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내외 불확실성 탓 완화 정책 유지…주요국 통화 정책 등 인상 압력 높아 한은 고심 깊어져

한국은행은 31일 오전 9시 금융통화위원회 회의를 열고 현행 1.25%인 기준금리를 동결했다. 이는 지난해 6월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낮춘 이후 14개월 연속 동결이다. / 사진=뉴스1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현행 연 1.25%로 동결했다. 가계부채 문제, 북한 리스크, 미·중과의 교역여건 악화 가능성 등 국내 경제에 ​대내외 불확실성이 크다는 점이 이 같은 판단의 주요 근거로 분석된다. 수출과 달리 내수가 회복세를 보이지 않고 있다는 점, 금리 인상 시 취약 차주 리스크가 확대될 수 있다는 점도 기준 금리 동결 결정의 배경으로 꼽힌다. 


앞으로 통화정책 방향에 대한 한국은행의 고심은 더욱 깊어질 전망이다. 대내적으로는 청와대에서 불거져 나온 금리 인상론이 부담이 될 수 있다. 정부는 집 값과 가계부채 총량을 잡기 위해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올려주기를 원하는 듯한 뉘앙스를 최근에 풍겼다. 한국은행은 전체적인 경기 상황을 고려해 통화 정책을 한다는 입장이지만 정부의 정책 공조 압력은 높아질 수 있다.

대외적으로는 세계 주요국 통화 정책이 전환의 시기에 접어들고 있다. 주요 통화 정책 담당자가 모이는 잭슨홀 미팅에선 별다른 이슈가 없었지만 주요국들의 통화정책이 중장기적으로 과잉 유동성을 흡수해 통화 정상화로 향할 것이라는 전망은 여전히 유효한 상황이다. 주요국이 통화 정책 정상화에 나선다면 내외 금리차 축소 가능성이 높아져 한은의 여유는 이전보다는 줄어들게 된다.

◇ 한국은행 14개월 연속 기준금리 동결

한국은행이 통화정책 방향을 유지하기로 했다. 한국은행은 31일 오전 9시 금융통화위원회 회의를 열고 현행 1.25%인 기준금리를 동결했다. 이는 지난해 6월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낮춘 이후 14개월 연속 동결로 시장 예상에 부합했다. 앞서 금융투자협회는 펀드매니저, 애널리스트 등 채권시장 전문가 100명을 상대로 설문 조사한 결과 응답자 99%가 기준금리 동결을 예상했다.

이번 결정 배경에는 불확실한 성장 경로가 주요 원인으로 풀이된다. 한국은행은 지난 28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 제출한 ‘현안보고’에서 한국 경제가 추경에도 올해 2%대 후반 성장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당초 추경을 제외하고도 2% 후반대 성장률을 기록할 것이란 7월 전망에서 후퇴한 것이다. 한은은 이를 ‘높아진 성장경로의 불확실성’ 탓으로 설명했다.

한은은 북한 관련 지정학적 리스크, 미·중과의 교역여건 악화 가능성 등 불확실성 요인이 많아졌다고 보고 있다. 한반도 지정학적 리스크는 북한이 7월 28일 미사일 도발을 감행한 이후 크게 부각됐다. 이후 미국과 북한이 강경한 태도로 맞서자 전쟁설이 퍼지는 등 한반도 정세가 급격히 냉각됐다. 여기에 기존 중국의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 보복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가능성 등이 겹치면서 미·중과의 교역여건이 악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확대됐다.

수출과 달리 미약한 회복세를 보이는 내수도 통화 완화적 기조 유지에 한몫했다. 자칫 금리를 인상해 경기 회복기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는 까닭이다. 수출은 올들어 지난달까지 7개월 연속 두 자릿수 증가율을 보이고 있다. 이달 20일까지 집계된 수출도 두 자릿수 증가율을 보였다. 반대로 내수에서는 수출과 같이 뚜렷한 회복세를 보이지 않고 있다. 회복세를 보였던 소비심리는 8월들어 소폭 조정됐고 소비자 물가 상승에 소비 부담은 증대된 상황이다.

가계부채 문제가 해소되지 않고 있는 점도 크게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23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2017년 2분기중 가계신용(잠정)’에 따르면 6월말 기준 가계신용은 1388조3000억원으로 전분기말(1359조1000억원) 대비 29조2000억원(2.1%) 증가해 예년 수준을 웃돌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준 금리를 올리게 되면 시중 금리 상승으로 이어져 취약 계층을 중심으로 부채 상환 부담이 확대된다.

◇ 정부의 압력과 세계 통화기조 변화, 한국은행 고심 깊어진다

앞으로 통화정책 방향에 대한 한국은행의 고민은 더욱 깊어질 전망이다. 국내 경기 회복세는 주춤한데 기준금리 상승 압력이 커질 가능성이 높은 까닭이다. 대내적으로는 정부가 기준 금리 인상을 원하는 눈치다. 김현철 청와대 경제보좌관은 최근 한 인터뷰에서 “기준금리가 연 1.25%인 상황은 좀 문제가 있지 않냐”고 언급하며 금리인상을 요구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이는 가계부채 총량과 집값을 잡기 위해선 기준 금리 인상이 필요하다는 시각으로 풀이된다.

다만 한국은행은 개별적 요소로는 통화 정책 방향을 결정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확고히 한 상황이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28일 국회에서 이 같은 발언에 대해 "시장에 영향을 미칠만한 발언은 신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 “금리는 금통위원들이 여러가지 경제상황을 종합해서 결정을 내릴 것”이라 밝혔다. 정부의 압력과 관련해서도 “금리정책에 관한한 금통위원들이 독자적으로 판단해서 독립적으로 결정했다고 분명히 말할수 있다”고 강조했다.

대외적으로는 글로벌 통화정책이 금리 인상 압력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미국을 비롯해 유럽에서도 긴축 가능성이 지속적으로 점쳐지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는 최근에 들어서 비둘기적인 발언을 내놓고 있지만 여전히 자산축소와 기준금리 인상은 기정사실화한 상황이다. 유럽에선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가 지난 6월 자산축소 가능성을 시사한 바 있다. 이들이 최근에 모인 미국 잭슨홀 미팅에서는 별다른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지만 통화 정책이 정상화하고 있다는 데는 전문가 이견이 크게 차이 나지 않는다.

다만 속도가 문제가 될 것으로 보이는데, 한국은행은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면서도 상황을 면밀히 지켜 보겠다는 입장이다. 이 총재는 지난달 7일 경제동향 간담회에서 “신흥국의 외환보유액이 전반적으로 늘어났다. 즉 대외건전성이 높아졌고 글로벌 경기 회복세라는 점을 감안하면 2013년 테이퍼 탠트럼(긴축발작)과 같은 금융불안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것이 중론이다”고 말한 바 있다.

전병하 이베스트증권 연구원은 “현 시점에서 미국은 9월 인상 기대감이 낮고, 12월 가능성이 높아졌다. 게다가 유로존의 데이터가 최근 부진 한 모습을 보이면서 드라기 총재가 9월 자산매입규모 축소를 언급할 가능성이 낮아졌다”며 “한국은행 입장에서 현 시점에서는 아직까지 급한 게 없는 상황이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동결하고 미국이 12월 금리를 올리게 되면 한미 기준금리가 역전되는데 이를 기점으로 내년 상반기 중으로 금리 인상을 저울질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