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금융지원 발판삼아 조선산업 키우는 중국·일본…한국은 ‘사양산업’ 찬 밥 취급, 기술력 치이고 인건비 밀려

한국 조선 산업이 중국을 따돌리지 못하고 일본에 밀려 10년 전 호황을 잃었다. 조선업이 활황이던 2007년 국내 조선사는 조선사업부문에서 4999만톤(GT)을 수주했지만, 지난해엔 417만5000GT을 수주하는 데 그쳤다. 현대중공업은 같은 기간 84% 가까이 줄어든 실적을 올렸다. 올해 들어 지난달까지 수주량이 지난해보다 3배 늘었지만 여전히 2015년보단 못하다.

6일 영국의 조선해운시황분석기관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국내 조선사 수주잔량은 1609만9832CGT(가치환산톤수)로 올해 초 2066만2539CGT보다 22% 감소했다. 더불어 조선 강국으로 불리고 있는 중국과 일본 조선사가 각각 가진 수주잔량 2583만4054CGT, 1612만1428CGT보다 많게는 1000만CGT, 적게는 2200CGT가량 부족한 실정이다. 

 

/ 그래픽 = 조현경 디자이너

이에 일각에선 호황을 잊고 산업 사양을 준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지난 3월 산업경쟁력 강화 관계 장관 회의에서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2조9000억원 규모의 신규 자금 지원이 결정되자 사양 산업에 혈세 투입이 말이 되느냐는 비판이 일었다. 이에 정부는 지난달 해운산업 지원을 전담하는 한국해양진흥공사 설립안을 발표하면서 조선업 지원을 빼냈다.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 시절 내건 공약이었던 해운·조선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해양선박금융공사 설립은 한국해양진흥공사에 들어 조선이 빠진 채 진행됐다. 100대 국정과제에 들었던 조선업 상생이 들었던 것과 대조된다. 정부는 제조업에 대한 직접적인 금융 지원을 할 수 없다는 세계무역기구(WTO) 협약으로 조선업 지원이 설립안에 들어갈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정부의 보조금 협정 위반 우려는 기우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박문학 법무법인 세진 변호사는 "중국 국영조선사 CSSC는 올해 상반기 1771만 달러의 정부보조금을 받았으며, 선박은 제작 주문성·선종별 다양성 등 특수성이 강해 WTO 규범체계 관점에서 볼 때 수출시장에서 보조금이 차지하는 시장 왜곡 결과 입증이 곤란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선박금융 부문 한 전문가는 “정책금융을 활용해 국내 조선소에 보조금을 지원하는 일이 WTO 보조금 협약을 어길 우려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심각한 수준의 위반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면서 “신설되는 해양진흥공사의 지배구조나 관련 법령, 운영 방침, 시장 기준 원칙 등을 주의해 접근하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중국 조선사 성장 이면에는 중국 정부의 파격적인 금융 지원이 있다. 중국은 정부가 자국 조선업체에 직접 보조금을 주지는 않는 대신 중국 조선소에 선박을 발주하는 해운업체들에 선박 가격의 20%에 달하는 보조금을 지원한다. 또한, 중국 국책 금융기관은 중국 조선사에 선박을 발주하는 외국 해운사에 대해 선박 건조 대금 전액을 1% 이하의 금리로 빌려준다.

일본 역시 국책 금융기관에서 조선 산업 지원에 나서고 있다. 일본은 자국 조선업체에 발주하는 해외 해운사에 직접 보조금을 지급하지 않고, 해당 해운사가 등록된 외국 은행에 1%가 안 되는 초저리로 선박 건조 대금을 빌려주고 있다. 이후 선박을 발주한 해운사가 있는 외국 은행은 다시 해당 해운사에 돈을 빌려준다. 일본 조선 산업이 다시 성장하고 있는 이유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한국 조선 산업은 현재 기술력에서는 일본에 밀리고 인건비에서는 중국을 당하지 못하는 처지에 놓였다. 덕분에 국내 조선사는 유휴인력 확대에 따른 구조조정 사태에 직면했다. 국내 조선사는 지난달 3개월 만에 중국을 누르고 선박 수주 1위 자리를 되찾았지만, 국내 조선사가 수주한 선박은 9척, 13만4742CGT 불과했다.

그런데도 업계에선 조선 산업을 사양 산업으로 규정하는 것은 안된다고 지적한다. 한국이 스스로 조선 산업 규모와 시설을 축소하는 것은 경쟁자인 일본과 중국을 지원하는 꼴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일본은 1970년 조선 산업을 사양 산업으로 규정하면서 한국 조선 산업이 성장하는 계기로 작용했다. 중국 역시 기술력보다 자금력에 의존하고 있다는 게 업계 설명이다.

김영훈 경남대 조선해양IT공학과 교수는 “조선 산업 역사를 보면 수축기와 회복기가 주기적으로 되풀이되는 데 현재 한국 조선 산업이 그 시기에 맞물려 있을 뿐”이라면서 “선박 건조 기술 등 연구 개발을 지속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조선업을 사양 산업으로 규정하고 조선 산업 핵심인 인력을 잃어버리는 일을 지속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한편 국내 조선 산업은 이제 첫 금융지원 발걸음을 뗐다. 4일 현대상선은 지난해 10월 해운 산업 경쟁력 강화 방안 중 하나로 추진된 2조6000억원 규모 펀드를 활용 4700억원 규모의 초대형 원유운반선(VLCC) 5척을 발주했다. 한국선박해양이 해운사를 대신해 펀드 자금으로 선박을 발주하면 금융기관은 해운사가 낸 용선료를 통해 수익을 보전한다.

이에 대해 현대상선 관계자는 “이번 건조계약에 활용한 펀드는 부채비율이 400%이하인 선사에 지원되는 대출의 한 형태로 이해하면 쉽다”면서 “현대상선이 전체 규모의 10%를 부담하고 나머지는 대출로 선박을 신조하는데 대출 금리가 중국과 일본처럼 1% 내외로 책정될지 여부는 아직 정해지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