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지의무 사항 소비자가 판단하기 어려워…이행 용이한 '수동적 의무'로 바꿔 피해 줄여야

보험소비자 권리 향상을 위해 계약 체결 시 고지의무를 소비자 중심으로 개편해야 한다는 학계 주장이 커지고 있다. 보험 전문가가 아닌 보험 계약자가 구체적으로 어느 것이 보험 계약 체결에서 중요한지 판단하기 어려워 피해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8일 한국금융법학회(회장 장덕조 교수)가 생명보험교육문화센터에서 개최한 '상법 보험편 개정안을 제안하며' 특별학술대회에서 맹수석 충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보험제도가 발전하면서 보험계약 상 주요 내용이 복잡해졌다"며 "이러한 보험 전문화로 보험계약자는 보험 계약에 있어서 고지의무 대상이 되는 중요한 사항을 판단하기 쉽지 않다. 손해 위험이 커진 것"이라고 말했다.

맹 교수는 "독일, 일본 등 선진국에선 보험계약자의 고지의무를 수동적 의무로 변경해 보험소비자 보호를 강화했다"며 "우리나라도 보험계약 체결 시 질문표 등에 기재한 사항을 중요한 사항으로 보고 보험 계약자가 이에 대해 정확하게 답하면 고지의무를 성실히 이행한 것으로 보는 수동적 의무를 법에 명시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현행 상법 제651조에 따르면 보험계약자는 보험계약에서 중요한 사항이 될 수 있는 모든 사항을 스스로 예측해 보험사에 알리게 돼 있다. 보험사는 보험계약 당시 보험계약자가 고의나 중대한 과실로 중요한 사항을 고지하지 아니하거나 부실하게 고지하면 그 사실을 안 날로부터 1월 내에 또는 계약을 체결한 날로부터 3년 내에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 보험사에 유리한 법 조항인 셈이다. 

 

한국금융법학회는 8일 '상법 보험편 개정안을 제안하며' 특별학술대회를 개최했다. / 사진=이용우 기자
이에 비전문가인 보험계약자가 고지의무를 인지하지 못해 피해가 발생하는 일이 부지기수로 알려졌다.

금융당국과 보험업계에 따르면 2015년부터 지난해 3월까지 보험사 고지의무 위반과 그로 인한 계약 해지 관련 민원이 887건을 기록했다. 지난해는 이 건수가 1423건까지 늘었다. 그만큼 정보 비대칭으로 인한 고지의무 위반 관련 소비자 피해가 많은 것이다.

맹 교수는 "고지의무를 보험계약자의 능동적, 적극적 의무로 파악하면 보험 소비자 보호 측면에서 부당하다"며 "고지의무 수동화를 통해 보험계약 체결 시 중요한 사한에 관해 소비자가 성실히 답변하는 것으로도 고지의무를 이행했다고 하는 것이 소비자 권익에 도움된다"고 말했다.

또 보험소비자 고지의무 전에 이행되어야 하는 보험사 설명의무와 관련해서도 상법 개정 요구가 나왔다. 현행 상법 628조의3 제1항에 따르면 보험사는 보험계약을 체결할 때, 약관의 중요 내용을 설명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보험계약자가 계약 내용이 될 보험약관을 제대로 설명받지 못하면 예상치 못한 불이익을 당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김은경 외국어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 조항에도 문제가 있다. 설명의무 이행의 때에 관한 것"이라며 "보험사의 설명의무는 보험계약자의 고지의무 이행 이전에 해야 한다. 보험소비자 권익 향상을 위해서는 막연히 '보험계약을 체결할 때' 보단 '보험계약 체결 전'이라고 명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학계와 마찬가지로 국회에서도 상법 일부개정법률안으로 고지의무 수동화를 도입하기 위한 발의가 이뤄지고 있다. 정운천 바른정당 의원과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 모두 현행 보험계약자의 자발적 고지의무를 '보험자가 요구한 사항'으로 개정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다만 상법 제651조의2(보험자가 서면으로 질문한 사항은 중요한 사항으로 추정한다)와 관련 박 의원은 이를 폐지해야 한다고 제안하고 있다. 정 의원은 이 부분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맹 교수는 "박 의원 주장대로 이 부분은 폐지해야 한다"며 "보험사가 요구하지 않은 사항에 대해 보험계약자가 고지의무를 이행할 책임이 없다고 명확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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