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업체들, 강남 재건축 사업장서 후분양제 경쟁…자금력 약한 중견건설사 걱정 커져

 

서울의 한 신축 아파트 공사현장 / 사진=뉴스1

서울 강남권 재건축 단지 위주로 후분양제를 도입하려는 움직임이 잇따라 감지되면서 중견건설사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대형건설사와 조합은 지난 5일 국토교통부의 부동산 시장 안정화 대책 추가발표로 분양가상한제 시행이 예고됨에 따라 정부의 분양가 규제가 지속되자 자구책을 찾은 것인데, 후분양제가 시장 전반으로 확산할 경우 자금력이 상대적으로 약한 중견건설사에겐 독이 될 수 있어서다. 


9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최근 후분양제 도입을 우선 고려한 사업장은 이날 오후 시공사를 선정하는 신반포15차 아파트다. 대우건설과 롯데건설은 2파전을 치르고 있는 가운데, 대우건설이 조합 측에 분양시기를 조절할 수 있는 후분양제를 제안했다.

후분양제는 건설사가 신축 아파트를 평균 80% 이상 지었을 때 입주자 모집공고를 하고 일반분양에 돌입하는 방식이다. 착공부터 분양 시점까지 오른 주택가격 상승분이나 이자비용, 공사비 비롯한 물가상승분을 분양가에 반영할 수 있는 만큼, 선분양제 보다 높은 분양가를 책정할 수 있어 재건축 조합원들에겐 골든타임 분양으로도 불린다.

예를 들어 신반포15차 인근에 있는 ‘아크로리버파크’는 지난 2013년 11월 분양 시 3.3㎡당 평균 3700만원에 분양했는데, 입주 시에는 6000만원으로 3.3㎡당 2000만원 이상 상승했다. 일반분양자가 웃돈을 챙긴 셈이다. 만약 후분양제를 선택했다면 3.3㎡당 분양가를 6000만원 가까이 올려 분양가 상승분은 모두 조합원의 혜택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논리다.

대우건설은 후분양을 하면 시공사에게 초기공사비 부담이 커지지만 더 높은 일반분양가와 함께 조합원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점을 조합에 적극 어필했다. 후분양을 통해 분양권 프리미엄 차익을 노린 투기세력의 개입을 막을 수 있고, 실물을 공개한 이후 분양을 해야하기 때문에 시공사의 부실시공을 방지하고 품질을 높일 수 있는 장점도 앞세웠다. 대우건설이 후분양을 제안해 조합원의 호응을 얻자 롯데건설도 후분양제 카드를 뒤늦게 빼들었다. 또다른 사업장인 반포주공1단지(1·2·4주구) 조합도 입찰한 건설사인 현대건설과 GS건설에게 후분양이 가능하다는 입장을 전달받았다.

이같은 움직임에 중견건설사들은 좌불안석이다. 대형건설사는 자금조달 능력이 있어 후분양제로 하더라도 시공이 가능하지만, 중소 건설사들은 건물을 먼저 지을 돈을 은행 등으로부터 구하기 힘들어 분양 사업 자체에 참여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한 중견건설사 관계자는 “정비사업장은 브랜드 파워가 있는 1군건설사들 위주로 돌아가기 때문에 중소건설사는 가뜩이나 시장 참여가 어려운데, 후분양제가 도입되면 시장참여를 아예 검토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일 것”이라고 말했다.

실수요자 입장에서도 분양가가 높아지고 분양과 함께 자금을 모두 마련해야 하는 부담이 발생한다. 이 때문에 미분양이 나거나 분양을 받은 이후 계약을 포기하는 경우가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이 때문에 강남권 재건축 단지에서도 사업성과 규모가 뛰어난 일부 특별한 사업장이 아니라면 섣불리 후분양제를 제안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한 대형건설사 관계자는 "공사비가 2조6000억원에 달하고 사업성이 뛰어난 강남권 재건축 단지이기 때문에 후분양제 도입얘기가 나오는 것"이라며 "강남 재건축도 후분양제에 대한 리스크를 안고 가는 것이지, 자금조달에 무리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라고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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