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울음소리 끊겨 인구재앙 '재깍재깍'…'아이 낳고 싶은 나라'에 정책 최우선을

저출산 재앙이 당초 우려했던 것보다 훨씬 빠르고 심각한 양상으로 우리에게 닥쳐오고 있다. 당장 상황을 호전시킬 마땅한 방안을 찾지 못한채 안이하게 시간만 보내다가는 돌이킬 수 없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화될게 뻔하다. 정부는 먼 미래가 아닌 2~3 세대만에 국가의 근간이 뿌리채 무너져내릴 수 있는 절체절명의 위기가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음을 똑똑히 인식하고, 실질적인 효과를 낼 수 있는 창의적이고 획기적인 대책 마련에 서둘러 나서야 한다. 

 

우리나라가 직면한 저출산 문제의 심각성은 신생아수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통계청이 지난달 발표한 '6월 인구 동향'을 보면 6월 출생아수는 2만8900명으로 1년전 3만2900명보다 12.2% 줄었다. 6월 기록으로는 사상 최저다. 상반기 전체로도 18만8400명에 그쳐 20만명선이 처음으로 무너졌다. 연간 출생아수는 1970년대초에만해도 100만명을 웃돌았는데 이제는 40만명을 넘기기조차 버겁다. 

 

통계청의 인구장기추계를 보면 14세 이하 유소년 인구는 오는 2060년에 가면 447만명으로 2010년 798만명에 비해 56% 수준으로 쪼그라들 전망이다. 유소년 인구 비중은 16.1%에서 2030년 12.6%로 떨어지고 2060년에는 10.2%로​ 10%선마저 위태롭게 된다. 

 

반면 평균수명 연장 등으로 65세 이상 고령인구는 계속 늘어 2030년에는 1269만명으로 2010년의 545만명에 비해 2.3배가 되고 2060년에는 1762만명으로 3배이상으로 커질 전망이다. 노령인구가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2030년 24.3%, 2060년에는 40.1%까지 높아지게 된다. 

 

앞으로 40년 남짓한 장래에는 거리에서 어린이보다 노인을 4배나 흔하게 마주치게 되는 셈이다.

 

그나마 이런 추정도 합계출산율이 2045년까지 1.23명, 이후에는1.42명까지 높아져 유지될 것이라는 가정을 바탕에 깔고 있다. 지금 벌어지는 현실과 비교해보면 지극히 낙관적인 가정이 아닐 수 없다. 

 

통계청이 며칠전 발표한 2분기 합계출산률은 0.26명으로 연률로는 1.04명에 불과했다. 우리나라 합계 출산률은 지난 2005 1.08​으로 사상최저를 기록했는데 올해는 이 기록마저 허무하게 무너지리라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말 열린 보건복지부·고용노동부·여성가족부 업무보고에서 "올해 합계 출산율은 역대 최저인 1.03명이 될 것"이라고 걱정한 것이 이런 흐름을 반영한 것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우리나라 인구가 앞으로 70년도 지나지 않은 2085년에는 현재의 절반 수준인 2620만명으로 반토막이 될 것이라는 전망을 통계청이 내놓은 것이 지난해 12월이다. 이런 예측도 합계 출산율 1.12명을 가정한 것으로 출산율이 1.03명으로 더 떨어진다면 그 시기는 훨씬 앞당겨질 수 밖에 없다. ​국가로서 우리나라의 면모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추락할 것이다.

 

출산율의 심각성을 인식한 문 대통령은 "정부가 할 수 있는 정책 수단을 총동원한다는 의지로 저출산 문제 해결에 특단의 노력을 기울여달라"고 장관들에게 당부했다.하지만 정부의 대책이 과연 '특단'이라고 불릴만한 내용을 얼마나 담고 있는 지는 의문이다.내년 예산안에 담긴 아동수당 지급이나 국공립어린이집 확대, 보조·대체교사 배치, 초등생 완전돌봄 실현 등 정책 등을 보면 기대보다 의구심이 앞선다.

 

정부는 지난 2005년 저출산 고령화사회 기본법을 제정한 이래 그동안 3차례에 걸친 저출산·고령화 기본계획을 통해 출산과 양육 환경 개선을 중심으로 막대한 예산을 쏟아 부었지만 출산율은 악화일로다.​ 문대통령도 "저출산 해결을 위해 10년간 100조원을 썼는데도 저출산 문제는 조금도 해결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저출산 대책이 그저 출산과 양육 지원만 늘려 해결될 일이라면 경기도 성남시 의회가 추진하는 일이 더 효과적일지도 모른다. 성남시는 셋째 자녀를 낳으면 최대 1억원을 출산장려금으로 지급하는 내용의 조례 개정안을 의원발의로 추진했다가 재정 문제를 둘러싼 여야 격론 끝에 시의회 심의단계에서 제동이 걸렸다. 

 

저출산 현상이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라며 개인의 삶을 더 중시하는 젊은 세대의 풍조를 탓하기도 한다. 하지만 젊은이들이 스스로 밝히는 이야기는 사뭇 다르다.​ 

 

지난해 8월 국회 저출산극복연구포럼은 아이를 낳을 당사자인 청년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참석한 젊은이들이 밝힌 저출산의 이유는 한 마디로 “지금 내가 사는 이 삶을 아이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다”는 말로 집약된다. 자신의 삶도 감당하기 어려운데 어떻게 아이를 낳고 그 아이의 미래에 대해 가슴 벅찬 희망을 가질 수 있겠느냐는 항변이다.​ 

 

결국 '아이를 낳고 싶지 않은 나라'에서 '아이 낳아 기르고 싶은 나라'로 바꾸려면 더 근본적이고 큰 틀에서 접근하지 않으면 안된다. ​삶의 전체 국면에서 인간다운 삶을 누리며 미래의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환경을 마련하는 일에 국가적 역량을 결집해야 한다는 말이다.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는 소득을 제공할 좋은 일자리가 흔해지고, 도시 근로자의 평균 소득으로는 도무지 감당이 안되는 집값과 ​자녀교육에 살인적인 부담을 지우는 사교육을 조장하는 교육 제도에 대해 획기적인 개선이 이루어진다면 젊은이들이 겪는 세상은 지금보다 훨씬 행복하게 느껴지지 않겠는가.

 

저출산은 국가의 미래가 걸려 있는, 우리 세대와 후세의 운명이 걸린 중대 사안이라는 점에서 한 정권에서 감당할 문제가 결코 아니다. 국가의 미래를 만드는 일에 진보와 보수도 따로 없다. 효과가 나는 올바른 방향을 찾아 흔들림없이 일관성 있게 가는 것이 중요하다.

 

정책에 출산률 영향 평가를 도입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출산율에 긍정적인 결과를 내는 정책을 장려하고 부정적인 정책은 걸러내자는 뜻이다. 박근혜 전대통령 시절 부동산규제를 몽땅 풀어버럼으로써 투기를 조장하고 결국 집값을 올리고 가계를 빚더미에 허덕이게 만든 정책은 출산율에 악영향을 미칠 정책으로 평가될게 틀림없다. 반대로 새 정부에서 역점을 두고 추진하는 부동산투기 규제대책은 제대로 만들어지고 시행돼 젊은이들과 서민들이 내집 마련의 꿈을 앞당기고 주거 안정에 도움을 준다면 퍼주기식 양육비 지원보다 ​출산율을 높이는데 훨씬 효과가 클 것이라고 확신한다.

 

집무실에 일자리 현황판뿐 아니라 '출산율 현황판'도 걸어두기를 문 대통령에게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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