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재판 기속력 없고 朴 실언 가능성 있어…증인 불출석 등 무대응 전략 고수할 듯

박근혜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5일 대구 북구 제일모직 부지에 조성될 대구 창조경제단지 부지를 방문해 이인용 사장의 설명을 듣고 있다. 2014.9.15 / 사진=뉴스1

 

뇌물 공여자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으면서 뇌물 수수자 박근혜 전 대통령이 궁지에 몰렸다. 박 전 대통령은 불리한 상황을 적극 타개해야 할 입장이지만, 증인 불출석 등 기존 전략을 고수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29일 법원에 따르면 이 부회장의 1심 재판부인 서울중앙지법 형사27부(부장판사 김진동)는 이 부회장의 433억원 뇌물공여 혐의 중 89억원을 유죄로 인정하고 기타 혐의를 참작해 징역 5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박 전 대통령이 적극적으로 뇌물을 요구했고 이 부회장이 수동적으로 응했다’라는 재판부의 판단은 이 부회장의 항소심과 박 전 대통령의 사건에서도 영향력이 상당할 전망이다. 박 전 대통령의 사건이 이 부회장의 1심 판결 결과에 귀속되는 것은 아니지만 중요한 참고자료로 사용될 수 있는 탓이다. 박 전 대통령의 사건을 심리하는 서울중앙지법 형사22부(부장판사 김세윤)는 이날 이 부회장의 1심 판결문을 증거로 채택하기도 했다.

두 사건 범죄사실이 거의 동일하고 특별한 사정 변경이 없다면 앞서 선고된 판결 결과를 존중하는 것이 법조계 정설이다. 관련 사건에서 사실상 유죄 판결을 받은 박 전 대통령은 전략 수정이 불가피해 졌다.

일각에서는 박 전 대통령이 이 부회장의 항소심 등 관련 재판에 출석해 무죄 취지의 주장을 펼쳐야 한다는 주장까지 제기된다. 삼성 측 역시 이 부회장의 무죄를 위해 박 전 대통령의 진술이 필요하고, 그의 증인출석을 강력하게 요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2심에서는 1심에서 다뤄지지 않은 증거나 증인에 대한 심리만 이뤄진다는 점에서 박 전 대통령이 또 증인으로 채택될 가능성도 있다. 앞서 박 전 대통령은 이 부회장의 재판에 3차례나 증인으로 소환됐지만 건강상의 이유로 불응했다.

하지만 다수의 법조인들은 박 전 대통령의 무대응 전략이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법무법인 대호의 나승철 변호사는 박 전 대통령의 무대응 전략 이유를 “대본 없이 말씀을 잘 안하시고 워낙 말주변이 없기 때문”이라고 예상하며 “다른 재판에서 실언을 해 여죄가 드러나거나 기존 주장과 배척되는 발언을 할 여지를 남길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이 부회장의 재판결과는 박 전 대통령의 재판에 기속력이 없기 때문에 자기 재판에서 방어를 해도 충분하다”면서 “변호인의 도움을 받을 수 있고 상대적으로 통제가 쉬운 자신의 재판에서 무죄를 다툴 것 같다”고 말했다.

 

기속력이란 법원이 자기가 한 재판에 스스로 구속돼 자유롭게 취소·변경할 수 없는 효력을 의미한다. 이 부회장과 박 전 대통령의 재판은 별개의 소송이기 때문에 기속력이 없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김남근 부회장 역시 “이 부회장에 대한 유죄 판결로 박 전 대통령의 뇌물수수 또는 직권남용 혐의가 유죄로 인정될 가능성이 높아졌다”면서도 “무대응 전략에는 변화가 없을 것 같다”고 전망했다. 

 

김 변호사는 “박 전 대통령이 수차례 증인 출석에 불응하는 이유는 이번 사건을 ‘정치적 탄압’으로 규정하고 싶기 때문”이라며 “10년 이상의 중형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양형을 다투기보다 ‘억울하게 재판을 받고 있다’는 정치적 메시지로 지지자에게 전달하고 싶은 것”이라고 해석했다. 그는 “일반인은 형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재판부의 심기를 거스르는 태도를 하지 않는데 박 전 대통령을 그렇지 않다”라며 “사법제도 자체를 경시하는 태도가 아닌가”라고 꼬집었다.

익명을 요구한 또 다른 변호사는 “피고인과 증인은 자신에게 불리한 증언을 하지 않을 너무나 소중한 권리가 있다”면서도 “한때 대통령이셨고 행정부의 수반(首班)이었던 분으로서 과거 행동에 떳떳하고 자신의 책무에 충실했다면 법정에서 모두 이야기 해 주길 바라는 게 국민들의 바람”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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