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제작 1조원 투자…아이폰 수익 보완 포석, 사업 특수해 녹록친 않을 듯

팀 쿡 애플 CEO가 연설 중인 모습. / 이미지=셔터스톡

애플이 내년에 오리지널 영상 콘텐츠 제작에 10억 달러(한화 1조 1346억원)을 쓴다. 출시 10주년을 맞은 아이폰을 보완해 줄 수익원 찾기 삼매경의 하나로 읽힌다. 때마침 늘고 있는 서비스 사업 매출도 이 같은 움직임을 자극하는 동력으로 꼽힌다.

하지만 마냥 편안한 길이 깔려있는 건 아니다. 콘텐츠 산업은 애플이라고 손쉬운 성공을 보장받을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는 게 중론이다. 애플의 진출 때문에 전자업계의 또 다른 강자인 삼성과 소니의 과거에도 새삼스레 눈길이 쏠린다.

최근 월스트리트저널(WSJ), 더 버지(The Verge), 비즈니스 인사이더(Business Insider) 등 미국 주요매체에 따르면 애플은 6월 영입한 잭 반 앰버그와 제이미 일리크트를 선두에 세워 내년에 10억 달러의 돈을 써서 콘텐츠를 제작하기로 했다. 두 사람은 10년 넘게 소니픽쳐스텔레비전에서 사장으로 일하면서 ‘브레이킹 배드’, ‘베터 콜 사울’ 등을 제작‧편성해왔다.

애플의 신사업 진출은 새 수익원 찾기라는 점에서 의미가 작지 않다. 애플의 3분기(회계연도 4월 1일~7월 1일) 매출은 454억 달러(약 51조 원)다. 이중 아이폰의 매출 비중이 3분의 2에 달한다. 아이폰은 신작이 나오기 직전임에도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60만대 이상 더 팔려 이번에도 애플의 캐시카우(cash cow)임을 증명했다.

하지만 제 아무리 아이폰이라 해도 영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승우 유진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지난달 기자와 만나 “당장 접는 스마트폰이 나오면 (시장 상황이)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스마트폰 성장률이 둔화된 건 사실”이라면서 “적당한 선에서 안정화되는 비즈니스가 아닐까 생각한다”라고 밝혔었다. 무한성장이 가능하지 않다는 뜻이다.

애플도 이를 모르는 건 아니다. 그래서 담금질하는 게 서비스 사업이다. 지난 분기 애플스토어 및 애플뮤직 등 서비스사업 부문 매출은 22% 급증했다. 팀 쿡 CEO도 컨퍼런스 콜에 나와 서비스사업 성장세의 의미를 강조했다. 애플의 오리지널 콘텐츠에서 나오는 수익 역시 이 부문에 포함될 전망이다. 콘텐츠 제작이 애플의 미래를 고려하면 중요한 도전이라는 의미다.

사실 주요 외신과 국내 매체에서는 지난해부터 애플의 콘텐츠 제작 소식이 주기적으로 보도돼 왔다. 그간 대부분의 시각은 애플이 당장 콘텐츠 제작 시장서 돌풍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점에 초점이 맞춰져 왔다. 문제는 그리 간단치 않다. 이 사업이 돈만 가지고 손쉽게 성공할 수 있는 ‘규모의 경제’가 적용되는 분야가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은 잊힌 역사지만 애플의 라이벌 삼성도 1995년 삼성영상사업단을 꾸렸었다. 삼성그룹이 21세기 영상왕국의 기치를 내건 채 만든 조직이었다. 하지만 21세기가 오기 직전인 1999년 결국 해체됐다. 막상 삼성가(家) 장손이 회장인 CJ가 오랜 기간 손해를 감수하며 이 사업에 머물러온 점과 비교되는 대목이다. ​국내 첫 블록버스터 영화 ‘쉬리’가 삼성영상사업단의 마지막 작품이었다. 물론 삼성영상사업단은 콘텐츠를 직접 제작하지는 않았다. 투자자로 시장에 참여했을 뿐이다. 


때까지 사업규모가 크지 않아 적자가 문제된 건 아니었다. 이미 당시에도 반도체, 가전부문에서 막대한 수익을 내던 삼성 입장에서는 개별 적자가 큰 부담일리도 없었다. 전문가 사이에서는 즉각적인 손익계산으로 환원되지 않는 사업 특수성을 하드웨어 기업인 삼성이 이해하지 못했다는 해석에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삼성과 영상 사이 궁합이 그리 맞지 않았다는 얘기다.

 

같은 하드웨어 기반 기업인 애플 역시 ‘투입-산출’의 기존 공식으로 이 시장을 바라봐서는 안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물론 삼성과 달리 애플은 투자와 유통, 제작을 겸하기 때문에 보다 폭넓은 관점에서 사업에 바라볼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소니의 사례도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일본 가전업체 소니는 1989년 미국 컬럼비아 영화사를 인수해 ‘소니픽쳐스’를 탄생시켰다. 또 미국 CBS 레코드 부문도 인수해 소니뮤직엔터테인먼트로 탈바꿈시키기도 했다. 당시 이를 진두지휘했던 오가 노리오 전 소니 회장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는 자동차의 두 바퀴”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물론 소니는 여전히 전세계 엔터테인먼트 시장의 강자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하지만 소니 전자기기와의 시너지는 사실상 내지 못하고 있다는 게 중론이다. 주력인 가전은 콘텐츠와의 직접적 연결고리를 찾지 못했다. 스마트폰은 애플과 삼성전자 경쟁력을 따라잡지 못했다. 

 

만일 소니가 스마트폰 시장서 경쟁력을 발휘했다면 현재 애플이 가려는 길을 먼저 닦아놓았을 지도 모른다. 애플의 콘텐츠 사업 최고책임자들이 소니 출신이라는 점은 그래서 아이러니다.

그나마 소니는 최근 게임 사업서 힘을 발휘 중이지만 아직 영화분야와는 거리가 있다. 뛰어난 콘텐츠 경쟁력을 갖춰도 기존 하드웨어 사업과의 연결고리를 형성하지 못하면 별개 영역에 그칠 수 있다. 시너지 없는 사업다각화다.

경우는 다르지만 최근 디즈니의 행보가 되레 애플의 참조점이 될 수 있다. 그간 콘텐츠 제작에 집중해왔던 디즈니는 최근 OTT(인터넷 동영상 서비스) 진출을 선언했다. 자동차의 두 바퀴를 모두 가지겠다는 심산이다. 애플은 디즈니와 정반대 방향에서 같은 산을 오르려 하고 있다.

장민지 한국콘텐츠진흥원 산업분석팀 박사는 “콘텐츠 사업은 자본만으로 지배력을 키우기에는 쉽지 않은 특수한 사업”이라면서도 “애플의 경우 강력한 플랫폼을 여러 개 내놓을 수 있는 기업이라는 점에서 과거 사례와는 다르다. 하드웨어 중심의 기업 DNA를 새로 영입한 콘텐츠 제작자들과 어떻게 조화시키는가가 관건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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