능에 맞서 싸울 비대칭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으로 대체될지 모른다는 직업을 가진 이들​은 오히려 역설적으로 더욱 ‘인간다운’ 일에 집중하고 직업의 본질을 추구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두 번째 이야기는 법률 분야에서 인공지능의 역할이다. [편집자주]​


인공지능이 법조의 영역까지 넘보고 있다. 법률 사무는 대부분이 텍스트로 된 문서를 사용한다는 점에서 다른 분야보다 인공지능 기술이 도입되기 적합한 성격을 갖고 있다. 법률가가 사건이 의뢰되면 가장 먼저 수행하는 법률자료 조사와 판례분석도 인공지능이 강점을 지닌 부분이다. 다양한 법률지식과 많은 수치를 분별해 사용하는 일은 인간에겐 어려운 일이지만 기계엔 단순한 일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법률 쟁점과 관련된 법령과 판례, 문헌 등을 검색하는 인공지능의 능력은 인간의 상상을 넘어선다. 인공지능은 초당 10억 장의 법률문서를 검토할 수 있다고 평가되는데, 앞으로 법률 사무 상당 부분을 인공지능이 대체할 것이라는데 이견이 없다. 

 

영국 옥스퍼드대가 2013년 발표한 ‘고용의 미래(The Future of Employment)’라는 연구에 따르면, 인공지능 발달에 따른 컴퓨터 자동화에 의해 사라질 직업군의 확률은 법률사무직이 94%, 법원 속기사가 50%로 매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연구는 재판연구관 41%, 판사 40%도 사라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인공지능이 법조영역을 완전히 대체할 수 없는 이유는 법률 사무가 단순히 판례를 분석하고 각 사례를 판례에 대입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각 사건은 법률적 쟁점이 다를 뿐 아니라, 가치 판단이 필요한 부분은 인공지능이 인간을 대체할 수 없다.

고상영 대전지법 판사는 지난 6월 1일 대전지방법원에서 열린 학술대회에서 ‘인공지능의 법률 분야에서의 응용사례’를 발표하며 법률가들의 일반적인 사고 패턴이 ▲문제가 되는 법적 쟁점을 확정 ▲판례·문헌 검색 ▲주어진 사례를 기존 판례에 적용할지 판단 등의 순서를 거친다고 밝혔다.

고 판사는 “인공지능은 판례·문헌 검색 부분에서 장점을 가진다”면서도 “법적 쟁점을 확정하는 일은 현재 기술로는 어렵고 향후 인공지능의 발전 단계를 지켜봐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특히 “판례 적용 여부는 인간의 고유한 통찰력이 필요한 지적 작업”이라며 “인공지능이 아무리 발전하더라도 인간을 대체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공감·소통 능력이 없는 인공지능이 인간 사이의 복합적인 이해관계를 고려할 수 없다는 점도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수도권 가정법원의 한 판사는 “가사소송에서 법관들이 당사자들과 공감·소통해 조정으로 분쟁이 해결되는 경우가 상당하다”면서 “설득과 공감, 직관 등의 일을 인공지능이 할 수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또 “과거 자료만으로 답이 결정된다면 시대 흐름에 맞는 법률, 판례 변경이 불가능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업무를 ‘대체’하는 역할이 아닌 ‘보완’하는 기능을 함으로써 기존 법률 사무의 개념을 재구성하고 진화시킬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단순 사무는 인공지능이 대체하고, 법조인들은 인간의 법적 추론과정과 결정 과정에만 관여하게 된다는 것이다.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을 지낸 나승철 변호사는 “교통사고 등 정형화 된 사건이나 단순 법률분석 등에서 인공지능이 인간을 돕는 역할은 상당할 것”이라며 “야근이 일상화된 환경에서 법조인들의 근무 환경이 개선됨에 따라 높은 수준의 법률서비스가 늘어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인공지능에 활용 능력이 법조인이 꼭 갖춰야할 능력 중 하나로 자리 잡을 것 같다”면서 “이에 적응하지 못한 법조인들은 도태 되는 등 시장 재편 효과도 상당할 것 같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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